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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
가이 레슈차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평점 :
고백하건대, 난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하며 디데이가 목을 조여올 때야 비로소 일을 끝낸다.
사실상 '나태' 그 자체다.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5분만 더' 무한 루프
집안일 미루기 챔피언
운동·다이어트 계획 세우고 작심삼일
할 일 목록 쌓아놓고 '나중에' 프로젝트
'앗! 이거 난데!' 아마 속으로 뜨끔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분노나 질투에 비하면 무해해 보이지만,나태는 7대 죄악 중 하나다.
그렇다면 우린 죄인인가?
아니면 그저 뇌의 꼭두각시인가?
이 책을 빌려 변명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의지력 부족’이나 ‘인성 문제’로 치부했던 인간의 7가지 대죄.
분노·탐식·색욕·질투·나태·탐욕·교만
이 어두운 감정들이 사실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정교한 뇌 회로의 오작동이라면?
영국의 신경과 전문의 가이 레슈차이너의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은 인간의 7대 죄악을
"너 죄인이다. 개작두를 내려라~" 식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7대 죄악을 도덕적 결함이 아닌 신경과학과 진화론의 관점에서 파헤친다.
1.분노: 내 안의 '경보 장치'가 미쳐서 폭주하는 상태
2.탐식: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뇌가 렙틴 호르몬이나 유전적 조절 회로의 이상으로 신호를 못 받는 것
3.색욕: 뇌 손상이나 화학물질 불균형으로 인해 '이성의 고삐'가 풀린 상태
4.질투: 사회적 비교와 경쟁을 통해 생존 자원을 확보하려는 본능의 과잉
5.나태: 동기와 보상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바닥핵 등)의 에너지 절약 전략
6.탐욕: 도파민 보상 회로의 끝없는 갈구. 만족을 모르는 수집 본능
7.교만: 자기 인식 회로의 손상 혹은 자기애(나르시시즘) 척도의 극단적 치우침
쇠막대기가 머리를 관통한 후 온순했던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피니어스 게이지, 배가 터질 듯한데도 먹는 걸 멈추지 못해 결국 샤워실에 갇혀버린 230kg의 남자. 뇌졸중 후 갑자기 성적 집착에 빠진 남자와 뇌종양 때문에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폭주한 여자, 그리고 고용량 스테로이드 투여 후 비대한 자기애에 빠져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들까지.
주변에서는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괴물’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뇌 회로의 균열에 빠진 희생자였을 뿐이다.
저자는 이들의 비극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가 ‘인격’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폭로한다. 결국 우리가 ‘죄’라고 불렀던 것들의 실체는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생물학적 오작동 혹은 진화가 남긴 생존 본능의 찌꺼기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가 비정상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괴물’이라 낙인찍기 전에, 그의 뇌 안에서 어떤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지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나쁜 감정'이라고 억누르던 것들이 사실 나를 지켜주는 진화의 산물일 수 있다니, 나 또한 '나태'라는 괴물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를 몰아세우곤 했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내 안의 괴물들이 사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진화해온 '기능'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저자의 개인사, 나치 시대 할아버지의 트라우마까지 엮어 인류의 어두운 면을 역사적으로도 탐구하고 종교적 전통(단테의 신곡, 탈무드 등)과 과학을 균형 있게 다루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환자 스토리 덕에 과학서라기보단 스릴러 소설처럼 술술 읽혔고, KAIST 정재승 교수 추천처럼 "냉소도 미화도 없이" 인간성을 직시하게 해준다.
특히 마지막엔 '자유 의지'에 대한 깊은 고찰로 마무리하며, 내 안의 '괴물'들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깨닫게 된다.
오늘도 침대 위에서 "나 왜 이럴까"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모든 '나태한 죄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