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 프롬 더 탑 - 창작의 기본과 이니셔티브에 관한 원칙 66
켄 양 외 엮음, 정지현 옮김 / 디플롯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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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미쳤었지.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는 의욕에 눈이 멀어 일주일간 집에 발길을 끊고 사무실 책상과 한 몸이 되어 밤을 지새웠다. 내가 아는 모든 디자인 기법과 아이디어를 때려 넣고 얼마나 만족했던지...
하지만 시안 발표 후 돌아온 클라이언트의 한마디는 뼈아팠다. "정말 예쁘고 멋진데... 우리가 전하려는 가치와는 좀 동떨어진 느낌이네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에만 집착했던 그때의 나에게 이 책, <팁 프롬 더 탑>을 건네주고 싶다.




건축가 세바스티안 슈말링은 이 책에서 명확하게 조언한다.
"첫 프로젝트에 다 쏟아부으려는 유혹을 뿌리치라"고.
하나의 프로젝트에 모든 상상력을 담으려 하지 말고, 자신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한두 가지 구체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거다.

과유불급은 디자인이나 인생이나 매한가지다. 여백을 두려워해 온갖 '예쁜 것'들로 화면을 꽉 채웠던 그때의 나는, 정작 그 안에 담겨야 할 '메시지'가 들어설 자리까지 없애버린 셈이었다. 채우는 욕심보다 비우는 용기가 훨씬 더 고급 기술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 책은 마치 전 세계 랜드마크를 세운 '건축계의 신' 7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초호화 멘토링 세션 같다。
프리츠커상 수상자부터 롯데월드타워, MoMA를 설계한 거장들이 각자의 가치와 원칙들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한 가지에 집중한다고 다른 부분에서 무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설계든, 서비스든, 생산이든 특정 분야에서는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받는다는 의미다.”_켄양
"평생에 걸친 자기 성장은 곧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다."_리후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비전을 추구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해도 괜찮다.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는 실수가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그저 더 나아지기 위한 반복 과정일 뿐이다."_로렌스 스카르파

책은 시작, 영감, 가치, 몰입, 과정, 자기계발, 결단이라는 일곱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 "스스로를 가두는 경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아가라"는 것이다. 이건 건축 실무자뿐 아니라 자기만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모든 창작자와 기획자에게 적용되는 삶의 지침과 같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기본을 놓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는 조언이었다.
단순히 멋진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우리 몸과 마음을 건축과 연결하고 공동체의 행복을 고민하는 것.
건축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취하는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거장들의 철학이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지구와 상생하며 후대에게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그들의 고민은, 내 삶이라는 건축물을 어떤 재료로 채워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디자인의 여백이 시선의 숨통을 틔워주듯, 인생의 여백은 영혼을 숨 쉬게 한다. 모든 칸을 욕심으로 빽빽하게 채운 일상은 결국 과부하로 무너지는 부실 공사가 되기 마련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 보여주려는 욕심을 '딜리트(Delete)' 키로 지워낼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인생이라는 마천루도 얼마나 높이 쌓느냐보다, 그 안에 얼마나 좋은 공기와 빛이 흐를 수 있는 '빈 공간'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게 아닐까.

인생이라는 마천루를 올리다가 설계 오류가 난 것 같다면 슬쩍 꺼내 보기 좋은 책!!
거장들의 조언을 다 따를 필요는 없다. 내 마음에 꽂히는 벽돌 한 장만 제대로 챙겨도 부실 공사는 면할 수 있을 테니까.

내 인생의 조감도는 일단 '독서량의 수직 증축' 대신 '읽지 않은 책들의 고립주의적 적재'부터 설계해 볼까 한다. 거장들은 랜드마크를 세운다지만, 나는 거실 한복판에 '언젠가 읽을 책'으로 이루어진 마천루를 쌓고 있다. 이 견고한 종이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름신 방어벽'을 세우는 것이 이번 분기 가장 시급한 구조 보강 작업이지 않을까. 그런데 <팁 프롬 더 탑> 읽고 나니 디자인 관련 책 지름신이 내려와 날 유혹하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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