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법
박민혁 지음 / 에피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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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2002년 드라마 〈로망스〉가 던진 이 한마디는

그 시절 우리 모두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학생과 선생님의 사랑,

그 아련한 금기와 설렘이 뒤섞인 이야기는

당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선생님… 좋아해요.”

이 속삭임 하나가 화면 밖까지 진동하던, 그 낯선 금기와 설렘의 공존.

20여 년이 지나, 그때의 ‘가상의 로망스’는 허구를 넘어

KBS 인간극장 <나는 선생님과 결혼했다>의 실제 이야기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기억의 문법』에서 현실의 서사로 다시 펼쳐진다.


고3 학생과 담임 선생님.

8살 나이 차이.

한국과 독일 8,500km의 물리적 거리

그리고 8년의 시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 조건들을

단숨에 뚫고 나온 두 사람의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텔레비전 앞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이상할 만큼 생생하게 되살린다.


하지만 이 책이 드라마 〈로망스〉와 다른 점은,

“제자가 선생님과 결혼했다”는 달달한 러브스토리의 극적 사건보다

한 인간이 어떻게 흔들리고 성장하며 제 삶을 단단히 세워가는지에 더 깊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뿐만 아니라 성장, 상처, 번아웃, 가족, 양육 등 삶의 다양한 층위를 '관찰의 언어'로 기록한다.

아버지가 약해지는 모습을 처음 본 날,

공부하던 엄마의 등을 보며 배움을 좇게 된 이유,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시간들,

1%의 희망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잔인한 기다림.


완벽주의에 몰아붙이며 스스로를 잃어가던 소년은 긴 시간을 건너

소년에서 남자로,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 성장하며

마침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서게 된다.


특히 완벽주의자였던 한 청년이 사랑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서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결핍과 회복의 서사를 그대로 투영하게 하며 깊은 공감을 안겨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 커플의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본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극장’을 통째로 감상한 느낌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뚫고 나와

오직 “우리의 시간”만을 바라보며 걸어온 두 사람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낸 작은 가족의 풍경은

보는 내내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선생님… 정말, 잊지 않을 거죠?”

〈로망스〉 속 그 말이

이 책에서는 이렇게 변주된다.


“사랑은 때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구한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의 기준과 시선 때문에 사랑을 망설이고 있거나

스스로를 증명하느라 지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드라마보다 더 짙은 여운을 남기는 현실의 문장들이 얼어붙은 마음을 천천히 녹여줄 것이다.


삶이라는 거대한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어떤 문법으로 사랑을 써 내려가야 할까?

아마 사랑은, 우리가 가장 서툴 때 가장 진심으로 쓰이는 문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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