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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6
이서현 지음 / 비룡소 / 2026년 7월
평점 :
오늘의 투표
내가 김두리라면?
1.나가 죽는다.
2.그냥 산다.
내 목숨을 두고 투표까지 벌이다니.
어느 날 교실 칠판에 적힌 끔찍한 문장. 인형 같은 외모로 톱 아역배우 자리를 지키다 하루아침에 전 국민이 다 아는 '역변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주인공 '김두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대본도 없고 '컷'도 없는 진짜 현실에서 끝없이 추락하던 두리는 홧김에 이 자살 투표를 자신의 SNS에 찍어 올리게 되고, 대중의 반응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ㄴ역변의 아이콘, 얼굴만큼 성격도 지랄 맞음.
ㄴ나 같아도 못 참음. 얼굴 좀 못생겨졌다고 죽는 게 말이 됨?
악플과 선플이 뒤섞인 댓글들, 누군가가 덧씌운 끔찍한 이미지라는 감옥에 갇혀 질식할 것 같던 두리는 '초록 심리 상담소'의 이시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과연 두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수면 위로 드러난 과거와 함께 터진 충격적인 기사는 두리와 상담소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갈까?
무엇보다 이 책이 선사하는 미친 몰입감은 두리의 상담 선생님, '시대'의 놀라운 반전에서 온다. 평범한 사람도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냐는 질문에 시대는 이렇게 답한다.
"그걸 내가 왜 보여 줘야 합니까? 이 나이까지 다른 사람한테 내가 어떤 인간인지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면 그건 본받을 만한 게 아니라 슬픈 일이다."
와, 진짜 이 대목에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쿨하다 못해 '미친 할망구'라는 소리까지 듣지만, 남의 시선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뭐라 하건 내 쪼대로 살겠다"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시대 캐릭터에 완전 반해버렸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시대와 대비되어, 평생 대중의 평가에 갇혀 살았던 두리의 상처는 다음 문장에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나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기분이 어떤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역시 너무 잘 알고 있다. 절실한 노력이 비웃음으로 돌아왔을 때,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 얼마나 끔찍하게 변질되는지도 알고 있다."
타인의 평가에 날것 그대로 내던져져 본 사람만이 아는 저 짙은 절망감.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대 선생님의 모래시계 속 모래가 저항도 못 하고 쪼르르 흘러내리면서도 결국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듯, 두리 역시 시대 선생님의 매니저가 되어가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두려움을 뚫고 자신만의 단단한 내면을 쌓아 올린다.
이서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분명하게 말한다.
"누가 뭐라 하건, 어떤 형태건, 진짜 네 모습은 사라지지 않는 거야."
평가가 미덕이 된 세상에서, 변명이나 설득 없이 그저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이 다정하고 위트 넘치는 위로가 참 좋았다. 지금 누군가의 시선에 갇혀 숨 막히는 기분이라면, 이 책이 흔들리는 마음을 아주 단단하게 붙잡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