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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극우가 온다
정민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4월
평점 :
"엄마, 우리 반에서 민주당 지지한다고 하면 '대깨'라고 놀림 받아. 대가리 깨졌다면서 병신 취급당한다고. 애들이 쉬는 시간마다 이재명 대통령 욕하는 밈 보면서 낄낄거리는데, 거기서 정색하면 나만 왕따 돼."
지금 10대들의 교실에서 민주당은 '꼰대' '위선' '조롱거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_p.63
“왜 내가 장애인 이동권 때문에 출근길에 늦어야 돼? 내 시간 손해 보는 건?”
“왜 내가 여성을 배려해야 해? 남자만 독박 징병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래도 우리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지 않겠냐”
“진지 빨지 마, 역겨우니까.”
단순히 "요즘 애들이 보수화되었다"는 통계 수치를 접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다. <1020 극우가 온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한 공포에 압도당했다. 책이 파헤친 1020 극우화의 실체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인을 모독하고 약자를 조롱하고 소외계층을 패배자로 낙인찍는 행위가 일종의 '힙한 놀이'이자 '가장 쿨한 문화'로 자리 잡은 잔혹한 생태계였다.
01년생인 저자 정민철은 여의도라는 갈라파고스를 박차고 나와 아이들의 진짜 전장인 인스타그램과 틱톡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목격한 현장은 참혹했다. 아이들은 가장 자극적인 극우 유튜버의 논리를 흡수하고 그것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소속감은 느꼈다.
도파민과 뇌 해킹: 과거 '일베'가 직접 찾아가야 하는 하수구였다면, 지금의 극우 콘텐츠는 알고리즘을 타고 릴스, 쇼츠를 통해 아이들의 뇌를 직접 공략한다.
혐오의 힙화(Hip): 이제 민주주의나 진보는 '지루한 꼰대 언어'가 되었고, 약자를 비하하고 금기를 깨는 행위는 '쿨하고 힙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밀폐된 커뮤니티: 카카오톡이 아닌 디스코드나 익명 커뮤니티라는 벙커 안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암호와 문법으로 결집하며 외부의 소통을 차단한다.
1020 세대는 더 이상 거리로 나가 정의와 공정을 외치지 않는다. 그들은 온라인이라는 폐쇄된 벙커 안에서 알고리즘이 설계한 세상만이 유일한 진실이라 믿는 세대가 되었다. 우리의 뇌를 소리 없이 잠식하고 지배하는 알고리즘의 실체는 공포를 넘어 경악 그 자체였다.
'취업이 힘들다'고 검색하면, '여자가 네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혐오 영상을 보여주고, '군대 가기 싫다'고 검색하면 '페미니스트들이 군인을 비하한다'는 자극적인 클립을 무한 재생시켰다. 알고리즘은 타협이나 공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선택만을 정답처럼 제시한다. _p.116
책을 덮고 나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놀람'을 넘어선 '공포'였다.
집에서는 욕 한마디 안 하는 착한 내 아이들이, 방문 닫힌 그 모니터 너머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혹시 알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서로를 응시했다. 이미 내가 무엇을 묻고 싶어 하는지, 어떤 걱정을 하는지 다 안다는 눈치였다.
"엄마, 중학생은 그냥 다른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돼. 뭘 알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 언어야. 나중에 그 뜻을 알게 되더라도,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돼. '씹선비'나 '진지충' 소리 듣기 딱 좋거든."
내 표정이 꽤나 썩어있었나 보다 "나중에는 나쁜 뜻인 걸 알고 이제 안 쓰니 걱정 마"라며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며 타협을 모르는 새로운 '콘크리트 우파' 세대가 지금 아이들 방 안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다.
진실은 본래 지루하다. 거짓말은 자극적이고 재밌게 가공되지만 진실은 복잡하고 어렵다. 도파민에 중독된 1020세대에게 '점잖은 훈계'는 소음일 뿐이다. 진실이 거짓을 이기려면 진실도 '무기를 갖춰야한다._p.234
이 리뷰를 쓰면서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른다. 300페이지 중 단 한 글자도 버릴 게 없었다. 모든 내용을 다 담아내고 싶은 욕심에 쓰고 또 쓰다 보니, 인스타그램의 글자 제한이 야속할 정도다.
혐오와 조롱이 넘쳐나는 전장에서 홀로 외로이 분투하고 있는 저자 정민철. 그에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연대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부디 더 많은 이들의 손에 이 책이 들리길,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거짓과 혐오의 어두운 벙커에서 벗어나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