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 부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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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남자가 눈물을 흘린다. 고시원 사장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말끝마다 나가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남자는 나갈 수 없다. 가족도 없고 사고로 다리를 다쳐 경제적 능력도 없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딸의 이혼 절차를 묻기 위해 어렵게 얘기를 꺼낸 70세 백발의 신사

매번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복수하려고 엄마의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아이를 가진 딸

CCTV에 범행 장면이 다 찍혔는데도, 우연히 아들과 닮은 것뿐이라는 강도죄로 구속된 아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부의금 600만 원을 어떻게 나눠야 하지 물으러 온 자식들.

하루 평균 예닐곱 명이 찾아오는 이곳은 구청 화장실 앞 복도에 위치한 한 평짜리 무료 법률 상담소이다.

법의 이성이 미처 다다르지 못한 빈틈을 사랑과 공감으로 메우는 한 변호사의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 책, 천수이 변호사의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는 단순히 법적 조언을 넘어, 법이 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노숙자, 폐지 줍는 할머니,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은 법의 보호를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그 혜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다.

책은 의뢰인들의 사연을 통해 법이 단순히 냉정한 잣대에 머무를 수 없음을 보여준다. 폐지를 줍다 자동차를 긁고 재판에 서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법적 판단이 아닌 인간적 공감과 도움으로 그 무게를 덜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가족, 친척 전부 형사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걸어서 주변에 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80대 어르신은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고, 과거의 폭력에서 도망쳐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여성의 이야기는 법이 단순히 정답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회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맞는 기성복처럼 설계될 수 없다. 대전고등법원의 판결문이 "법의 이성에도 빈틈이 있다"라고 했듯, 법이 채우지 못한 공간은 결국 사람의 손길로 메워져야 한다. 천수이 변호사는 단순히 법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어떻게 법의 역할을 보완할 수 있는지를 몸소 실천한다.

책의 제목이 묻듯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국립국어원이 정의한 사랑의 또 다른 뜻에는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귀중한 사랑의 대상이 있었음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우리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사랑이 통하지 않는 법이 더 중요한 순간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변호사로서 많은 상담을 하면서 결국 사랑으로 시작한 문제에서는 빈틈없는 법적논리가 담긴 해답보다는 진심이 담긴 사랑이 보다 나은 답이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_천수이 저자의 편지 내용 중

대단하고 거창하게만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차가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행동이었다. 법의 냉철함과 인간의 따스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그들의 사연을 사소하지 않다며 진심을 다해 경청해 주는 천수이 변호사의 모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이해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법이 참 미웠다. 법은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법을 잘 아는 그들은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잘도 빠져나갔다. 법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때, 천수이 변호사의 법과 사람 이야기를 만난 건 나에게 큰마음의 위안이었다.

난곡 달동네 출신의 변호사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듯,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떤 태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묻게 된다. 그리고 단지 책을 읽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행동으로 변화하길 스스로 다짐한다.

차가운 법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작은 사랑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살 만한 곳이 될 수 있다는걸......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게 오늘을 또 살게 만드는 거 같다.
고맙습니다. 따뜻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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