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영화 속 인권 이야기 - 필름의 눈으로 읽는 법과 삶
임복희 지음 / 오디세이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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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임복희 작가의 ‘세상을 바꾼 영화 속 인권 이야기’는 법과 인권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쉽고 깊이 있게 풀어낸다. 이 책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온 참된 이야기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소개하며 인권의 역사, 어떻게 세상이 바뀌어가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책의 차례 역시 인권의 발달 역사 순으로 되어있는데,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담은 <앵무새 죽이기>, <서프레저트> 를 시작으로, 극심한 빈부격차, 노동자 인권, 환경 인권, 난민인권 등의 다양한 인권문제 비판을 담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챕터마다 영화 소개와 인권의 설립 과정을 담고, deep in to film이라는 부록에서 각 영화에서의 논점을 법적 관점, 사회적 관점에서 더욱 깊이 다루어 영화 속 이야기를 넘어 깊이 있는 고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모든 영화들의 여운이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옛날에 본 기억이 있는 <카트>와 <또 하나의 약속> 두 편은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불의와 약자들의 절규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장이었다. <카트>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다룬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마트 직원은 마트의 주인이 아니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들이, 기업의 논리 앞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버려지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영화 속 선희, 순례 등의 여성 노동자들은 분노와 슬픔을 담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다.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 ‘고용의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의 인권이 얼마나 쉽게 침해되고 있는지를 강조하며, 현행법이 노동자 보호에 얼마나 미흡한지, 겉만 번지르르한 법인가를 조목조목 짚는다. 또한 대법원의 판결과 함께 부당노동행위 구제 제도와 부당 해고 구제 제도에 관한 설명을 곁들어 법적으로 어떠한 모순이 있는가를 알려준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황상기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거대 기업을 상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한 시민의 절박한 외침을 담고 있다. 딸 윤미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덮으려는 기업의 대응,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기관, 사건을 외면하는 언론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기에 보기 불편하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산재 인정의 여부가 아니라, 돈보다 생명이, 이미지보다 진실이 소중하다는 근본적인 윤리의식이다. 현 산업기술복합체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자본 집약적이며 폭력적이기에, 사회적 약자들은 이러한 폭력의 가장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장에서 ‘법은 약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하며,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기업과 개인 사이의 불균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분석한다. 또한 입법자들이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지워진 산재 노동자들의 몸을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 위치한 것으로 환기해, 향후 인간의 얼굴을 지닌 정책으로 의제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마무리한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카트>에서는 여성, 비정규직, 생계형 노동이라는 교차되는 불평등의 고리가, <또 하나의 약속>에서는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반적 한국 사회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사회의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은 누구 편인가?, 나조차 무관심이라는 말로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인권은 결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에서, 영화는 우리가 직면한 부조리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책은 그것을 성찰하게 만든다. 책에서 소개된 영화 속 주인공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그냥 우리 이웃, 가족, 혹은 내 미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작고 단단한 용기 덕분에 사회는 조금씩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영화로 인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충분하지 않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눈물을 행동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을 함께해 주는 믿음직한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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