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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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고 싶어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치료를 거부하고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일 줄 몰랐다. 엄마에게 남은 마지막 두 달 동안 늘 그렇듯 일상을 보내온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는 결국 정연의 곁을 떠났다.

출산을 겪고 나서야 내가 엄마의 살을 파고 나온 걸 알게 됐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도 나를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겨준 엄마. 소설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에 먹먹해진다. 나의 엄마 또한 건강이 좋지 않기에 늘 친정에서 오는 전화는 나를 긴장케 한다. 행여 새벽이나 늦은 밤에 친정에서 전화가 올까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속 정연이 마치 내가 된 듯 이야기 속에 몰입한다.

엄마의 영원한 부재에 대한 공포이자 엄마가 떠난 뒤부터 반복될 내 외로움과 죄책감에 대한 공포...... 엄마가 떠난 후 느꼈을 정연의 그 공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 손이 사라지고 암흑 속 끝없는 공간에 갇힌 느낌일까. 엄마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정연은 엄마의 그 공간에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부재 속 엄마의 식당을 열며 엄마의 공간에서 엄마의 냄새를 자신의 몸에서 맡는다. 그렇게 엄마가 떠났다는 걸 덤덤히 받아들이는 충분히 시간을 가진 후에야 끝이 없을 거 같은 암흑 속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인다.

홀로 극장에 앉아 독립영화 한 편을 본 듯 조용히 눈물을 닦아냈다. 짧은 소설에 긴 여운을 남긴 이 소설을 이 겨울에 만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조해진 작가님을 왠지 사랑하게 될 거 같다. 이 겨울이 결코 시리지만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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