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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평점 :
"이렇게 나오지 않을 거면, 엉덩이에 구멍 같은 건 필요 없지 않나."
엉덩이의 존재 이유를 이토록 절박하게 설득하는 문장이 또 있을까.
이건 무네제약의 변비약 광고 카피다.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카피 한 줄에 웃음이 터지고,
평범한 문장에 눈물짓게 만드는 광고 카피.
<일본 광고 카피 도감>은 카피라이터인 오하림 저자가
18년 동안 수집한 9,000개의 일본 광고 카피 중,
뇌리에 깊게 박힌 70개를 엄선해 모은 ‘문장 보관소’다.

이 책은 단순한 광고 문구 모음이 아니다.
각 카피의 배경, 기획자 전략, 그리고 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깊이 있게 분석한다.
저자는 "모든 마음은 카피할 수 있다"는 테마로 일상의 감정을 세련되게 '번역'하는 법을 풀어낸다.
카피를 단순 마케팅 도구가 아닌,
잊힌 진실을 깨우는 '언어의 마법'으로 재해석하며,
평범한 단어가 어떻게 비범한 통찰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그 인생 - 말하면 설교, 쓰면 문학.
그 일상 - 생각하면 평범, 쓰면 문학.
그 청춘 - 말하면 건방, 쓰면 문학.
그 불만 - 말하면 푸념, 쓰면 문학.
테마는 당신 안에.“
문학상의 개최를 알리는 포스트 카피는 당장이라도 펜을 들고 싶게 만들고,
"친구로 올라가, 연인으로 내려왔다"
단순한 관광 전망대였던 도쿄 스카이트리 발렌타인 광고 카피는 썸타던 이들을 그곳으로 집결시킨다.
특히 나를 가장 울컥하게 만든 건 후쿠오카의 다이묘 초등학교 폐교 기념 광고였다.
"인생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의 복습이란다."
올 3월, 다이묘 초등학교는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많은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처럼 말이죠.
우리는 평생 다이묘 초등학교의 아이로 살 테니까요.
부디 여러분,
여기에서 배운 많은 것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도록 하세요.
이것은 모교로부터의 마지막 숙제입니다.
오늘은 이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
140년간 고마웠어. 다이묘 초등학교.
사라지는 학교가 졸업생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숙제라니.
마치 어린 시절 알림장을 다시 받는 기분이었다.
‘끝’을 ‘복습’과 ‘숙제’라는 단어로 치환하는 순간,
폐교는 단순한 사라짐이 아니라 영원한 배움의 공간으로 남게 된다.
눈물이 핑 돈다.
저자의 말처럼, 평범한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울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같은 풍경도 어떤 단어를 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지루해 보이는 일상도,
스쳐 지나가는 뻔한 감정도
저자의 시선을 빌려 다시 읽으면 근사한 '한 줄'이 된다.
이 책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얻는 말을 수집해 둔 도감이다.
문장 수집을 즐기는 사람,
혹은 무심코 지나쳤던 마음의 소리를 정확한 언어로 포착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주변의 평범한 것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곁에 두고 영감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을 읽는 사전처럼 수시로 펼쳐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