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리 로페즈 (1945~2020)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다. <늑대와 인간에 대하여>로 미국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북극을 꿈꾸다>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부터 대지와 인간의 관계, 인간의 정체성 등의 문제를 다룬 픽션, 논픽션 작품들을 발표했다. 다른 작가들과 협업, 공동 작업을 왕성하게 펼쳤고, 이 에세이집에는 협업의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그는 어린시절 캘리포니아에서 자랐으며 평생 이 곳을 그리워하였다는 이야기로 에세이집이 시작된다.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하며>에서는 그가 이 장소에 대해 특히 애착을 느끼는 감정적 이유를 찾는 과정을 그렸다.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아버지의 부재 동안 어머니로부터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진 어린 소년의 육체가 유린당한 기억이 가득한 캘리포니아는 이와 동시에 그가 '살아 있는' 혹은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를 내포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배리는 이 에세이집에 자신의 삶의 전반에 대한 회고와 동시에 자긱고백, 자신의 신념을 담은 에세이를 실었다. 

이는 그가 55년동안 숲과 평원, 사막, 북극 등에서 얻은 자연과의 교감, 대지와의 친밀감을 통해 고통에서 치유로 행해 나아간 생의 여정이자 기록들이다.


자연주의자이며 신비주의자인 그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신앙의 발현이 그를 살아 있도록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었음을 고백한다. 그것은 세상이 규정짓고 원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믿음이 아니었더라도 그가 겪은 고통스러운 어린시절을 버티게 해준 끈이었고, 살아야할 순간의 구원의 손길이었음을 그는 고백한다.


그는 네 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의 어린시절을 유린한 아동 성도착자와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쏟아낸다.

그가 어떻게 4년 반 동안의 시간을 견뎠고, 고작 7살밖에 되지 않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견뎠고, 그러는 동안 그가 살아 있도록 갈망한 자연에 대한 예찬과 1960년대의 캘리포니아의 분위기에 대해 회고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동 성도착자에게 유린당하고 있을 다른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망하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존경받는 인물의 성범죄 증거가 제시될 때 그들의 더럽고 추악한 범죄가 어떻게 덧입혀서 포장되는지를... 


" 비중 있는 사회적 역할과 관대한 제스처로 쌓아올린 신망은 아동 성도착자들이 만들어낸 보호막일 때가 많다."


실제로 어머니의 재혼으로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몇 년 후, 그를 다시 찾아온 가해자가 어머니와 재혼한 새어버지 앞에서 저자를 어떻게 모함했는지! 가해자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눈 어머니가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하지만, 그분은 의사잖니!"

저자는 딱 이 한 문장으로 말했다... 나는 이 문장에 담긴 저자의 분노와 좌절과 실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의 명망을 가진 인사가 어떤 식으로 힘없는 자들을 유린해왔는지... 그들의 교묘한 범죄가 어떤 식으로 가려지고, 포장되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많은 성비위 사건들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그들, 혹은 자기방어가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의 아동들이 당하는 학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들이 상대해야했던 포장되고 가려진 권력을 가진 가해자들을 그려본다.


"수년간 연쇄 아동 성폭력범 추문과 관련한 신문과 잡지 기사를 읽고 종합한 바로는,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가장 욕망하는 응징의 방식이 돈과 정의이며 거기에도 순번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 짐작을 말하자면,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믿어주기를 바란다. 존엄의 감각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토대를 원한다. 자기 존중의 회복이 돈보다 중요하다. 복수보다 중요하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타인의 공분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타인의 공분이나 대중의 분노가 아니다. 자신을 대신해서 분노를 발화해주기를 원하는 게 아니란다. 단지 믿어주는 것... 사회적인 신망이 두터운 이들이 하루아침에 성범죄의 가해자로 밝혀졌을 때, 한없이 공명정대하며 인자한 얼굴로 장기간의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나는 피해자들을 믿어주었던가? 비단 성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은 아동들이 자신이 당한 일의 종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깨닫기 전에,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이의 아동들이 당할 정신적 고통을 믿어주었는가.


그의 어머니도, 새어머니도... 어머니의 사촌 에벌린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담담한 그의 기술 뒤로 그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마음 속이 엉망이었고, 망연자실했고... 진실이 위폐된 곳에서 그는 자신의 치유, 세정식을 시작하게 된다. 


생은 많은 경우 어린 시절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도 자신의 이면에 뿌리내린 터무니없는 감정들이 아동기의 경험에 기반한다는 자각과 함께 심리치료사를 통해 치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치유를 완성한다.




그가 왜 이런 상처와 치유에 대한 과정과 감정과 통찰을 고백하였을까? 

나는 그를 이루는 많은 감각들이 이 어린시절의 상처와 경험, 그와 함께 그 순간들을 견디고 살아 있도록 도운 신비한 경험과 자연과의 교감의 중요함을 말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치유의 끝을 경험한다. 상담치료사와의 치료를 받고 귀가하는 어느 날, 가슴벅찬 안도감이 들면서 폭압의 갑작스러운 증발을 경험한다. 해결되지 않던 공포와 분노는 연민으로 바뀌었고, 타인의 악몽에 공감하는 보다 큰 포용력을 자신의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 우리에게는 우리를 삶의 예의로 다시 데려다줄 타인이 필요하다."


이후 그의 다른 에세이를 보면서 나는 더욱 확실함을 느꼈다. 그가 타인의 악몽에 공감할 수 있었으므로 북미 역사사 선주민으로 살아가던 자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질 때 '대학살', '폭력', '죽음'으로 변한 현장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죽음이 미국 역사를 다시 조망함으로써 '삶의 예의'로 다시 데려다 줄 타인이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읽었다.


또한 자연과 대지, 그가 행한 많은 협업들도 그의 이러한 성품에 기인한다. 기후위기와 기후변화의 현장에서 <주의 기울이기>, <인내하기>, <몸이 아는 것을 귀담아듣기>를 실천하며 교감하였던 그였기에 장소와의 친밀감을 누리며 수천년, 수만년 전에 살아간 원시인들과도 교감하고 동질감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압적이지 않다. 그는 말이 많고 주장이 강하며 신념을 앞서는 강력한 무기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온화하고 자연 속에 녹아드는 자신을 발견하며 그곳에 그가 있음을 기뻐하는 모습을 띈다.


그의 관찰을 통해, 서술을 통해, 행간의 묻어나는 의미를 읽는다. 그러므로 나는 <힘의 열네 가지 양상>을 읽으며 탁월함을 느낀다. 한낱 일화가 열네 개로 늘어져서 꼬리를 잇듯 이어져 있는데 글을 읽으면서 속에 어떤 긍정의 힘이, 부정의  힘이 담겨 있는지 저절로 깨달아진다. 그의 탁월함은 이런 서술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 여지를 남기며 관찰을 토대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독자가 비집고 들어갈 많은 여지와 생각거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마지막 인사는 우리 곁에 진하게 남아 여운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