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합본]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 (전2권/완결)
원주희 지음 / 로코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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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를 모티브로 한 책인데 원작이 1인칭 제인 시점의 자서전 형식의 성장 소설이라면 이 책은 작가님의 후기처럼 주인공들이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구하게 된 정연과 인우 두 사람의 이야기다. 소재는 무겁지만 주인공들 실랑이가 재미있어 어둡기만 한 분위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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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합본]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 (전2권/완결)
원주희 지음 / 로코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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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천애 고아지만 불행을 탓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반듯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정연의 기특한 모습과 복수심 스스로를 망가뜨려가던 인우가 정연의 따뜻한 손을 잡고 고통뿐인 과거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인생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 인우 집안의 비극과 주인공들에게 벌어진 여러 사건들은 끔찍했지만 얌전한 얼굴과는 달리 당돌한 반응을 보이는 정연의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짓궂게 구는 인우 덕에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실랑이가 재미있어 무겁기만 한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복수에만 집착하여 사랑을 외면하는 인우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다.


제인 에어를 모티브로 한 책인데 원작이 1인칭 제인 시점의 자서전 형식의 성장 소설이라면 이 책은 작가님의 후기처럼 주인공들이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구하게 된 정연과 인우 두 사람의 이야기다. 자신의 처지로 욕심내서는 안될 인우에 대한 연정으로 힘들어하는 정연과 복수에 집착하여 정연을 향한 연심을 외면하려는 남주 인우의 복잡한 내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누군가의 말처럼 결국 서로 돕고 상승할 천생연분의 인연이었던 정연과 인우. 두 사람의 이름에 빗댄 섬세한 묘사가 예뻤다.


설렘. 눈부심. 따뜻함.

전엔 느껴 보지 못한, 생경하고 반가운 감정.


나의 조용한 삶을 두드리는 단비.

고요한 연못에 비가 내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군식구 취급하는 외가댁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엄 판서 댁 여식의 말동무로 지내게 된 정연. 마음씨 고운 홍주와 벗이 되어 몇 년을 살다 친구가 죽자 오갈 데 없어진 정연은 허 진사 댁 어린 채희의 글 선생이 되어 그 댁에 머물게 된다. 죽은 친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홍연랑'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제 꿈이 되어 버렸다. 평생 글만 쓰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던 정연의 평온한 일상은 사납고 무례한 집주인 인우가 긴 원행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깨지게 된다.

 

" 그래, 반가의 여식이 돈벌이에 나선 연유가 있소?

슬픈 사연이 있나? "


무례하고 짓궂은 말로 괜한 시비를 걸어오는 인우가 왠지 마냥 밉지만은 않은 정연. 평판 나쁜 소문과는 달리 인우는 살인마도 미치광이도 아귀처럼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는 장사치도 아니었다. 차가운 사람이다 싶으면 뜨겁고 무뚝뚝하다 싶으면 다정하고 지나치게 어둡다 싶으면 아이처럼 짓궂어서 혼란스럽다. 그가 던진 말 한마디에 설레는 마음을 탓하며 착각해선 안된다 애써 다짐하지만 인우를 향한 마음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탐내는 허 진사 댁 안방마님 자리. 이름만 양반일 뿐, 천애고아인 정연에게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사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 이곳에 와서 깨달았어요.

글을 사랑하긴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은 아니라는 것을요.

저는 홍연랑이 아니라 송정연으로 행복해지고 싶어요."

 




인자한 부모님과 귀여운 누이동생, 믿고 의지하던 죽마고우까지 인우의 삶은 탄탄대로 완벽했었다. 하지만 성균관 입교를 앞둔 어느 날 벌어진 사건은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 어떤 이들은 인우를 가리켜 살인자라 하고 혹은 돈에 환장한 장사치라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날의 기억는 인우의 가슴에 핏빛 한으로 남았다. 평범한 삶을 꿈꿀 수도,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속죄하는 길은 복수밖에는 없었다. 복수를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인간다운 감정 따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린 채희의 글 선생으로 집에 머물게 된 정연이라는 여인은 그가 사내임을 깨닫게 한다.


" 한 여인이 자꾸만 보고 싶다. 얼굴을 보면 얘기가 하고 싶다.

토라진 표정이 보고 싶어서 짓궂게 놀리고 또 놀린다. 이게 무엇이냐? "


정연은 눈만 마주쳐도 도망치는 여느 반가의 여인과는 달리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 자그마한 여인은 자꾸만 사람의 온기를 갈구하게 하고 삶에 기대를 품게 만들어 사내로 살기를 포기했던 인우의 가슴에 뜨거운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한번 치솟기 시작한 마음은 이제 돌려세울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복수심이 있던 자리에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왔다. 한 번쯤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복수를 위해서는 감정을 버리고 강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 나는 그 정이라는 게 무섭다.

내가 약해질까 봐.

야 하는 일 앞에서 주저할까 봐 무섭다. "



죄책감과 증오에 사로잡혀 복수심을 놓지 못하는 인우와 비열하고 추악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인우의 주변을 맴도는 악역들 때문에 주인공들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죄를 지은 가해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쉽게 잊는데 고통은 왜 당한 자들의 몫이냐는 인우의 피맺힌 절규가 안쓰러웠다.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해도 오랫동안 인우의 가슴을 짓눌러온 원망과 증오의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으니 살면서 때론 힘들 때도 있겠지만 기꺼이 비밀의 무게를 나눠 지려는 정연이 그의 곁에 있어 줄 테니 괜찮을 것이다. 


이제 당신이 가진 비밀은 내 것이기도 해요. 가슴 깊숙한 바닥에 무겁고도 아픈 비밀이 생겼지만 괜찮아요.

당신에게 온 것은 그것이 기쁘든 슬프든 내겐 똑같이 각별하고 소중하니까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지나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되었어요.


돌이켜 보면 많은 것이 그랬다. 인생과 운명, 자신을 증오하며 원망할 때 그녀가 다가와 화해하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따뜻하고 좋은 세상으로 이끌어 준 사람. 한 발만 내디뎌도 천애벼랑인 삶에서 단단히 붙잡아 준 사람.

독을 마시는 대신 신선한 숨을 마시게 해 준 사람.

" 네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 "


" 저는 당신을 사랑한 것밖에는 없어요. 당신을 구한 건 당신 자신이에요. "

그대가 있어서 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대가 있어 세상은 아름답고 우린 이토록 행복하다.

- 『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 』본문 중에서.


원작 '제인 에어'는 19세기 보수적인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제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성장 과정, 시련 극복과 사랑의 성취 과정을 담은 고전 문학이다. 고전을 로설 장르로 가져오면서 교훈적 내용은 유지되고 원작 전반에 흐르는 기독교적 색채는 배제되었다. 주인공들의 큰 나이 차이와 유부남이라는 로체스터의 비밀등 일부 설정은 로설 독자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로 바뀌었다. 원작을 연상케하는 부분도 다수 있지만 남주의 역할이 부각되고 비밀이 바뀐 만큼 그와 연관된 사건과 갈등 전개도 달라졌다.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다른지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원작을 읽지 않았다 해도 책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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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총3권/완결)
카르페XD 지음 / B&M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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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의 병약하지만 사랑스러운 도련님 연과 먼치킨 마법사가 되어 돌아온 능글맞은 주치의 모란의 치료를 빙자한 티격태격 달달한 연애기. 무림 명문가문인 남궁세가를 배경으로 한 무협 판타지물인데 무공보다 마법이 더 자주 등장해서 동서양이 섞은 듯한 독특한 분위기의 책이다. 책 소개 글에 영혼 이동과 회귀물 키워드가 있어서 주인공들의 영혼이 바뀌어 과거로 회귀되는 스토리가 중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란이 차원이동했던 이계나 주인공들의 회귀에 대해서는 짧은 회상만 나올 뿐 현재에 집중된 전개였다.

 

남궁세가의 어두운 집안사와 악연일 수도 있는 주인공들의 과거, 연의 건강 상태로 인해 자칫 무거운 분위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능글맞고 뻔뻔한 모란 덕분에 유쾌 발랄한 분위기다. 고구마 백만 개 먹은 듯 답답한 전개로 흐르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지만 위험한 일이 발생하거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연 한정 태평양 같은 포용력과 오지랖을 장착한 과보호 사랑꾼공 모란 때문에 갈등이 너무 쉽게 해소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연을 위해서라면 별이라도 따다 줄 것 같은 헌신적인 모란의 활약을 지켜보며 흐뭇했다.


" 약하고 귀엽고 어여쁜 것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
귀하고 소중한 건 상하지 않도록 아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몸종인 모란을 괴롭히던 남궁세가의 병약하고 성질 나쁜 도련님 남궁연. 스무 살 무렵 어찌된 영문인지 모란의 몸에 혼이 이동된 걸로 모자라 10년 전으로 회귀되고 만다. 모란의 몸에 빙의된 10년 동안 친자식처럼 여겨주는 스승님께 의술을 배우며 보람찬 삶을 살았지만 또다시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오면서 병약하고 평판나쁜 남궁세가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만다. 모란의 몸으로 살아온 인생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바뀐 삶이 씁쓸했다. 전보다 건강은 더 악화되었기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능글맞은 변태 사기꾼처럼 이상한 성격이 되어 돌아온 모란이 주치의를 자처한다.


" 나에게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이 보여.
연아. 네 근원에는 문제가 있어.
아무래도 네 근원이 좀 찢겨진 것 같다. "


한편, 10년 전 자신의 몸에서 튕겨나가 시간의 흐름이 다른 이계로 떨어진 모란의 혼. 어렵사리 그 세계의 몸을 얻었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인 '안제테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250여 년 간 온갖 위험을 겪어야만 했다. 많은 것을 잃고 얻은 후 기어코 그 세계를 평정한 덕에 영웅 대접받으며 나름 살만했지만 그가 있어야 할 세계는 아니었기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세계에서 재회한 연이 마음에 들었다. 잃어버렸던 몸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원래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연의 혼이 손상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연을 도울 이유는 충분했지만 뭘 해도 귀엽고 예뻐 보여 자꾸만 오지랖을 부리게 된다.


" 네가 그런 식으로 바라보면
뭐든지 들어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 


사람의 근원을 꿰뚫어보고 공간을 뒤틀고 꽃을 피워내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어내는 사술에 가까운 '마법' 이란 것을 눈앞에서 펼쳐 보이니, 모란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문제는 치료 방법이었다. 어째서 ?성적인 교합을 해야만 제대로 치료가 된다는 것인지 기가 막혔지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연은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모란의 치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은밀한 관계를 맺는 치료가 계속되면서 연의 심기는 복잡해졌다. 모란이 싫어하는 꽃을 피워내는 것이 짜증 나긴 했지만 계속 함께 지내고 싶고 낯 뜨거운 치료도 모란이라면 괜찮다 여겨지자 그를 은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 내가...... 내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어, 모란. "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지만, 두 사람이 넘어야 할 고비는 이제부터였다. 모든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자 연이 그토록 꽃을 싫어하게 된 사라진 '그날'의 기억. 차원을 넘어온 또 다른 존재와 연을 위해 새로운 일을 벌이는 모란. 그리고, 연의 치료를 위해 그동안 모란이 숨겨온 일들이 드러나면서 연이어 사건이 벌어지고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뒤늦게 벌어진 일을 확인한 모란의 분노와 오로지 소중한 존재인 연에 한해서만 선이 통용되는 모란의 극단적인 소유욕이 시작되는데... 


' 모란에게는 선이 없다. '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모란답게 연 대신 복수는 확실하게 해주지만 피로 얼룩진 살육보다는 고약한 심술을 택한 모란 덕에 복수조차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세상 누구보다 강하다 해도 늘 퍼주기만 하는 모란의 일방적인 희생이 연은 달갑지 않을 테지만 그동안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힘들었을 연의 삶을 생각하면 책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에 한 명쯤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상대가 반려인 모란이라면 더더욱! 제목은 '연리화'처럼 얽힌 주인공들의 운명과 사랑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연은 모란이 건넨 반려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반려.

근원과 근원이 엮여 인연(因緣)이 되고, 인연이 각각 상대의 운명이 되어 버려, 결코 끊을 수가 없는 것. 이번 생애에서도, 그 다음 생애에서도 만나게 되는 것. 실로 마음에 들었다.


" 연리지(連理枝)가 아니야."

" 나무가 아니라 꽃과 꽃이 얽히었으니, 연리화(連理花)라 해야 맞는 말이지."


비록 지는 것이 꽃의 운명이라지만, 피어나는 것 또한 꽃의 운명이라. 꽃은 어찌 지든 언제나 다시 피어나는 것이다.   -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3권 본문중에서

주인공들의 로맨스 외에도 어머니가 각기 다른 이복형제지만 친형제보다 더 서로를 아끼고 위하던 연 형제들의 우애가 인상적이었던 책. 처자식을 출세와 명예의 도구로 여기며 차별 대우하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부친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연의 형제들. 인간 같지도 않은 놈에게서 어떻게 그런 착한 아이들이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연의 이복형 연오가 너무 착하게만 그려져서 초반에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이중인격으로 의심했었는데 그저 아픈 동생을 과보호하는 착한 형이었을 뿐이었다. 연오야, 오해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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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캐스팅 2 (완결) [BL] 캐스팅 2
달야 / 고렘팩토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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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만 하다 좌천 위기에 처한 방송국 PD 서준과 오랜 세월 인내하며 서준 맞춤형 호구로 거듭난 톱스타 짝사랑공 도윤의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재회물인데, 권당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었다. 빈틈 많고 허술해 보여도 생각이 많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철벽수 서준. 교묘한 밀당 스킬로 서준이 스스로 철벽을 허물고 다가오도록 묵묵하게 기다려 준 집요한 호구 순정도윤. 제 감정의 정체도 모른 채 마음만 앞서 오해가 쌓여 어긋났던 두 사람의 관계는 도윤의 오랜 순정으로 8년 만에 결실을 이룬다. 


내가 좀 더 인내한다면, 과연 네가 어디까지 와 줄까.

좀 더 기다린다면, 너의 하루가 온전히 나로 가득 차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캐스팅 』1권 본문 중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이란 물방울과 티끌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천천히 젖어 드는 과정이었다. 서준의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순간들에도 도윤이 스며들어 있었다. 가랑비처럼 천천히 젖어 든 것이 이제는 공기처럼 서준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서준은 자신을 안온하게 감싸 안는 그의 다정함이, 언제나 자신을 쫓고 있는 눈동자가 좋았다.

어떤 왜곡도, 오해도 없이 이제야 똑바로 마주한 진심이 말한다.  

" ...... 그래. 좋아해. "   -『캐스팅 』2권 본문 중에서


첫 메인 연출작인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바닥을 치는 걸로도 모자라 방송사고로 막을 내리게 되자 좌천될 위기에 처한 서준. 망작 프로그램인 것을 알면서도 맡아서 개고생한 이유는 끝나면 꿈이었던 드라마를 맡게 해준다는 약속 때문이었는데 외주 제작팀으로 가라니 억울했다. 김도윤 급 톱배우를 캐스팅하면 원하던 드라마를 맡게 해준다니 8년간을 피해 다닌 불편한 사이지만, 서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외주 제작팀 선배의 수발이나 들며 고난주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했다.   


" 도윤아, 한 번이면 돼? "

 

캐스팅을 수락하는 조건으 하필이면 껄끄러운 자신과 왜 자고 싶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도윤 정도의 톱배우라단막극이 아니라 연휴 특집극까지 노려 볼 만 했으니 하룻밤으로 도윤을 잡을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대체 남자랑 하는 건 어떤 느낌인지 은근 호기심도 들었기에 쿨하게 응했는데, 단 하룻밤의 일탈로 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작 돌을 던진 당사자는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이 평온한데, 왜 혼자만 몽정이나 꾸면서 심각해야 하는 건지 억울했다. 


' 그럼 그놈이랑 다시 자 봐.

뭐가 문제야? '

 


8년 만에 만난 도윤은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된 듯이 굴었고, 덕분에 그의 페이스에 자꾸 휘말리는 서준. 고백이라도 하듯 미심장한 말을 툭 던져 놓더니, 가만있기만 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고 아닌가 싶으면 어느 새 다가와 사기꾼처럼 달콤한 말로 꾀어낸다. 불편해서 늘 피해 다녔던 도윤과 함께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여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서준의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순간들에도 그가 스며들었다. 그러면서도 서준이 그어놓은 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다음'은 네 선택에 달렸다는 듯이.

 


" 관계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지.

무턱대고 내지르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



개그 코드가 은근 잘 맞아 진부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밝고 가볍게 풀어낸 전개는 마음에 들었지만, 짧은 분량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것은 아쉽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동갑내기 월드스타와의 밀당 로맨스와 서준을 짝사랑하는 여우 같은 연하 아이돌과의 삼각관계, 오해로 점철된 주인공들의 엇나간 과거사와 죽은 형과 얽힌 도윤의 트라우마, 형제들의 비극을 담은 피폐한 드라마의 제작 과정 등을 번갈아 보여주다 보니 흐름이 자꾸 끊기는 느낌이었다. 

 

 

복잡한 전개에 서브공의 비중이 커서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삼각관계는 배제하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 연하공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앙큼한 속내를 숨기고 애교 많은 동생처럼 굴면서 서준의 경계를 허물었던 대형견공의 탈을 쓴 여우 제영은 메인공과 맞먹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라 서브공으로 소모되기엔 아까웠다. 긴 세월 서준의 곁에 서기 위해 준비해 온 도윤에 비하면 약했지만 나름 노력했던 제영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 형을 키운 건 나죠. 내가 좋은 것만 먹이면서

곱게 아껴 줬는데 웬 잡놈이 물어가 버렸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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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푸른 인어 1 - BL the Classics 183 [BL] 푸른 인어 1
네르시온 / 더클북컴퍼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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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공중도시와 저주받은 지상의 땅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어와 함선 등이 등장하는 SF 판타지물. 본편 5권 + 주인공들 2세와 시카다의 로맨스를 담은 외전 2권, 총 7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인데, 동화 속의 사랑스러운 인어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설정이 신선했던 책이다. 인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만남, 공중도시의 추악한 진실이 모여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을 끌어내는 전개라 인해 흥미로웠지만 조연 비중도 크고 뒤로 갈수록 느슨해진 느낌이라 취향 타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비스카가 너무 안하무인이라 해적 두목보다 더 악당 같아 보이기도 했다. 군인보다는 해적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비스카.


" 그놈이 제일 위험하단 말이다! "


비스카가 원래 좀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지만 더 냉혈한이 된 원인은 디안 때문이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던 비스카에게 디안은 유일한 약점이었고, 소중한 디안의 안위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으니. 주변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보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너와 나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기적인 본성이라 생각하니 한편 이해되기도 했다. 비스카를 위해 비겁한 겁쟁이가 되기를 자처한 디안도 그런 맥락에서 였으니. 그나마 디안이나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조금씩 세상이 변화 되는 것을 보니 다행. 그러니 비스카가 디안을 만난 것은 운명인 셈!


" 어째서 너와 만나게 된 거지?

이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인가. "



하늘과 땅이 분리된 곳에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더럽고 노후화된 지상 땅과는 달리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여신의 축복을 받은 공중도시. 그곳의 기득권층과 귀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대리 여신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최고 권력을 손에 쥔 대리 여신은 인어를 용납하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며 알 수 없는 자기장을 만들어내 배의 항해를 방해하고 때때로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인간들을 납치하는 인어는 토벌 대상. 인간의 형태로 태어난 인어 혼혈아의 운명도 비슷했다. 정체가 들키는 즉시 죽임을 당하거나 변태들의 노예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


그러니, 인어떼가 나타날때면 물빛 머리카락과 눈빛으로 변하는 이상반응으로 인어 혼혈의 증표를 드러내는 디안의 삶이 평탄할 리 없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평생을 불안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아온 디안.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면서 낡은 배에서 일하던 디안은 의문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러 온 아젤란의 함장 비스카를 만나게 된다. 여신의 강력한 비호 아래 승승장구중인 최연소 함장 비스카는 군인답지 않게 늘 제멋대로 구는 즉흥적인 사내였고, 무료하고 심심했던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준 디안에게 호감을 보인다.


"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지금 저에게 작업 거시는 겁니까? "


비스카의 노골적인 관심을 단순하게 괴롭히는 걸 즐기는 변태거나 성희롱이라 여기며 무시하던 디안은 갑작스런 인어의 출몰로 몸에 이상이 생긴 날 하필이면 곁에 있던 비스카를 유혹하면서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룻밤의 실수로 치부하며 없었던 일로 하려는 디안과는 달리 대놓고 수작을 부리는 비스카. 제멋대로에 느긋하던 비스카의 태도는 함선에 잠입한 해적 두목 시카다에게 디안이 납치되면서 바뀐다.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혀 집요하게 해적선을 추적하며 이상할 만큼 디안에게 집착하는 비스카.


" 아무래도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찾은 걸지도 모르겠군. "


해적 두목 시카다에게 끌려간 디안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과 같은 인어 혼혈이라는 것을 느끼며 군인인 비스카보다는 같은 아픔을 지닌 동류의 곁이 더 안전할 것이라 여기지만 같은 인어 혼혈이면서 디안을 노예로 팔아넘기겠다는 시카다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뒤쫓아온 비스카와 재회하게 되는 디안. 비스카는 재수 없는 악연일 뿐이고 성격 나쁜 변태에 언제나 제멋대로 구는 사내인데도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처럼 싫은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그의 품 안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너에게 끌리는 것은 분명 어떤 인연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아남는 것에 익숙했던 디안은 갈수록 비스카와 함께 있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스카와 떨어져 어디를 가든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고, 위험한 상황에 제멋대로 뛰어들 때마다 화가 치밀만큼 걱정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스카와의 첫 잠자리 후 평소와는 달리 머리카락과 눈이 물빛으로 변한 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자 혼란스러워하는 디안. 그리고, 디안의 몸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 너 지금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거냐. "

 



독특한 분위기로 만나는 남자마다 홀리게 만드는 디안을 사이에둔 뻔뻔하고 능청스러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냉혈한 성격의 비스카와 공중 도시를 위협하는 강인한 해적 두목 시카다의 미묘한 삼각관계. 여신의 땅 공중 도시와 맞서는 아래 땅의 반란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어의 숨겨진 비밀, 대리 여신의 정체와 지닌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공중 도시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난다.


축복받은 공중도시, 부조리한 세계.

아름다운 외관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추악한 곳. 

피의 기억. 그리고 문명. 


생각보다 존재감은 덜했지만 악역아닌 악역이었던 대리 여신. 그녀들의 기구한 삶이 안스러워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스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던 시카다. 디안과는 같은 아픔을 겪은 동료에 대한 연민일 뿐이라고 서로 선을 그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스카가 아닌 시카다와 이어졌어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깊은 상처를 가진 시카다에게도 운명의 짝이 생긴 것은 반가웠지만 공이 아닌 수라서 좀 당혹스러웠다. 성격과 외모 하는 행동까지 비스카를 그대로 빼다박은 다이가가 '수'인 것도 이상할테니 차라리 시리즈로 나왔더라면 좋았을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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