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며 새롭게 다가온 천자문 구절 중 하나는 '미시기장'이다. 자신의 장점과 능력에 기대어 스스로를 과신하지 말라는 뜻인데, 젊을 때라면 겸손을 강조하는 교훈 정도로 가볍게 넘겼을 문장이다. 그러나 마흔에 이 문장을 다시 읽으니, 이는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경계에 가깝게 다가온다.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기 쉬워지고, 그 확신이 때로는 관계를 경직시키고 선택의 폭을 좁혀왔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미시기장은 능력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 위에 태도를 세우라는 요청처럼 읽힌다. 일과 인간관계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스스로를 점검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구절은 '용지약사'이다. 뜻을 쓰되 늘 깊이 생각하듯 하라는 이 문장은 처음에는 다소 관념적인 교훈처럼 읽힌다. 그러나 저자의 해설을 따라가다 보니, 이는 결정을 미루라는 말이 아니라 행동 이전에 사유의 깊이를 요구하는 문장임이 분명해진다.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실행이 능력처럼 평가되는 지금의 삶에서, 이 문장은 방향 없이 바쁜 선택들이 얼마나 쉽게 삶을 소모시키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최근 나는 오래 고민해오던 한 가지 일을 서둘러 결론내리지 않고, 관계와 이후의 파장을 차분히 따져본 뒤 결정을 미뤘다. 당장은 비효율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문장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이처럼 천자문은 본래 삶의 질서를 가르치는 교본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자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은 없고, 빠른 정보와 즉각적인 해답이 넘쳐나는 시대에 짧고 느린 문장은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천자문 같은 고전은 더 이상 생활 속 언어가 되지 못하고, 시험용 지식이나 교양의 장식물로만 남아왔다. 이 책은 그런 흐름에 분명한 반문을 던진다. 삶을 빠르게 해결하려 할수록, 오히려 기준과 태도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이다.
이 책이 발간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고전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려는 제안이다. 천자문을 통해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그래서 이 책은 단번에 읽고 덮기보다, 규칙적으로 펼쳐보며 문장을 삶에 대입해보는 방식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루 한 구절, 혹은 일주일에 몇 문장씩 정해두고 읽다 보면, 생각보다 삶의 태도가 서서히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어렵지만 꾸준히 이 책을 참고하며 살아간다면, 내 삶은 아마도 덜 조급해지고, 덜 과시적이며, 대신 더 단단해질 것이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할지보다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판단의 기준도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원칙에 가까워질 것 같다. 앞으로의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스스로 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이 나이를 통과하는 독자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