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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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내 욕망의 발호였다.

그건 '윤동주'라는 창작자의 습작 노트를 보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이다.

왜냐하면 창작자는 절대로 '습작 노트'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습작 노트'라는 공간에는 그 창작자에게 영향을 미친 창작자와 작품들의 흔적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과 작품들이 자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외부에 공개되는 건 창작자로서 가장 꺼리는 부분이다.

그런데, '윤동주'는 그 공개에 대한 '선택권'을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비밀'을 이 책을 통해서 알기를 원했다.

가장 이기적인 욕망의 발호였다.

책 제목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가 가리키는 노트는 두 권입니다.

첫 번째 원고 노트는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이하 '나의 습작기'로 명기함)와

두 번째 원고 노트는 [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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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노트 [나의 습작기] 표지에는 비너스상 그림이 있고 그 옆에 글귀가 있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쩝다(짧다)"

아마도 함경도 지방의 방언으로 '쩝다'라는 거 같은데 뉘앙스가 정겹습니다.

이 '습작기'에는 거친 러프한 그의 글들이 즐비하고 고치고 지우고 덧붙이고 삭제하고 메모한 흔적이 어지럽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습작이 퇴고의 과정을 거친 후 드디어 두 번째 노트 [창]에 반듯하게 옮겨 적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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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고사'가 있습니다.

퇴고(推敲)는 '글을 여러 번 다듬고 고친다'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시 창작 일화에서 유래했습니다.

"새는 우물가 나무에서 자고(鳥宿池邊樹),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推)(僧月下門)"는 구절을 '가도'는 문을 '밀고(推)' 들어갈지, '두드리고(敲)' 들어갈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당나라의 대문장가 한유(韓愈)의 행차를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한유'는 "달밤에는 문을 두드리는(敲) 편이 더 운치 있고 조용한 밤의 정적을 깰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이에 '가도'는 '미느냐(推) 두드리느냐(敲)'를 고민하던 문제를 '한유'의 도움으로 해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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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사를 통해 오늘날 '퇴고'는 '교정, 교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단어와 문장의 선택이라는 작업이 진정한 '퇴고'의 의미라는 것을 고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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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나의 습작기' 노트에서 그 '선택'의 과정과 고뇌를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의 스승적 영향을 준 첫 번째 인물은 '정지용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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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초반 작품에서 '의성어, 의태어'의 활용에 많은 영감을 준 '시집'이 '정지용 시집'입니다.

아마도 '윤동주'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어르신이었다면 분명 이것을 비밀로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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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의성어, 의태어'의 사용으로 나름 명랑한 분위기가 글에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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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노트인 [창]에 있는 [햇빛-바람]이란 시에서 '쏙-ㄱ, 쏙, 쏙' 종성을 옆으로 '붙임표 (-, Hyphen)'를 이용해 이어주며 긴 '장음'의 표현을 글자로 표현한 게 이색적입니다.

'의성어, 의태어'의 감성을 [정지용 시집]에서 감을 익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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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명랑함을 지니던 '윤동주'는 '연희전문 문과'에 사촌 송몽규와 입학하면서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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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문장을 여덟 번 되뇌는 이 시는

마지막 문장에서 "저히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마무리되는

[팔복-마태복음 5장 3~12] 시는 '윤동주'의 고뇌를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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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세속의 현실과 구원의 시간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고 고뇌하는 시간을 맞이하는 듯합니다.

[팔복]의 시, 마지막 구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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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히가 슬플 것이오."와 "저히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오"라는 두 행을 썼다가 모두 지우고 한 행을 비운 뒤,

다시 "저히가 오래 슬플 것이오."라고 쓰고 "오래"를 "영원히"로 고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윤동주는 '슬픔'을 '영원'으로 확정하고 결심하는 의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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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그 '슬픔'이란 단어에 자신을 동여매는 관념적 행동에 의지를 담아 결정한 듯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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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초여름을 지난 7월 14일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윤동주는 체포된다고 합니다.

'윤동주'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생체 실험 사망설'도 있지만 뚜렷한 증거는 없고, 함께 복역했던 사촌 송몽규의 증언을 전하는 숙부 윤영춘의 기록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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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시인 윤동주는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친 게 아니라 '치안유지법'의 법망이 더욱 촘촘해지면서 직접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선동'뿐만 아니라 '관념'에 관여하는 '선전'까지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 사상 통제가 한층 강화되면서 '범죄의 덫'에 걸린 듯합니다.

일단 잡고 보자는 식의 법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체포가 마구잡이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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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치안유지법 위반 행위를 그의 재판 판결문을 토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독립운동에 관한 송몽규(사촌)의 견해를 '청취'하거나 연희전문 동창들과 만나 독립의 실력을 양성하자고 '강조'하고, 조선어 연구와 민족의식의 필요성을 '피력'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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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범'이란 덫에 걸린 '윤동주'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그렇게 옥사하게 됩니다.

'윤동주 시인'의 '습작 노트'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독서는 그의 쓸쓸한 옥사로 이어지며 묘한 공허함에 빠지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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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아시아 기억의 장 속에서 움직이는 윤동주'라는 공동 연구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라진 '윤동주 삶의 기록'에 한 땀 한 땀 기여해서 만들어진 책이라는 막중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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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대체 '윤동주'란 민족 시인을 어떻게 재조명하고 기억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런 물음으로 남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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