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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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있는 '쾌락'이란 단어에 선입견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쾌락'이란 단어는 무시하라!

부정적인 선입견은 고대 금욕주의 철학인 스토아학파와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보며 고통을 줄이는 삶을 지혜로운 삶이라 여겼던 에피쿠로스학파의 대결에서 스토아학파는 '쾌락'을 왜곡해서 에피쿠로스학파를 공격했다.

스토아학파는 후일 기독교와 성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고한 철학이란 자리에 스토아학파는 올라갔고 영광을 차지했다.

'쾌락주의'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에피쿠로스학파는 밀려났지만 그 참뜻을 아는 현명한 사람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물론 정말로 '쾌락주의'를 표방한 책도 있습니다.

시부사와 다쓰히코 저 <쾌락주의 철학>이란 도서도 존재합니다.

말 그대로 부정적 이미지의 '쾌락'을 표방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없다'란 대전제로 시작해서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쾌락'의 장점을 설파합니다.

후반부에서 '성적 쾌락'까지 다루면 '어둠의 쾌락'에 대한 철학을 확고하게 다집니다.

호르몬으로 치면 '도파민 범벅'입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은 다릅니다.

'쾌락'을 고통의 부재이자 장기적인 평온함으로 봤고 '쾌락의 본질'로 정의합니다.

'영혼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로 묘사합니다.

비슷한 것을 떠올린다면 명상, 몰입 상태와 유사합니다.

호르몬으로 치면 세로토닌 분비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가르침은 현대 뇌과학, 불교의 중도 등 명상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상의 관찰을 중시했던 에피쿠로스는 감각적인 쾌락을 좇는 사람들의 특징과 과정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무한한 욕망을 쫓는 자는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욕망은 충족되더라도 다시 목마름을 낳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며 분석을 끝냅니다.

어린아이들이 처음 '놀이'라는 것을 통해서 '도파민'을 처음 맛보면 지치지도 않고 하루 종일 놉니다.

다음날에도 그 '신나는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놀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도파민의 느낌'이 나지 않으면 아이는 지루해하고 따분해하며 '도파민'을 자극할 놀이를 찾습니다.

'도파민'에 중독됩니다.

중독된 아이들은 '재미'를 위해 나쁜 짓으로 발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도파민'이 분출된 뇌는 다시 균형을 찾기 위해 '세로토닌'을 내보내고, 이렇게 균형을 찾아갑니다.

다만 뇌는 공허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다시 '도파민'을 그리워합니다.

호르몬의 격랑은 조증과 울증이 교차하며 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때 세로토닌이 격감하는 순간이 오면 우울증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이런 자극들은 우리의 정신을 지치게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처럼 덜 자극적이지만 더 지속되는 평온, 더 깊은 집중과 쉼을 통해서 뇌를 진정시킵니다.

호르몬의 균형을 찾아 '진정한 휴식'이 세로토닌을 통해서 안정화됩니다.

불교의 중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를 '행복'이라 정의하는 불교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닮은 데가 많습니다.

뇌과학과도 통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가르침은 2천 년의 시간을 지나 현대에서 다시 주목하게 되는 철학입니다.

자극의 바다인 SNS와 인터넷, 유튜브, 틱톡 등으로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쉴 수 있는 해결책을 이 책이 알려줍니다.

#쾌락의본질 #에피쿠로스 #쾌락주의 #미니멀리즘적쾌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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