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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등록된 정보라 작가의 신간 <고통에 관하여>가 출시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가제본이지만, 실제 표지에는 빛나는 초록빛과 캡슐 속의 진주알 같은 둥근 것이 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띄는데요. 이 책은 고통을 없애자 고통을 추구하게 된 자들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한 여자와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합니다. 장면이 바뀌어 그 두 사람을 포함하여 비행기에는 여섯 명이 있지요. 륜 형사의 이름이 제일 먼저 언급되지만 성별은 알 수 없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여성이라 소개되었던 여성의 이름은 현으로 사장이라고 하네요. 손에 낀 반지는 누군가의 관계에 대한 복선이군요.^^

차례부터가 신선합니다.
기억 : 해마체
온도 : 체성감각 영역
정서 : 번연계
논리와 판단 : 전두엽
깨달음 : 시상하부
삶 : 온몸으로
마치 뇌에서 정보를 받아들여 기억을 형성하고 육체에 체득하여 감각을 형성하여 정서를 구축한 후 논리와 판단을 이끌어내어 깨달음에 이르게 되어 삶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보는 듯 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나면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되는데요. 삶의 의미, 목적, 신념과 신뢰, 믿음을 찾는 인물들의 고뇌와 자기확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고통을 주어 권력을 추구하는 교단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담여 있습니다.

이 책의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메모를 해두었는데요, 작가님의 작명센스가 돋보이네요. 각 이름의 의미마다 그의 삶이 보이고 해요. 한자를 사용하여 한 글자로 간결한 이름을 지어서 더욱 이름의 의미가 돋보입니다.
교단의 사주를 받은 태가 고통을 제하는 약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에 테러를 가하여 경의 부모님이 돌아가십니다. 태의 변호사는 태의 신념을 거스르면서 그의 형을 줄여주었고 태는 복역하면서 교단으로부터 돌아섭니다. 이 재판에서 경, 태, 태의 변호사, 태의 정신과의사, 륜 형사, 제약회사의 법무부 직원이 등장합니다.
12년 후 교단의 중심인물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태에게는 한이라는 교단에 충성하는 형이 있는데요. 한을 의심하는 륜 형사와 신임형사가 태를 찾아오면서 다시 12년 전의 인연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경의 부모님은 제약회사를 운영하면서 경과 경의 오빠 효에게 약의 효능을 실험합니다. 견디다 못한 효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경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 극단의 선택의 결과로 살아남게 되지요.
"쾌락과 고통은 다르지만, 근원은 같아."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로 고통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없애야하는 불필요함으로 전락하는데,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여 교단을 형성합니다.
그들은 단계별로 고통을 극복하여 초원에 이르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설파합니다. 고통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 맞는 것이므로 교단의 입장에서는 제약회사가 적이되는 것이다.
기도회 사건, 제약회사 폭발사건, 신약물질 분실사건, 새로운 살인사건 등을 주축으로 어린시절, 과거의 기억, 통증을 대하는 각 사람들의 다 다른 반응과 자기확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각자의 신념,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의 고통과 구원에 대한 고찰 등이 어우러져 심도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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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이름이나 성별의 언급이 없어 불편했는데... 작가가 이분법적성구분을 지양한다는 것을 알고나니 인간의 성이 스펙트럼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동의하거나 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과 타인의 삶을 제한하지 않는 연대감으로 극복하는 사회를 그려보는 노력을 상상하게 하였다.
기억을 떠올려서, 상처를 내어 고통을 극복한 후 남는 흉터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흉터를 남기는 이유가 평생 눈에 보이게 하려고 내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니까 흐려진다고 경은 말합니다.
기억한다는 것, 통증을 체감하는 것, 감정을 자극하는 것, 의식적인 선택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연대와 사랑을 다시 정의하는데요, 주옥같은 문장들이 등장인물들의 사유에 따라 면면마다 가득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고통과 소통'에 관한 정보라작가의 신작을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