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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202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평점 :
독일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무슨 말을 하든 "괴테가 말하길-"이라고 덧붙이면 그럴듯해진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거의 운명처럼 믿으며 평생 괴테를 연구해온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자, 도이치.
어느 날 결혼기념일 식사 자리에서 그는 홍차 티백 꼬리표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테의 명언”을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r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평생 괴테를 연구한 그조차 본 적 없는 이 낯선 문장에
도이치는 이 명언의 출처를 찾기 위해 고전 전집을 뒤지고 수많은 메일을 보내지만, 어디에서도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출처를 찾을 수 없는 말은 가짜인가,
아니면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진실인가.
한 줄의 명언을 둘러싼 집요한 탐색은 어느새 인용과 진실,
언어와 믿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미스터리 소설로 변한다.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살짝 소름 돋는 도이치의 홍차 티백 문장에 대한 집착!!
괴테, 헤세, 발레리, 카프카, 루터, 셰익스피어…
이름만으로도 머리가 지끈해지는 인물들이 줄줄이 소환될 때는
솔직히 살짝 ‘이건 문학이 아니라 미적분 문제집 아닌가요?’ 싶은 순간도 있어 혼미해지기도 했지만
“정말 그 말은 괴테가 했을까?”라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의 꼬리표가 계속 붙어 다녔다.
그 궁금증 하나가 결국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간다.
말이란 끝까지 불편한 도구야. 도무지 익숙해지는 법이 없거든. _p.153
결정적인 해답을 알고 나서도,
책을 덮고 나면 더 오래 남는 건 사실 여부가 아니라 이런 질문이었다.
이미 누군가 다 말해버린 세상에서,
나는 어떤 말을 내 언어로 다시 말하며 살 것인가?
출처가 불분명한 문장 하나에 마음이 흔들려본 적 있는 사람,
좋은 문장들을 모으고 필사하며 버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들러야 할 “명언의 집” 같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