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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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웬만한 것은 다 이겨낼 수 있었다.
화려한 시절을 지나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설 때도 놓지 못했던 거.
글을 써야 살 수 있었고, 살아낼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묶은 이 책은 하루키가 기획하고 편집하고 해설할 만큼 그의 애정이 듬뿍 묻어있는 책이라 화제가 됐다. 뉴욕의 화려한 거리만큼 유명세를 떨쳤던 피츠제럴드는 인생의 낭만과 성공기를 걷기를 잠시, 후배 작가 헤밍웨이의 추격과 아내의 정신질환, 내놓는 작품마다 문학계 비판으로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일까, 책에 소개된 그의 단편과 에세이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보여줬던 흥분된 세련미가 결여되어 있다. 8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상처와 절망, 웃음 뒤 숨겨진 우울이 담겨있다. 그들은 그걸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절망스럽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겉치레를 결국 움켜지려는 것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뒤쪽 5편의 에세이를 보고야 왜 소설들이 이렇게 전개됐는지 어렴풋 짐작이 간다. 소설은 피츠제럴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절망을 벗어나려 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 긍정적 생각을 고취하려 했던 간절한 노력. 그래서 난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가 더 좋았던 거 같다.

<위대한 개츠비>를 워낙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하루키가 선정했다는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왜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는지, 5편의 에세이를 보고서야 이해가며 숙연해진다.

'나'는 더 이상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기껏해야 고된 일을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 정도지만, 나는 이제 그 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자아가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제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커다란 집에 혼자 남겨진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_p.325.

글쓰기를 하며 생각을 하도록 강요당한 것임을 깨달은 피츠제럴드는 몹시 지친 상태에서 첫 휴식기를 가지며 과연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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