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산책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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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산책하듯 거닐고 싶은 공간은 어디입니까?

책 띠지에 나온 문구에 혹 해 이 책을 선택했다. 산책 좋아하는데, 얼마나 좋은 산책길들을 추천해 주려나 잔뜩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공간 인테리어와 관련된 책이었다. 다소 실망한 마음에 읽기를 미루다 어느 날 공간 디자인 사진들을 쭈욱 넘겨보는데, 한 루프톱 수영장 사진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수영장 그림 시리즈를 옮겨놓은 듯 작품이 현실 공간에 들어온 거 같았다. 내가 저 공간에 있다면 에드워드 호퍼 작품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당장 거기가 어딘지 찾아봤다. 그래, 다음 여행에서는 이 공간에 꼭 머물러야지.

사람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 거, 말과 태도, 외모와 패션 등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한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렇기에 공간에 매력적이고 공감 가는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책의 저자 김종완 공간 디자이너는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거 같다. 그곳의 철학과 신념, 앞으로 나아가 방향을 잘 캐치해 무형의 공간에 채우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곳을 방문한 이들이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낸다.

책에는 호텔, 사무실, 병원, 백화점 매장 등 7년간의 공간 디자인 기록이 담겨있는데, 특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간은 팬데믹으로 운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진 공간들이었다. 너무나도 정갈하고 아름다웠던 오마카세 레스토랑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동 뷰티 놀이 공간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때 그곳에 심혈을 기울였던 클라이언트와 공간 디자이너들은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몇 개월 동안 애써 품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그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다. 책에도 그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어 독자들도 더 마음이 가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들을 보니 하나같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명품 공간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가의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서 살짝 삐딱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돈을 쳐발쳐발하면 당연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남은 자재들을 활용해 소외계층을 위한 공간을 선물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삐딱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 자신이 참 미안해진다. '저스트 키든 파운데이션'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매해 신청을 받아 소외계층에게 새로운 공간을 선물하고 있는데, 올해는 갈 곳 없는 청년들의 임시 보호소를 만들어 그들에게 따뜻한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멋지고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거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실천을 해오고 있는 종킴스튜디오가 앞으로도 흥하길 바란다. 그만큼 더 많은 ESG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다음에는 '저스트 키든 파운데이션' 공간들이 책으로 나오면 너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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