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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의 칼날은 ㅣ 문학동네 플레이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평점 :

물론 구판은 본 적이 없습니다.
개정판의 마무리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출판사 편집자와 개정판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구판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는 소회를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어쩌면 작가도 자객의 미궁, 복수에 눈을 멀어버린 자객의 마음 안에 갇힌 건 아닐까? 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역사를 좋아하고 특히 '사마천의 사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는 내내 '자객열전'이 떠올랐습니다.
작가도 책의 내용에 '사기'의 지분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무협 작가인 좌백 대협도 무협 단편집에서 신자객열전(新刺客列傳)과 함께 여러 편의 '복수'관련 단편을 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역사와 소설과 무협으로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니 곧 밤에 잠이 들자 그것들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작가가 얼마만큼 이야기에 빠져 있었을지, 그리고 그 어둑 컴컴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자객들을 깨워 이야기에 태웠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이 책은 읽을수록 정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왠지 어둠 속에서 눈이 붉게 충혈된 나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복수의 칼날을 벼리며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뜻 모를 두려움이 몰려오게 합니다.

읽는 내내 책을 둘러싼 겉표지가 번거로워 벗겨내니 전혀 다른 표지가 드러났습니다.
이 클래식한 무늬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을까? 란 생각을 잠시 하고 계속 읽었습니다.

비수처럼 꽂아둔 책갈피 또한 멋스럽습니다.
이 책의 콘셉트를 제대로 알려주는 소박한 굿즈라는 느낌이 풍기는 책갈피였습니다.

10년도 더 된 이 책을 다시 끄집어낸 것을 보니 그 내용의 자극성은 충분한 화제성을 갖추었습니다.
요즘 넷플릭스의 자극적인 복수극만큼이나 기발하고 짜릿하지만 통쾌하진 않았습니다.
'복수'란 그저 아직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에 작으나마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현명한 자, 지혜로운 자는 '복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굳이 복수하려 하지 마라!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
죽비 같은 가르침을 주며 마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하수는 받은 대로 돌려주고,
중수는 상대를 저주하지만,
상수는 상대의 평안을 기원하며 자신의 마음도 가볍게 한다고 했습니다.
필부인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지라 현실감은 없습니다.
다만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는 법문에서 '복수의 부질없음'을 깨닫습니다.
'썩은 과일들은 끼리끼리 모여 무간지옥을 만들 테니까요.'

그러함에도 아직 마음의 경지가 낮은 나로서는 '복수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이 책을 들어 그 '복수의 맛'을 다시 음미합니다.
진짜 복수가 뭔지?
그 복수의 짜릿함과 처절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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