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든 동물이든, 우리에게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질 때 비로소 그들도 ‘존재로서의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믿는가?” “AI가 나보다 더 이성적이고, 더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비인간의 영역에 속할까?”
보일의 문장은 논리적이지만, 그 안에는 차가움보다 깊은 성찰의 온기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특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의미를 다시 세우려는 듯했다.

특히 5장에서는 유전자 조작 생명체나 인간-동물 혼종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면서, "종의 구분하는 기준이 단지 생물학적 형태나 유전적 차이만으로 충분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인간만이 권리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관념이, 종을 기준으로 한 경계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누가 인격을 갖고, 누가 권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종의 경계가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근거 중 하나로 배제의 문제를 들고 있다. 우리가 인간 범주에 속하지 않는 존재를 비인간으로 설정함으로써, 그 존재에게 권리, 존엄, 보호를 자동으로 부여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자동적 배제는 인간 중심인 도덕 관념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가 종의 경계를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다시 정의하지 못한다면, 도덕적·법적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즉, 새로운 존재들이 등장할 때 기존의 경계 기준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 존재들은 ‘존재하지만 배제된 존재’로 남게 되거나 권리를 상실할 수도 있다. 이 장을 읽으며 '나는 인간으로서 어떤 존재들을 인간다움이라 판단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 종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새로운 존재들을 마주할 때 어떤 윤리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 또한 남았다.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는 결국 기술의 책이 아니라 ‘존재의 책’이다. AI와 인간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우리가 인간으로 남기 위해 붙잡아야 할 것은 지능이 아니라 감정, 효율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책을 덮은 지금,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속을 걷고 있다.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꿈꾼다면, 우리는 어떤 인간을 꿈꾸어야 할까.” 이 책은 그 물음 하나로, 오래도록 내 안의 윤리를 흔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