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그림과 과학을 좋아하다 보니 책을 만만하게 봤나 보다. 그동안 알던 그림도 있었지만 생소한 그림들과 어려운 과학 이야기들의 나열이라 읽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기하학이니 다면체니 수학 이야기는 나를 참 어지럽게 만든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그림들을 다 수집해왔는지 그게 더 놀라울 정도였는데, 마치 다빈치의 노트를 몰래 훔쳐보는 듯 흥미롭기도 하다. 저자는 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발견하면서 과학지식의 형성에서 시각화와 재현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퍼져있던 기하학적 세계관, 플라톤의 다면체, 15세기 원근법의 발명, 성모마리아 그림 속에서 발견된 갈릴레오와 망원경의 역사, 세상의 모든 지식을 끌어모으려고 했던 백과전서, 샤틀렌 부인 초상화에 담긴 뉴턴의 철학, 헤켈의 생명의 나무 등 진기한 그림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그중 과학과 사랑에 빠졌던 샤틀레 부인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평가 받았던 그녀의 지적 성취가 안타까웠다. 아마 책 속에 소개된 그녀가 번역한 네덜란드 작가 베르나르트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 속 이야기가 그녀가 정말 호소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과학에서 보편적으로 여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편견은 나를 매우 강하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중략우리 여성이 사고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장소는 한곳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커다란 모순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략모든 면에서 남성의 지성과 유사한 지성을 소유하는 피조물들이 왜 넘을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억제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가능하다면 누구라도 그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분명 그 당시에도 뛰어난 재능과 지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과학과 예술의 새롭게 발전됐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