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 - 시각장애 언어학자가 전하는 '보다'에 관한 이야기
호리코시 요시하루 지음, 노수경 옮김 / 김영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지면 안 돼"
'어떻게 만지지도 않고 볼 수 있다는 걸까?'

누나의 학예회 미술작품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멀리 있는 물체를 그야말로 손에 쥔 듯이 알 수 있다니, 내게 시력은 초능력이었다.


두 살 무렵 소아암의 일종인 '망막아세포종'을 앓고 두 눈을 적출해야 했던 저자는 빛도 어둠도 존재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왔다. 모두가 같은 줄 알았지만 다름을 깨달았을 때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차이에 힘듦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서로의 차이를 즐기자'라는 마음으로 다름을 즐기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신체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해와 오해의 차이도 컸다. 일본은 '장애인'에 대비되는 말로 '건상자(健常者)'라는 말을 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두 건강하지 않다는 건가. 이 세상에 항상 건강한 사람이 있기나 한 건지. 저자의 말처럼 '장애인'과 '건상자'는 결코 대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한국도 '장애인'에 대비되는 말로 '일반인', '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런 말들이 장애인을 건강하지 못하고 비정상인 사람들로 인식하게 만들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번 한 번만 해드리는 거예요."
점자블록이 없어 길 안내를 부탁했을 때

"그래서 장애인은 반액으로 깎아 주는 거잖아요."
승차 발매기가 터치스크린으로 바뀌면서 매번 승차표를 받으러 가야 할 때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교수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수업 중에 트럼프를 하거나 다른 과목 공부를 하고 심지어 식사를 하는 학생들.

다름이 아닌 차이와 차별로 분노가 느껴진다는 저자는 장애인이니깐 친절을 베푸는 거고 반액으로 깎아주니깐 불편하고 위험해도 참으라는 건가 싶어 더욱 참담하다.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세금 혜택이나 요금 할인을 해주지 않는 대신 설비를 확충하는 편이 더 논리적인 게 아닌가.

세상은 꼭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만져보고 들어보고 맡아보는 거, 저자에게 그것이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맞춰진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아가기란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기도 하다. 한국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고 베리어프리 등의 복지정책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일본이지만 여전히 일상과 공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거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정책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었을 불편함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라고 하지만 늘 '우리' 테두리 밖에 존재해야 했던 그들. 우리는 보호와 배려라는 말 아래 보이지 않는 경계를 그어놓고 계속 '차별'을 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힘들고 외로웠던 싸움, 그 속에서 진지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은 저자의 일상을 보며 그 경계가 언젠가는 꼭 허물어지길 바라본다.

'눈으로 보는 부족'과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이 서로에 대한 차이를 즐기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 때 서로를 향해 제멋대로 생겨난 편견도 산산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을까. _책 속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