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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이진우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철학자 니체는 일찍이 경고했다.
"기술을 통해 더 인간다워질 수 없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노예'가 될 것이다."
AI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다들 묻는다.
"내 일자리도 뺏기는 거 아냐?"
"앞으로는 주식이나 코인으로 각자도생해야 하나?"
그런데 니체 철학의 최고 권위자 이진우 교수가 쓴 신간 《일이 사라진 세상》을 읽다 보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의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월급의 상실'이 아니라 '쓸모의 증발'이다.
매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가는 출근길이 괴롭긴 해도, 사실 우리는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타인과 관계를 맺어왔다.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구나"를 확인받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였던 거다.
저자는 총 3부에 걸쳐 일이 사라진 세상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자리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1부] 일의 종말은 재앙인가, 해방인가: 잃어버린 '참여의 감각' 자동화는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기술은 일자리를 통째로 없애기보다 과업을 쪼개 기계에 넘긴다. 진짜 위기는 일자리의 감소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참여하고 있다는 '일의 의미 구조' 자체가 붕괴된다는 데 있다.
[2부] 우리를 만든 노동, 우리를 망가뜨리는 노동: 일 없는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한나 아렌트 등 철학자들의 통찰을 빌려 경고한다. 노동에서 해방된다고 곧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가 사라지면, 우리는 끝없는 소비와 오락에 중독된 채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3부] 일 없는 세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주체적인 감각의 상실 기본소득과 오락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없다.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월급이 끊기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타인과 관계 맺는 주체적 감각마저 사라짐을 의미한다.
책 속의 한 구절이 유독 뼈를 때린다.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감각을 잊기 위해 오락이나 알코올 같은 값싼 위안 속으로 뛰어든다고 경고한다. 평소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 내게 이 문장은 훨씬 더 섬뜩하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알코올의 취기로 잠시 도피할 수조차 없다면, 무의미해진 시간과 공허함을 도대체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철학자 아렌트의 말처럼,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여가가 주어졌을 때 그걸 의미 있게 쓸 줄 모른다면 우리는 그저 끝없는 소비 충동에 갇힌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창 자라고 있는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 곧바로 뛰어들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이건 한가로운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당장 발등에 떨어진 생존 문제로 읽혔다. 이제 아이들에게 "공부해서 좋은 직장 가야지"라는 과거의 문법 대신, "일이 사라진 세상에서 너는 무엇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할래?"라고 물어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비관이나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가 노동을 대신해 준다면, 그 엄청난 자유를 온전히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데' 쓰라고 권한다.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 우리가 타인의 기준이나 조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묻고 사유할 때, 비로소 진짜 인간다운 삶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준다.
'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일찍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본격적으로 열린 AI 시대, 이제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인간은 과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무엇이든 내 머리로 사유하기보다 AI에게 먼저 찾아 묻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시대. AI가 우리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생각할 자리'마저 빼앗기 전에, 멈춰있던 나의 사유를 깨워줄 이 서늘하고도 매력적인 책을 꼭 한번 펼쳐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