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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조론 - 이 땅의 ‘변절자들에게 고함!’
황헌식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6년 1월
평점 :

'지조'란 어떻게 보면 관념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각자의 양심을 찌르는 마음의 바늘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하는 속성을 가지며 그 속의 불확실성에 모든 존재들은 불완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지점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있습니다.
변하지 않고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채워버린 족쇄일 겁니다.

일제 감점기 초반 많은 지식인들이 독립과 민족 자존을 외쳤습니다.
점점 세월이 흐르고 일본은 점점 강해져서 서양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넘어 러시아, 영국 등과 전쟁,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을 봅니다.
점점 민족 해방의 희망이 사그라들 시점에 백성들은 언젠가 일본이 망하고 조선의 해방을 꿈꿨고 꼭 그날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지식인들은 점점 그러한 세월이 10년씩 2번이 넘어가자 점점 변절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군은 질 수밖에 없는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분연히 돌격했습니다.
지식인들은 그 얄박한 신념과 논리 안에서 자신의 보신을 선택합니다.
백성들은 그 꿈,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자신들을 불사른 모습은 변절한 지식인과 정반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남습니다.

왜? 변절자들은 변명만 했는가?
흔하지 않았지만 친일부역을 했던 변절자 중에도 극히 일부 극소수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그의 자손이 조상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친일 부역 청산'을 못한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차라리 '친일 부역 매국 활동'을 했던 자들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으로 민족 통합은 가능했을 겁니다.
'친일 부역'으로 부를 쌓고 좋은 지위에 있던 자들이 해방 후 계속 정치권에 발을 담그는 행동은 정말 파렴치했다고 봅니다.
물론 역사 속에서 '지조를 지킨다'는 게 정답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상삼문 등 사육신의 지조로 일어난 사건으로 결국 상왕 '단종'은 그 자리마저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강화도로 유배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세조가 그나마 '단종'을 상왕으로 모신 상황이라면 그대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고 언젠가 다시 역사를 바로 세울 기회가 올 수 있을 텐데 너무 성급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 대표적 변절자로 숙주나물의 이름이 되었던 신숙주는 세조에게 충언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점에서 비판을 받습니다.
더구나 단종의 부인을 첩으로 달라고 한 지점에선 정말 이 자는 사대부의 자존감마저 내팽개친 건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단종'은 권력 승계 정통성에서 조선왕조를 통틀어도 그 수준에 이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요.
한때 자신이 모셨던 임금의 중전을 첩으로 달라했다니 말이 다 안 나옵니다.
우장춘 박사는 '한국 육종학의 아버지'로, '통일벼' 개발의 기반을 닦은 선구자입니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禹範善)은 대표적인 친일파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것이 우장춘 박사가 조국에 헌신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친일부역행위를 자식인 자신이 속죄하고 역사적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서 더욱 연구에 매진한 사례입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드골처럼 친일부역자들을 처단 못한 건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다만 적어도 '친일 부역 행위'를 하고도, 해방 후에도 영화를 누렸다면 최소한 반성은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껏 지가 잘했다는 논리를 펴는 모습을 보고 있다니 지금이라도 '친일 부역 청산'을 꼭 해야 한다는 분노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 '신지조론'은 <조지훈의 '지조론'>을 함께 실어서 차별화 부분을 비교할 수 있게 했습니다.
'등장인물 도움주기'편에서 해당 인물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현실에서 단죄하지 못한 것을 소설에서는 '처단'할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여지가 남겨주어서 좋았습니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있는 '필사 노트'는 생각 거리를 남깁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변절'이 꼭 역사를 후퇴시키지만은 않았습니다.
현 김민석 총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진영을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다만 다시 반성하고 돌아와 '친위 쿠데타'를 예측하고 막아낸 공로로 총리까지 되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언주 의원조차도 진영을 갔다가 다시 돌아온 탕아로 일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변절한 정치인이라도 그 나름에 명분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한 입으로 두 말할 수 있는 것도 정치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바꾸지 않는 위정자와 정치인들의 말로가 더 참혹했고 국민도 괴로웠습니다.
'변절자'들이 많은 소설과 창작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씹혔으면 하고 바라면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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