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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에 '어른 공부'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저자인 '양순자' 어르신은 소천하셨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이 '사형수'를 교화시키는 종교위원 등으로 살면서 세상에 남긴 흔적들은 비범했습니다.
'어른 공부'라는 책이 나오고 10년 후, '양순자' 어르신이 운명하신 후 8년 뒤,
독자들 요청으로 이 책이 재출간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 책을 지인이 빌려보고 싶다고, 동네 도서관에서 대신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드렸습니다.
그때 잠시 몇 장을 넘겨보고 느꼈습니다.
'아, 이 책은 예사 책이 아니구나!'
그 후 이렇게 재출간된 '어른 공부'를 읽어보았습니다.
양순자 선생님은 '어른 공부'라는 책을 쓴 이유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책 ⟪ 어른 공부 ⟫ 는 꼭 써야 할 이유가 있었어.
나는 수술대 위에서 마취가 되기 직전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도를 했지.
깨어나면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내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
비틀거리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잠시 기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 책을 잉태하게 되었지.
물론 인간인 내가 또 다른 한 인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품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어. 그 사람이 힘겹게 인생의 퍼즐을 맞추는 가운데 내가 퍼즐 한 조각을 놓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양순자 선생님은 자신의 마지막 삶마저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두고두고 도움이 될 이야기들을 꼭 남기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 '어른 공부'에 담긴 내용들은 여타 처세책에서도 보기 힘든 내용들이 있습니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부분들을 열거한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58p
오래전에 읽은 셰익스피어의 책 중에 '노인은 젊은이가 묻기 전에 말하지 마라'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내 가슴에 팍 와닿았어.
그 후 한 번도 이 말을 소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어.
나는 책이나 누구에게 들은 말 중에 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갖고 가고 싶다는 구절을 만나면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
궁금한 것 못 참고 꼭 확인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남도 피곤하게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피곤해.
이런 사람은 혼자 놀 수가 없어.
몸은 옛날 같지 않지만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써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하고 싶어.
자식들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에 SOS를 보내야지.
자식들에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남은 기력의 카드를 잔고 없이 다 쓰고 가고 싶은 거야.
젊은 사람들 앞에서 고집 부리지 말고 알아도 모른 척, 그 애들 이야기 먼저 들어주고 잘못한 것 눈에 들어와도 나 어릴적 필름 돌려보면서 꾹 참고.
배가 산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헤매고 방황해도 가만히 지켜보는 노인이고 싶어.
노인은 웃어도 밉다는데 나는 안 웃어도 예쁜 노인이고 싶어.
223p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나를 세탁했어.
2010년 12월 수술하기 전날 일산병원 암병동에서 딸에게 '엄마가 수술실에서 그대로 가면 이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1. 알릴 곳은 명단에 적힌 23명이 전부야.
여기만 연락하고 나중에 엄마 찾는 전화가 오면 "언제 가셨습니다."라고 말해주면 돼.
내 휴대전화 유효 기간은 30일이야.
2. 오늘 사망하면 다음날 화장해라.
3. 수의 입힌다고 벌거벗겨놓고 새 옷 입히지 마라.
내가 입은 옷 그대로, 엄마가 늘 덮고 자던 홑이불로 나를 덮어라.
4. 조의금은 받지 마라.
5. 가루는 절대 항아리에 넣어 납골당에 두지 말 것.
그때 상황에 따라 너희들이 처리하기 좋은 방법으로 알아서 뿌리고 싶은 곳에 뿌려라.
6. 절에 가서 49제 하지 마라. 제사 지내지 마라.
이 세상에 와서 70년간 살았던 내 내신성적표를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이니 기도나 염불 잘해준다고 내 내신성적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내 성적표 들고 가서 심판 받을 것이다.
224p
부록
1. 엄마가 숨을 멈추면 숨 쉬라고 다른 방법 쓰지 마라. 평안하게 가고 싶다.
2. 화장이 끝나고 유골을 땅에 뿌릴 때까지 엄마가 항상 듣던 CD만 틀어라.
CD는 책상 위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 들으면서 환상의 섬 이니스프리로 천당 가는 마음으로 갈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행복하게 가는데 울긴 왜 울어.
너희들이 너무 슬퍼하면 내가 힘들어!
꼭 지켜주기 바란다.
이상.
이 책은 좋은 구절을 가려 뽑을 수 없을 정도로 1쪽, 1쪽이 모두 굉장한 지혜로 꽉 차 있습니다.
이 저렴한 책 한 권 값으로 얻어가는 삶의 지혜가 너무 많아서 읽는 내내 송구할 정도로 죄송했습니다.
자신이 겪어낸 그 삶에서 지혜의 한 조각을 엮어내는 양순자 선생님의 세심하고 예리한 시선에 전율했습니다.
개신교인이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부처님 말씀의 정수를 고루 갖추신 분.
사실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은 거의 같습니다.
더구나 부처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개신교인 양순자 선생님께서는 그 분별도 초월하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이, 특히 개신교인이라면 양순자 선생님을 많이 본받아야 합니다.
그분의 열린 마음은 세상과 바로 하나 되는 지혜 그 자체였습니다.
내 삶에서도 뭔가 퍼즐이 맞춰지지 않아 고뇌와 방황에 길을 잃어 괴로울 때 이 책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겁니다.
나와 가족, 지인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이 '어른 공부'라는 책은 내 옆에 항상 있을 겁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