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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총3권/완결)
카르페XD 지음 / B&M / 2017년 10월
평점 :
남궁세가의 병약하지만 사랑스러운 도련님 연과 먼치킨 마법사가 되어 돌아온 능글맞은 주치의 모란의 치료를 빙자한 티격태격 달달한 연애기. 무림 명문가문인 남궁세가를 배경으로 한 무협 판타지물인데 무공보다 마법이 더 자주 등장해서 동서양이 섞은 듯한 독특한 분위기의 책이다. 책 소개 글에 영혼 이동과 회귀물 키워드가 있어서 주인공들의 영혼이 바뀌어 과거로 회귀되는 스토리가 중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란이 차원이동했던 이계나 주인공들의 회귀에 대해서는 짧은 회상만 나올 뿐 현재에 집중된 전개였다.
남궁세가의 어두운 집안사와 악연일 수도 있는 주인공들의 과거, 연의 건강 상태로 인해 자칫 무거운 분위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능글맞고 뻔뻔한 모란 덕분에 유쾌 발랄한 분위기다. 고구마 백만 개 먹은 듯 답답한 전개로 흐르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지만 위험한 일이 발생하거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연 한정 태평양 같은 포용력과 오지랖을 장착한 과보호 사랑꾼공 모란 때문에 갈등이 너무 쉽게 해소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연을 위해서라면 별이라도 따다 줄 것 같은 헌신적인 모란의 활약을 지켜보며 흐뭇했다.
" 약하고 귀엽고 어여쁜 것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
귀하고 소중한 건 상하지 않도록 아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몸종인 모란을 괴롭히던 남궁세가의 병약하고 성질 나쁜 도련님 남궁연. 스무 살 무렵 어찌된 영문인지 모란의 몸에 혼이 이동된 걸로 모자라 10년 전으로 회귀되고 만다. 모란의 몸에 빙의된 10년 동안 친자식처럼 여겨주는 스승님께 의술을 배우며 보람찬 삶을 살았지만 또다시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오면서 병약하고 평판나쁜 남궁세가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만다. 모란의 몸으로 살아온 인생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바뀐 삶이 씁쓸했다. 전보다 건강은 더 악화되었기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능글맞은 변태 사기꾼처럼 이상한 성격이 되어 돌아온 모란이 주치의를 자처한다.
" 나에게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이 보여.
연아. 네 근원에는 문제가 있어.
아무래도 네 근원이 좀 찢겨진 것 같다. "
한편, 10년 전 자신의 몸에서 튕겨나가 시간의 흐름이 다른 이계로 떨어진 모란의 혼. 어렵사리 그 세계의 몸을 얻었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인 '안제테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250여 년 간 온갖 위험을 겪어야만 했다. 많은 것을 잃고 얻은 후 기어코 그 세계를 평정한 덕에 영웅 대접받으며 나름 살만했지만 그가 있어야 할 세계는 아니었기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세계에서 재회한 연이 마음에 들었다. 잃어버렸던 몸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원래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연의 혼이 손상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연을 도울 이유는 충분했지만 뭘 해도 귀엽고 예뻐 보여 자꾸만 오지랖을 부리게 된다.
" 네가 그런 식으로 바라보면
뭐든지 들어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
사람의 근원을 꿰뚫어보고 공간을 뒤틀고 꽃을 피워내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어내는 사술에 가까운 '마법' 이란 것을 눈앞에서 펼쳐 보이니, 모란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문제는 치료 방법이었다. 어째서 ?성적인 교합을 해야만 제대로 치료가 된다는 것인지 기가 막혔지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연은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모란의 치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은밀한 관계를 맺는 치료가 계속되면서 연의 심기는 복잡해졌다. 모란이 싫어하는 꽃을 피워내는 것이 짜증 나긴 했지만 계속 함께 지내고 싶고 낯 뜨거운 치료도 모란이라면 괜찮다 여겨지자 그를 은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 내가...... 내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어, 모란. "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지만, 두 사람이 넘어야 할 고비는 이제부터였다. 모든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자 연이 그토록 꽃을 싫어하게 된 사라진 '그날'의 기억. 차원을 넘어온 또 다른 존재와 연을 위해 새로운 일을 벌이는 모란. 그리고, 연의 치료를 위해 그동안 모란이 숨겨온 일들이 드러나면서 연이어 사건이 벌어지고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뒤늦게 벌어진 일을 확인한 모란의 분노와 오로지 소중한 존재인 연에 한해서만 선이 통용되는 모란의 극단적인 소유욕이 시작되는데...
' 모란에게는 선이 없다. '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모란답게 연 대신 복수는 확실하게 해주지만 피로 얼룩진 살육보다는 고약한 심술을 택한 모란 덕에 복수조차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세상 누구보다 강하다 해도 늘 퍼주기만 하는 모란의 일방적인 희생이 연은 달갑지 않을 테지만 그동안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힘들었을 연의 삶을 생각하면 책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에 한 명쯤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상대가 반려인 모란이라면 더더욱! 제목은 '연리화'처럼 얽힌 주인공들의 운명과 사랑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연은 모란이 건넨 반려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반려.
근원과 근원이 엮여 인연(因緣)이 되고, 인연이 각각 상대의 운명이 되어 버려, 결코 끊을 수가 없는 것. 이번 생애에서도, 그 다음 생애에서도 만나게 되는 것. 실로 마음에 들었다.
" 연리지(連理枝)가 아니야."
" 나무가 아니라 꽃과 꽃이 얽히었으니, 연리화(連理花)라 해야 맞는 말이지."
비록 지는 것이 꽃의 운명이라지만, 피어나는 것 또한 꽃의 운명이라. 꽃은 어찌 지든 언제나 다시 피어나는 것이다. -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3권 본문중에서
주인공들의 로맨스 외에도 어머니가 각기 다른 이복형제지만 친형제보다 더 서로를 아끼고 위하던 연 형제들의 우애가 인상적이었던 책. 처자식을 출세와 명예의 도구로 여기며 차별 대우하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부친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연의 형제들. 인간 같지도 않은 놈에게서 어떻게 그런 착한 아이들이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연의 이복형 연오가 너무 착하게만 그려져서 초반에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이중인격으로 의심했었는데 그저 아픈 동생을 과보호하는 착한 형이었을 뿐이었다. 연오야, 오해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