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건강 불안을 대하는 일본의 관점 전환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듯 일본은 건강을 오래 사는 문제로 보지 않고,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권리’로 재정의했다. 2000년 도입된 개호보험 제도는 돌봄을 가족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지역포괄케어 시스템, 재택 돌봄,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전제로 한 정책들은 살던 곳에서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을 읽으며,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돌봄이 가족 내부,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이 떠올랐다. 제도가 있다는 것과, 그 제도가 실제로 삶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의 사례는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경제 불안을 다루는 방식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일본 사회를 뒤흔든 ‘노후 2,000만 엔 문제’ 이후, 일본은 연금만으로는 노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을 비교적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시니어 금융 문해력 교육, 자산관리 플랫폼, 실버 인재센터를 통한 일자리 연결, 장수 리스크를 고려한 금융상품이 등장했다. 특히 고령자가 70대 이후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진 주체로 재정의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비판적 시선도 필요하다. 일본의 지역 기반 일자리와 커뮤니티 경제는 오랜 지역 공동체 문화와 지방자치의 축적 위에서 가능했던 측면이 크다. 수도권 집중이 심각하고 지역 소멸이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동일한 모델이 그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외로움에 대한 접근은 이 책에서 가장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부분이다. 일본 고령자 가구의 다수가 1인 또는 부부 가구이며, 고독사가 구조적 문제로 인식된 이후 일본은 외로움을 개인의 성격이나 적응 문제로 보지 않았다. 지역 커뮤니티, 시니어 카페, 소규모 교류 공간, 디지털 연결 서비스는 모두 관계가 유지되도록 설계된 사회 장치였다. 특히 고독을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공공이 개입한다는 점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외로움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지는 않은지, 관계를 회복할 책임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책 후반부에서 다루는 종활과 마지막 10년의 준비 역시 현실적이다. 일본은 죽음을 금기시하기보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장례, 유언, 재산 정리, 관계 정리를 하나의 준비 과정으로 묶어 산업화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권을 넓히는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적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과 재산, 가족 관계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일은 여전히 많은 저항을 동반한다. 제도 이전에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종활 비즈니스는 쉽게 상업화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일관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불안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대로 바라볼 때 기회가 된다. 초고령사회는 복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전환점이라는 인식이다. 이 책은 일본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이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온 제도와 시장을 통해, 한국이 무엇을 참고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노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와 시장, 개인이 어떤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위해서다.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노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은 다소 냉정하게 들리지만, 그 냉정함이 오히려 이 책의 설득력이다. 불안을 직시하고, 선택지를 늘리고, 늦기 전에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초고령사회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 책은 그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비교적 정직한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