'늙은 소가 송아지에게 길을 묻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방향은 속도가 아니라 품위와 판단에서 나온다는 뜻일 것이다. <어른의 시간>을 읽으며 나는 이 말이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요구되는 책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듦은 피할 것도, 참고 버틸 것도 아니다. 삶이 스스로 정돈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 것인지를 드러내게 된다.
키케로는 노년을 둘러싼 네 가지 대표적인 두려움을 정면으로 다룬다. 역할 상실, 신체 쇠약, 즐거움의 감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힘과 속도, 즉각적인 성과를 기준으로 삶을 재단해 온 시선이 노년을 불행하게 보이게 만들었을 뿐, 삶의 다른 기준으로 보면 노년은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시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권위는 젊음의 에너지에서 나오지 않고, 시간을 통과하며 축적된 판단력과 절제에서 나온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의 삶에도 그대로 와닿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키케로가 노년을 역할의 상실이 아니라 역할의 변화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키케로에게 노년은 사회에서 밀려나는 시기가 아니고 방식이 달라질 뿐 여전히 공동체에 기여하는 시간이다. 직접 나서기보다 방향을 제시하고, 경쟁하기보다 조율하며, 앞서기보다 지켜보는 역할로 옮겨갈 뿐이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내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더 많이 증명하려 애쓰기보다는, 말 한마디와 선택 하나에 무게를 두는 태도가 필요해지는 시기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신체의 변화에 대한 논의 역시 현실적이다. 키케로는 몸이 약해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결핍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나이에 맞는 힘이 따로 있으며, 마음의 힘은 나이를 모른다는 말은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전처럼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모든 것을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자각은 오히려 삶을 불필요한 것에서 멀어지게 한다. 나 역시 예전보다 체력은 줄었지만,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분명해졌다. 그 선택의 명료함이야말로 노년이 주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