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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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교문 앞에 서 있으면 어떻게 해?"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승지를 네 엄마한테 좀 맡겨라.“

승지를 보면 엄마는 먼저 슬퍼할까? 화를 낼까? 미워할까,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다 보니 처음 엄마의 집으로 가던 날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나타난 아빠는 재혼 후 생긴 승지를 엄마 윤선에게 맡겨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이혼한 남편이 데리고 온 아이 승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윤선은 전 남편의 찾기 위해 나서지만,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호은, 엄마 윤선과 승지, 세 사람은 윤선의 집으로 돌아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대책 없는 전 남편, 아빠를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윤선이라면 쌍욕을 뱉으며 난 모르겠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문을 쾅 닫아버릴 텐데...... 야윈 승지의 모습을 상상하니 차마 그러지도 못할 거 같네 ㅜ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삶의 모순과 존재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전경린 작가는 언제나 관계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자기만의 집』에서도 그 특유의 섬세함이 빛을 발하는데, 시처럼 유려한 문장 속에는 가족, 사랑, 정체성,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물음이 담겨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복동생(?) 승지와의 관계는 갈등과 애정 사이를 오간다. 소설은 이러한 가족 관계 속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시작되면 나는 두근거림보다 먼저 슬픔에 젖을 것 같다." (p.180)

이 문장에서 드러나듯, 사랑은 열정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관계의 본질은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임을 소설은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소설에서 ‘집’은 물리적인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상처를 견디고,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는 공간이자, 개인의 가치관이 온전히 투영된 태도다. 호은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사랑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정립해 나간다.

어른들이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까지도 저렇게 힘껏 받아들이는 사람들인가..... 가슴이 뻐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 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게 삶인 것이다. _p.252

작가는 소설을 통해 삶의 불완전함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인생이란 미완의 설계도 같은 것. 우리는 서툴고 불완전한 건축가일지라도, 결국엔 각자의 방식대로 ‘자기만의 집’을 지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이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희미해지고, 사랑의 의미가 불투명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소설 한 권을 읽으며 나 자신이 이토록 많은 질문을 하게 될지 몰랐다.
한 가정을 이루고,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늘 그 울타리와 공간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 그런데 소설 마지막 윤선의 말이 나에게 해답을 던져주는 듯하다.

"사랑은 이상한 거야. 사랑을 하면 할수록, 우린 사랑하는 사람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거든. 아저씨를 사랑하면서 난 너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거 같다. 그러니 그건 사랑인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난 나만의 집을 지어가는 법과 사랑의 기준점을 조금 찾아낸 듯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탄탄하지 않아도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서툰 건축가이고, 지금도 자기만의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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