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구한 의병장 양달사 - 1555년 을묘왜변 영암성 대첩 한무릎읽기
이이랑 지음, 윤종태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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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의병장 찾기.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역사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이렇다.

"태평성대에는 신분사회라도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풍전등화의 형세에 죽어나는 것은 민초들밖에 없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요, 지배자들의 것이다.

전쟁에 대한 기록은 특히 더 심해서 싸우다가 죽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 백성이나 계급 낮은 병사이건만 그들의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생명의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인간의 법으로 그 경중이 명확했던 신분사회에 살았던 사람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떠받들었던 '상전'이 있었다. 

신분사회에서 하층민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게다가 사회 기강이 흔들리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했던 조선 후기를 생각하다보면 울화가 스멀스멀 치미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영암성 대첩에 대한 기록들을 살피다가 "광대들이 활약했다"는 대목을 발견했단다. 광대들이 쳐들어온 왜구들을 웃기는 사이에 기습공격을 하여 승리를 이끌었다는... 그럼에도 그들의 공은 이름 없이 남은 한 줄로 갈무리되었더란다.



스토리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전투에서는 몸을 사리고 어떻게든 몸보전에 힘썼던 '나리들'은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려 지신의 공을 앞세우느라 앞장섰던 때다. 저자는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나라를 지켰던 이들을 살려내고 싶었단다. 진짜 역사를 들려주고 싶었단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하는 것은 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은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에 실린 외워야할 지식이 아니라, 한 시대를 공부하여 그 시대를 살아낸, 견뎌낸 '실제 삶'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의 적은 "100년의 태평성대"때문이었다는 말을 기억한다. 영암성 대첩을 미리 준비하고 기민하게 전략을 사용했던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에 초점을 맞춰 안보의 중요성과 일개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것이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 드리는 보답일 것이다.


역사의 기록은 미진하여 많은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에 맡겼다. 잘짜인 이야기의 구성과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시대를 재현하고 아이들에게 "살아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 이야기의 중심은 끼동이.

양달사와 광대패의 만남은 2년 전 양달사의 어머니 회갑연에서였다. 양달사의 둘째 아들 '철'이 줄을 타던 끼동에서 활을 날린다. 소동 중에 폰개 할아버지에게 호박동곳을 건네는 양달사 어머니를 끼동이 본다.

2년 후 이방이 이 호박동곳을 빌미로 폰개 할아버지를 잡아가고 끼동은 그를 구하기 위해 양달사를 만나러 사력을 다해 도망친다. 양달사의 도움으로 일이 잘 마무리되고 광대패와 양달사의 인연, 끼동과 철, 봄똥이라 불리는 춘동의 인연도 깊어져 간다. 

때는 왜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시절이었다. 시묘살이로 해남현감의 자리에서 물러난 양달사는 혹시 모를 난리를 대비해서 조심스럽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산봉우리에 봉화불이 오르고 가까운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것을 알고 양달사는 편지를 끼동편에 보내고 전투를 준비한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고, 왜구의 약탈은 극에 달해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죽어나가는 장면을 끼동은 목격한다. 게다가 양반의 횡포가 극에 달해 사회 기강이 무너진 탓에 자발적으로 왜구가 된 조선인도 심심찮게 많았던 때다. 끼동은 적장의 눈에 들어 줄을 잘 타는 자신의 재주를 이용해 왜구처럼 변발하고 그들의 팀에 끼어 기회를 엿본다.


한편 양달사는 오합지졸, 탁상공론에 빠진 양반들 틈에서 홀로 군사력을 모으며 닥쳐올 전투를 준비한다. 끼동이 생사를 알 수 없는 폰개 할아버지의 걱정은 깊어가는데...


양달사는 여러 전략을 짜는데 그 중 핵심 역할은 바로 광대패였다. 전쟁을 준비하는 양달사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전략을 짜고 지혜를 모아서 협공을 준비한다.



양달사는 영암성 대첩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었을까? 정미사화라는 명종 때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끼동의 출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

책을 읽으며 명종 때 소윤과 대윤의 대립 및 정미사화가 궁금해졌다. 아이들이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이를 해결해 나갈 때 생각이 넓어지고 역사의식이 생겨나면 시대를 사는 지혜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상상력은 역사 속의 한 줄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광대들이 적들을 웃겨서, 적들이 정신을 잃은 틈을 타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 한 줄이 200페이지 가량의 이야기로 탄생하였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자극받고,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힘을 느낄 것이다. 글을 읽을 때마다 어떤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개정된 22년 교육과정을 살펴보니 "융합"이 본격적인 학습 목표가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스토리를 창출하는 상상력을 자극받아 자신만의 언어의 힘을 자라도록 밀어올릴 수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아이의 생각이 자라고,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이 커질 것을 기대한다.


책 속에서 언급하였듯이 "전쟁에 불리할 때 도망쳤던 자들이 전쟁에서 이기자 서로 자기 이름을 올리려 한 것"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평화와 자유와 존중이 소중한 이유를 역사 속 한 페이지도 차지하지 못한 "한 줄 역사" 영암성 대첩에서 발굴한 저자에게 감사하다. 


세게 곳곳에서 전쟁의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이 때에 평화를 소망하며 굳건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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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21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입니다. 덕분에 이런 숨겨진 역사를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