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과몰입하는 좌뇌, 침묵하는 우뇌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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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 오랫 의문의 결과를 보여주는 책이어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예전부터 '나를 괴롭히는 게 외부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는 건 아닌가?' 물음에서 철학을 독학하면서 동양철학까지 손을 댔습니다.

결국 '마음'이란 개념에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건 종교이자 명상, 수행인 불교였고 법문은 그 길을 비춰주는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도교라고도 하지만 노자의 '도덕경', 5천 자로 쓰인 짧은 글이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해설하는 책만 수천 가지입니다.

이상하게 불교의 팔만사천 법문과 도덕경은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요즘 수보리와 세존과의 대화로 공, 무아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리불은 이미 천재였기에 그분과 세존과의 문답은 일반인이 쫓아가기 힘듭니다.

'수보리'의 질문은 '꼭 내가 하고자 하는 질문' 그대로를 세존에게 묻고 답을 얻습니다.

내 근기에는 수보리 존자의 질문이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에서 물음이 수보리 존자의 질문과 매우 유사합니다.

진화론적 접근에서 예전에는 '자아'를 담당하는 뇌가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어느 시기인가, 생존에는 '자아'가 유리한 환경이었고, 그래서 뇌는 '자아'를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꿈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예전에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 시리즈에서 꿈을 꾸는 자와 꾸지 못하는 자는 권력에서도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자아'를 잠재우는 버섯이 있다고 합니다.

약물로는 'LSD' 반합성 환각제입니다.

참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LSD는 불법 마약류로 분류되어 엄격히 규제됩니다.

그건 중독성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아'라는 부분이 마비되면 곧바로 공기를 컬러로 볼 수 있고 세상과 바로 하나가 되어 개체성을 벗어나 세상과 하나 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거나 맹수에게 다가가거나 살아있는 존재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다가가다가 사망에 이를 수 있어서 금지 약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아'가 없는 생명체가 있었을 겁니다.

에덴에 동산에 살았던, 그래서 고통도 없는 천국은 바로 뇌 속에서 만들어졌을 겁니다.

지옥도 결국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죠.

'자아'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탐, 진, 치)을 만들어 '집착'하게 만듭니다.

노자는 '유위'이자 '작위'로 '자아'를 비유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무집착'과 노자의 '무위'가 같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던 부분이 머릿속에서 이어졌습니다.

불법과 도덕경은 묘하게 이어집니다.

이 가르침들은 철저하게 좌뇌의 패턴과 개념과 유추, 모든 것에 답을 찾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까지 파괴합니다.

요즘 AI가 신경망 원리로 학습하기 때문에 '완결성'을 만들기 위해서 진실 99%에 거짓 1%를 담아서 출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게 요즘 AI 분야의 고민이라고 합니다.

대안으로 '출처' 표기를 하게 한다는 데, 우린 어쩌면 또 다른 좌뇌(AI)를 만든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AI(좌뇌)가 파멸적인 방향(부정적인)으로 AI를 집중한다면, 어쩌면 종말로 이를지 모릅니다.

'AI에 의한 종말'이 너무 공상적이다라고요.

사람이 '좌뇌'의 거짓말 같은 해석이 부정적으로 흐를 경우 멈추지 않으며 그건 극단의 선택으로 치달아 버립니다.

우울증은 대체로 '극단 선택'으로 귀결되는 게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 전 '뇌과학' 책에서는 좌뇌가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데이터를 우뇌로 옮기면 8배가 빨라지고, 이게 간뇌로 넘어가면 대략 6만 배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오래전 읽었던 책이라 내용의 정확성은 담보할 수 없습니다.

운전을 배울 때 처음에는 이것저것 신경을 쓰지만 익숙해질수록 몸이 알아서 반응하고 운전하는 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지금 타이핑 치는 작업조차 머릿속에 단어나 문장을 떠올리면 그대로 키보드를 쳐냅니다.

희한한 건 이 글쇠들이 키보드 어디에 위치하는지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글쇠가 위치한 키보드를 떠올릴 수 없게 된 거죠.

좌뇌에 정보가 우뇌든 간뇌 등으로 완전히 이전된 듯한 이 느낌 말이죠.

이 좌뇌는 하루 동안 여러 반응으로 생성되는 각각의 자아를 통합해서 '하나'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로서 그 '자아'에 집착하게 되고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수행자들이 공(空)과 무아(無我)를 체득하며 자신의 좌뇌를 굴복시키는 과정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불교적인 부분에서 '우뇌'의 전체적인 시각, 의미적 이해, 직관 등 다 좋았지만, 왜?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길을 찾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빈 여백'과 없음과 있음의 관계 등 상대적 관계와 의존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데, 아마도 이 저자는 '노자'는 알지만 '노자의 도덕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지 않는 거 같아서 매우 안타까웠다.

'노자'의 이름만 뭉뚱그려 지나간 부분은 너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적인 측면으로 '무의식'이라고 치부되는 '우뇌의 작용'을 명상 수행가의 방향에서 기술하고 연구했다는 점이 너무 놀라웠다.

그게 수십 년간 의문 속에 있던 성현들의 가르침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는 점이다.

다음에 이 저자가 불법과 도덕경을 한데 어우러져 뇌과학을 기술하는 책이 또 나오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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