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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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알코올중독자로 망가지고 있고, 어린 여동생은 지켜야 하는 틸다.
버릴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가족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녀의 일상은 ‘참는 것’으로 채워진다.
말을 삼키고, 감정을 눌러 담고, 수영장에서 매일 스물두 번 레인을 돌며, 자기만의 리듬으로 고요하게 삶을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를린 대학 박사과정’이라는 믿기 힘든 기회가 주어진다.
꿈을 위해 떠날 것인가,
가족을 위해 남을 것인가.
틸다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질문 앞에 선다.

소설 『스물두 번째 레인』은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고통과 책임, 사랑과 욕망의 미세한 결들을 진득하게 붙잡는다. 그것은 감정의 분출을 유보한 채 독자로 하여금 감정의 ‘심연’을 직접 응시하게 만든다. 인물은 말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녀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수영장 바닥에서 시작된 고요한 서사는 동생을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죄책감과, 박사과정 제안 앞에서 흔들리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틸다의 내면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나온 ‘버텨야만 했던 시간’을 환기시킨다.

그동안 너무 막장 코드에 익숙해서인지, 생각보다 가족들이 순한 웬수맛이라 인물 간 갈등이 크게 고조되는 느낌은 없었다.

특히 빅토르… 이 남자…
왜 이렇게 요지부동이니!!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면 설왕설래도 있고 그래야지... 내 입술만 바짝 타는구나!!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우리의 틸다는 신여성이었다.
틸다에게 ‘도망’은 없다. 다만 조용히, 아주 천천히, 자신을 위한 쪽으로 방향을 틀어간다. (입술도 틀고 ㅋㅋ) 그렇기에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는 누군가에게는 ‘작별’처럼 보일 수 있지만, 틸다에게는 분명 ‘도착’이다.(입술도 도착 ㅋㅋ)

마지막까지 틸다를 응원하며 읽은 소설.
그러나 큰 갈등도, 자극적인 전개도, 격한 파도도 없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아직 내 배에 가득 찬 가스를 끝내 어디에도 배출하지 못한 느낌이다.

작가님, 다음 편 꼭 내주세요.
지금 이 감정 속 가스, 얼른 시원하게 분출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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