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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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 견해입니다




책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AI는 인간을 꿈꾸는가>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책으로만 볼 수 없다.

이 책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까지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에게 묻는 하나의 철학적 거울이었다.

저자 제임스 보일은 법학자다. 듀크대학교 로스쿨의 교수이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이사장으로 활동한 그는

기술과 법,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교차하는 지점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학문적이면서도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AI나 유전자 조작 생명체, 법인과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논의는

결코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오늘의 문제처럼 다가온다.

책의 첫 장에서 보일은 노예, 인조인간, 인공 양 등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들을 다루며 인격과 권리를 부여받는 기준이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인간만이 도덕적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윤리가 얼마나 인간 중심의 감정과 문화적 관념에 묶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 질문이 마음을 깊이 찔렀다. AI가 언어를 구사하고 예술을 창조할 수 있게 된 지금, 과연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법인’과 ‘비인간 동물’에 관한 장이었다. 우리는 기업에 법적 인격을 부여하면서도,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에게는 여전히 권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보일은 이 모순을 지적하며, 인격의 기준이 이성이나 의식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구절을 읽으며, 인간의 존엄이란 결국 타자를 이해하려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I든 동물이든, 우리에게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질 때 비로소 그들도 ‘존재로서의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믿는가?” “AI가 나보다 더 이성적이고, 더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비인간의 영역에 속할까?”

보일의 문장은 논리적이지만, 그 안에는 차가움보다 깊은 성찰의 온기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특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의미를 다시 세우려는 듯했다.


특히 5장에서는 유전자 조작 생명체나 인간-동물 혼종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면서, "종의 구분하는 기준이 단지 생물학적 형태나 유전적 차이만으로 충분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인간만이 권리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관념이, 종을 기준으로 한 경계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누가 인격을 갖고, 누가 권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종의 경계가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근거 중 하나로 배제의 문제를 들고 있다. 우리가 인간 범주에 속하지 않는 존재를 비인간으로 설정함으로써, 그 존재에게 권리, 존엄, 보호를 자동으로 부여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자동적 배제는 인간 중심인 도덕 관념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가 종의 경계를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다시 정의하지 못한다면, 도덕적·법적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즉, 새로운 존재들이 등장할 때 기존의 경계 기준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 존재들은 ‘존재하지만 배제된 존재’로 남게 되거나 권리를 상실할 수도 있다. 이 장을 읽으며 '나는 인간으로서 어떤 존재들을 인간다움이라 판단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 종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새로운 존재들을 마주할 때 어떤 윤리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 또한 남았다.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는 결국 기술의 책이 아니라 ‘존재의 책’이다. AI와 인간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우리가 인간으로 남기 위해 붙잡아야 할 것은 지능이 아니라 감정, 효율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책을 덮은 지금,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속을 걷고 있다.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꿈꾼다면, 우리는 어떤 인간을 꿈꾸어야 할까.” 이 책은 그 물음 하나로, 오래도록 내 안의 윤리를 흔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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