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공중도시와 저주받은 지상의 땅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어와 함선 등이 등장하는 SF 판타지물. 본편 5권 + 주인공들 2세와 시카다의 로맨스를 담은 외전 2권, 총 7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인데, 동화 속의 사랑스러운 인어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설정이 신선했던 책이다. 인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만남, 공중도시의 추악한 진실이 모여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을 끌어내는 전개라 인해 흥미로웠지만 조연 비중도 크고 뒤로 갈수록 느슨해진 느낌이라 취향 타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비스카가 너무 안하무인이라 해적 두목보다 더 악당 같아 보이기도 했다. 군인보다는 해적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비스카.
" 그놈이 제일 위험하단 말이다! "
비스카가 원래 좀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지만 더 냉혈한이 된 원인은 디안 때문이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던 비스카에게 디안은 유일한 약점이었고, 소중한 디안의 안위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으니. 주변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보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너와 나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기적인 본성이라 생각하니 한편 이해되기도 했다. 비스카를 위해 비겁한 겁쟁이가 되기를 자처한 디안도 그런 맥락에서 였으니. 그나마 디안이나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조금씩 세상이 변화 되는 것을 보니 다행. 그러니 비스카가 디안을 만난 것은 운명인 셈!
" 어째서 너와 만나게 된 거지?
이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인가. "
하늘과 땅이 분리된 곳에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더럽고 노후화된 지상 땅과는 달리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여신의 축복을 받은 공중도시. 그곳의 기득권층과 귀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대리 여신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최고 권력을 손에 쥔 대리 여신은 인어를 용납하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며 알 수 없는 자기장을 만들어내 배의 항해를 방해하고 때때로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인간들을 납치하는 인어는 토벌 대상. 인간의 형태로 태어난 인어 혼혈아의 운명도 비슷했다. 정체가 들키는 즉시 죽임을 당하거나 변태들의 노예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
그러니, 인어떼가 나타날때면 물빛 머리카락과 눈빛으로 변하는 이상반응으로 인어 혼혈의 증표를 드러내는 디안의 삶이 평탄할 리 없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평생을 불안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아온 디안.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면서 낡은 배에서 일하던 디안은 의문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러 온 아젤란의 함장 비스카를 만나게 된다. 여신의 강력한 비호 아래 승승장구중인 최연소 함장 비스카는 군인답지 않게 늘 제멋대로 구는 즉흥적인 사내였고, 무료하고 심심했던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준 디안에게 호감을 보인다.
"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지금 저에게 작업 거시는 겁니까? "
비스카의 노골적인 관심을 단순하게 괴롭히는 걸 즐기는 변태거나 성희롱이라 여기며 무시하던 디안은 갑작스런 인어의 출몰로 몸에 이상이 생긴 날 하필이면 곁에 있던 비스카를 유혹하면서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룻밤의 실수로 치부하며 없었던 일로 하려는 디안과는 달리 대놓고 수작을 부리는 비스카. 제멋대로에 느긋하던 비스카의 태도는 함선에 잠입한 해적 두목 시카다에게 디안이 납치되면서 바뀐다.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혀 집요하게 해적선을 추적하며 이상할 만큼 디안에게 집착하는 비스카.
" 아무래도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찾은 걸지도 모르겠군. "
해적 두목 시카다에게 끌려간 디안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과 같은 인어 혼혈이라는 것을 느끼며 군인인 비스카보다는 같은 아픔을 지닌 동류의 곁이 더 안전할 것이라 여기지만 같은 인어 혼혈이면서 디안을 노예로 팔아넘기겠다는 시카다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뒤쫓아온 비스카와 재회하게 되는 디안. 비스카는 재수 없는 악연일 뿐이고 성격 나쁜 변태에 언제나 제멋대로 구는 사내인데도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처럼 싫은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그의 품 안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너에게 끌리는 것은 분명 어떤 인연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아남는 것에 익숙했던 디안은 갈수록 비스카와 함께 있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스카와 떨어져 어디를 가든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고, 위험한 상황에 제멋대로 뛰어들 때마다 화가 치밀만큼 걱정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스카와의 첫 잠자리 후 평소와는 달리 머리카락과 눈이 물빛으로 변한 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자 혼란스러워하는 디안. 그리고, 디안의 몸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 너 지금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거냐. "
독특한 분위기로 만나는 남자마다 홀리게 만드는 디안을 사이에둔 뻔뻔하고 능청스러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냉혈한 성격의 비스카와 공중 도시를 위협하는 강인한 해적 두목 시카다의 미묘한 삼각관계. 여신의 땅 공중 도시와 맞서는 아래 땅의 반란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어의 숨겨진 비밀, 대리 여신의 정체와 지닌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공중 도시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난다.
축복받은 공중도시, 부조리한 세계.
아름다운 외관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추악한 곳.
피의 기억. 그리고 문명.
생각보다 존재감은 덜했지만 악역아닌 악역이었던 대리 여신. 그녀들의 기구한 삶이 안스러워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스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던 시카다. 디안과는 같은 아픔을 겪은 동료에 대한 연민일 뿐이라고 서로 선을 그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스카가 아닌 시카다와 이어졌어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깊은 상처를 가진 시카다에게도 운명의 짝이 생긴 것은 반가웠지만 공이 아닌 수라서 좀 당혹스러웠다. 성격과 외모 하는 행동까지 비스카를 그대로 빼다박은 다이가가 '수'인 것도 이상할테니 차라리 시리즈로 나왔더라면 좋았을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