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
윈스턴 처칠 지음, 임종원 옮김 / 행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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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들도 각자 개성이 독특하고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미지가 있다. 처칠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키가 작아 땅딸만하고 시가를 입에 물고 중산모를 쓴 이미지다.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자 노벨수상작가였다는 사실과, '승리의 의미 V' 사인을 짓는 사진에서의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이 책은 처칠의 자서전으로 그의 작가로서의 문체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인간은 언제부터 기억을 시작하는 것일까? 갓 싹튼 의식의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처럼 언제부터 아기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일까? 나의 첫 기억은 아일랜드다. 아일랜드 시절의 풍경이나 여러 일들을 꽤 기억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들이 모습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P10

처칠은 첫 문단으로 이렇게 시작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소환한다. 1874년 11월 영국 옥스퍼드셔 태생으로, 5살 부터 기억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위 귀족 가문의 가풍에 맞게 어릴 적 부터 사교육 틈에서 성장한다. 본인 스스로 교육의 위협을 경험했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가정교사를 피해 덤블 속에 숨어있는 말썽꾸러기 였고, 친절하고 세련된 지성과 교양을 갖춘 이미지로 어머니를 정말 사랑했지만 그 사랑에는 결핍이 있었다. 유모의 손에서 자란 처칠은 학창 시절 문제아로 분류되고 우울감이 가득했다.

처칠은 암기에 능했고 책읽기의 몰입도가 좋았다. 하지만 관심없거나 흥미롭지 않는 것은 배우려 들지 않아 성적은 엉망이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 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인생의 마지막을 돌봐 줄 사람이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불쌍한 늙은 여성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연금보험 제도를 만드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P9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처칠 영국수상은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호소하는 한편, 베버리지로 하여금 종합복지정책을 마련토록 주문했다. 그 결과 유명한 ‘베버리지보고서’가 나왔고 NHS와 기초연금제도가 도입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생사를 가르는 곳이며,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야말로 무슨 일이 생기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어쩌면 내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 P101

육사를 졸업하고 특별허가를 얻어 쿠바 반란 작전에 참가한 처칠은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몇몇 전투들을 목격하며 반란에 대한 동정심과, 스페인 군대 장병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엿보인다. 처칠은 많은 일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판단했고,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도 남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처칠은 자신이 전쟁에 재능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고 쿠바, 인도, 수단, 남아프리카 전쟁에 뛰어들면서 국민 영웅으로 부상하게 된다.

 

스물두 살이 꽉 채워질 무렵 갑자기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내가 수많은 사고의 영역에서 희미한 지식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풍부한 어휘력을 가지고 자판기 구멍에 동정이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말과 말이 가진 뉘앙스를 적재적소에 구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P138

매일 4~5시간씩 역사와 철학을 읽었다. 플라톤의 국가, 웰든 선생이 직접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 입문, 멜서스의 인구론, 다윈의 종의기원과 더불어 그밖의 가벼운 내용의 책들도 함께 읽었다. P142

처칠하면 우리는 통찰력과 리더십, 그리고 작가의 면모, 연설문 이런 것들이 회자된다. 이 문단들을 보면 깊이 있는 독서와 냉철한 사색, 그리고 고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여기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정치가로서 면모 역시 고전에서 체득한 힘이 바탕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전반적으로 글을 읽으면서 표현력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지도자로서의 연설은 국민을 단순히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설득되어져 그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칠의 연설에 힘이 있는 이유또한 독서에 있었다는 것.

 

 

 

 

윈스턴 처칠이 동명이인으로 미국, 영국에서 각자 글을 쓰는 작가였다는 사실은 완전 새로운 사실~!

 

확실히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낸 매순간이 평생 그 어떤 시기보다보 더 끔찍했다. …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항상 죄수들이나 포로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특히 교육 받은 사람이 교도소에서 몇 년 동안 갇혀있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어제와 같이 쓸모없는 재처럼 허비할 뿐이다. 남은 것이라곤 오직 오랜 세월 동안 구속된 삶뿐이다. 그런 이유로 나중에 내무장관이 되어 영국 내 모든 교도소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수감 생활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도입했다. 마음의 양식을 위해 책을 제공하고 주기적으로 볼거리를 베풀어 주면서 죄수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죄과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긴 수감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을 시행했다. 비록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거운 형벌을 가하고 심지어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혐오했지만, 그래도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자비로운 것일 수 있다며 종종 내 책임 하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자신을 위로했다.P315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으로 촉발된 보어전쟁은 제국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가 혼합된 전쟁이었다. 영국군은 보어인들의 농장과 집을 불태우고 분리캠프에 강제 수용했다. 수많은 민간인이 발생되고 전쟁과 상관도 없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강제 동원되고, 이 전쟁으로 인종분리정책과 광산개발 독점 문제는 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질적인 인종갈등과 빈부 격차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처칠은 장교 겸 종군기자로 참전해 포로로 잡힌 후 탈출해서 전쟁 영웅소리를 들었고 자신은 전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어전쟁에서의 맹활약은 정치적 발판의 재기가 되었다. 또한 전쟁의 실상을 낱낱히 영국에 알리며 주요 매체에 글을 기고하면서 수입을 올렸다.

 

3주 동안 나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당 간부는 위태로운 선거구로 나를 보내어 지원 유세를 하도록 했고, 내가 가는 곳마다 승리가 뒤따랐다. 나는 겨우 26살이었다. P433

이 책은 처칠의 1874~1905년 까지의 모험과 투쟁의 삶을 담은 책이다.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오십대에 자신의 20대 찬란한 청춘을 회고하며 1928년 여름 의회의 휴회 기간에 쓰였다고 한다. 책의 구성을 보면 총 450페이지 가량의 분량 중 350페이지가 전쟁에 뛰어든 이후부터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전쟁에 대해서도 나름 명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저 한 영웅의 불살랐던 청춘을 만났던 시간으로 큰 배움의 의미가 있었다.

 

 

 

 

 

 

 

 

 

처칠은 한마디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열성의 조건은 다 가진 인물이다.

이런 모든 환경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처칠을 우리가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만의 강인한 소신과 원칙을 평생 지켜나갔다는 것이다. 외압이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믿고 행하는 소신있는 태도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믿었기에 가능하다. 원칙을 세우면 바른 길로 유연하게 대처하며 최선의 전략을 사용하여 운명과 맞서 싸우는 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태도이다.

 

 

내가 가진 환경을 투덜대는 사람, 포기해야 하나 고민의 기로에 선 사람, 자신의 꿈을 꼭 실현하고 싶은 사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정치인, 일관성 없이 여론에 흔들리는 언론인, 리더십이 무엇인지 모르는 CEO들 ...

누구보다 지금 이 십대 청춘들은 20세기 역사의 위대한 지도자를 이 책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을 만나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내가 가진 것에 행복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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