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의 힘 - 촉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로라 후앙 지음, 김미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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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직감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서 이 책의 서평을 출발해 보겠다. 직감은 흔히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나 운에 가까운 감각으로 오해되지만, 로라 후앙이 말하는 직감은 그와 다르다. 직감은 충분히 축적된 경험과 정보, 맥락이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무의식이 표면으로 밀어 올리는 판단의 결과이다. 즉 직감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생각한 끝에 더 이상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결론이다. 나는 이 정의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동안 직감을 믿는다는 말이 막연한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졌다면, 이 책은 직감을 하나의 판단 장치로 다시 위치시킨다.

일상에서 우리는 이미 직감을 수없이 사용하고 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거리감, 어떤 선택지 앞에서 이유 없이 마음이 끌리는 방향, 반대로 모든 조건이 좋아 보여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순간들이 그렇다. 직감의 장점은 빠르다는 점이다. 분석이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위험을 감지하거나 기회를 붙잡게 한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직감이 방향 감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약점도 분명하다. 경험이 충분하지 않거나 편견이 개입될 경우, 직감은 착각이나 감정적 반응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직감을 무조건 신뢰하라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직감을 믿어야 하고, 언제 의심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구분해준다.

<직감의 힘>은 직감을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구조의 영역으로 다룬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직관과 직감을 명확히 구분한다. 직관은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며, 직감은 그 과정이 끝났을 때 도달하는 결과이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충분한 과정 없이 떠오른 느낌을 직감이라 착각한다. 저자는 우리가 직감의 신호를 듣지 못하는 이유와, 잘못된 직감을 직감이라 믿게 되는 함정을 차분히 짚어준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촉이 안 좋았다’고 표현했던 순간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미완의 직관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에서 제시하는 직감의 세 가지 형태는 이 책의 핵심이다. 해석 없이 결론이 튀어 오르는 유레카의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으로 위험을 알리는 스파이디 센스, 강렬한 전율로 행동을 촉발하는 졸트의 순간은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분류이다. 특히 스파이디 센스에 대한 설명은 인상 깊었다. 직감은 늘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멈추라고 말하는 경고음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나는 과거에 불편함을 느끼고도 논리로 덮어버렸던 선택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불편함은 감정이 아니라 직감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직감을 단련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직감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능력이라는 주장이다. 불필요한 정보를 덜어내고 핵심만 남기는 집중된 추상화, 몸의 감각과 감정의 울림을 인식하는 연습, 그리고 직감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메커니즘은 매우 실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이 책이 단순한 경영서가 아니라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특히 직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관점은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롭게 알게 된 점은 직감이 언제나 즉각적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직감은 빠르게 떠오르지만, 그 해석과 활용은 신중해야 한다. 저자는 직감을 느낀 직후 바로 결정하기보다, 그 직감이 어떤 유형인지 점검하라고 말한다. 이는 직감을 맹신과 훈련된 판단 사이에 위치시키는 태도이다. 나는 이 균형 감각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삶에서 몇 가지를 수정하고 싶어졌다. 먼저, 불편한 감각을 무시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정보의 양을 늘리기보다 정보의 질을 정리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직감을 느꼈을 때 그것을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그 신호가 어디에서 왔는지 관찰해보기로 한다. 직감은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도구라는 점을 이 책은 분명히 알려주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례가 주로 글로벌 기업의 CEO나 엘리트 리더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상의 소소한 선택에 대한 사례가 조금 더 많았다면 일반 독자에게 한층 더 밀착된 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직감 훈련을 위한 실습 파트가 다소 개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가 스스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결정을 자주 내려야 하는 리더와 관리자, 분석에 지쳐 결정을 미루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감각을 믿고 싶지만 근거를 찾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특히 데이터와 감각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할 것이다.

직감을 신비화하지 않고 직감을 해부하고, 단련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끌어내리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이 직감을 믿으라는 책이 아니라, 직감을 책임 있게 다루라는 책이라고 느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이 책이 말하는 직감은 감정이 아니라 훈련된 판단이며, 선택의 순간에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내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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