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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성실 지음 / 초록서재 / 2026년 1월
평점 :
"생각해 봐. 이게 진짜라면 세상에 밝혀야 하지 않겠어?"
모르겠다.
정말로 밝혀야만 하는 건지.
진실이라고 해서 꼭 밝혀질 필요가 있는 건지.
세상에는 어쩌면 밝히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사실도 있지 않을까?
살아남기 위해,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과 귀를 닫아버린 열여섯 살 청이.
나라면 이 불편한 진실 앞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도가니》를 잇는 2026년 문제작,
소설 <있었다>이다.

차오름보육원의 추악한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원장은 구속되고 시설은 폐쇄된다.
사람들은 이를 '정의 구현'이라 환호하지만, 그 시선은 어딘가 비틀려 있다.
대중은 원장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 사실 그 자체보다,
피해 아동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묘사하는 자극적인 기사에 더 열광하고 집중한다.
그 소란 속에서 아이들의 삶은 철저히 무너진다.
보호라는 명목하에 뿔뿔이 흩어지고,
학교에서는 호기심 어린 잔인한 시선을 견뎌야 한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던 것들은 언제나 이렇듯 쉽게 사라진다. 내가 태어난 집이 그랬고, 차오름보육원이 그랬으며, 지금은 이 보잘것없는 노란 텐트가 그렇다."
주인공 청이는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여기서 겪은 일들 모두 나를 도와준다는 그 '어른들'이 저지른 일이니까. 지금은 상냥해 보이는 저 눈이 얼마나 징그럽게 변하는지 나는 안다. 그래서 어른을 믿을 수 없다."
청이는 이 모든 기억을 덮고 철저한 방관자로 남으려 한다.
하지만 한 피해 아동의 인터뷰는 그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저 말고 또 있었어요."
단순한 피해자 진술처럼 들리는 이 말에 청이는 극도로 동요한다.
도대체 청이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우리가 몰랐던 충격적인 진실,
청이는 바로 그곳의...... 였다.
아이들의 비명을 활자로 읽어내리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아무리 잔혹한 스릴러도 무덤덤하게 넘기는 나지만,
아이들의 여린 살결에 새겨진 상처만큼은 도무지 똑바로 응시하기가 힘들다.
그래서일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던 《도가니》조차 나는 차마 펼쳐들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 <있었다>를 덮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외면하려 했던 건,
소설 속의 끔찍한 묘사가 아니었다.
그 차가운 방, 닫힌 문 뒤에 분명히 실재했던 '아이들'이였다.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어른이 가장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버린 현실.
그 모순 속에서 아이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보호 대신 처참한 희생을 강요받았다.
이 책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상처 입은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나아가는 청소년 소설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특정 사건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때론 우리도 불편한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봐야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작가는 용기 내어 사건의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청이처럼 청소년 독자들도 용기를 내어 보라고 응원한다.
우리가 용기를 냈을 때 달라지는 세상을 마주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가 진실을 직시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아이들은 과거형의 '있었다'가 아닌,
현재형의 '있다'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수 있을 테니까.
진실의 무게가 버거워 주저하는 당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펼쳐보라 권하고 싶다.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사죄이자 유일한 희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