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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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디세이라는 영화로 여기저기서 오디세이라는 작품과 관련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직 영화는 못봤지만 책을 통해 오디세이를 진하게 느껴보았다. 호메로스라는 작가는 책을 읽기 전에는 어렴풋이 서양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일리아스>,<오디세이아>를 쓴 저자로만 알고 있었다. 왜 일리아스나 오세이아가 의미있는지,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고 오디세이아 역시 단순히 신들의 전쟁으로 인하여 집을 돌고 돌아 매우 험하게 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책을 읽고 보니 좀 잘못된 해석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호메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신들의 권위를 말한것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 이었다. 모든 상황들이 너무 불리하고 불공평한 조건들이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끊기와 투지를 보여준다.

<일리아스>를 통해서는 죽음을 필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지 질문했다면 <오디세이아>를 통해서는 온갖 시련과 영생의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진짜 삶과 정체성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굳건한 의지를 그려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불확실한 미래와 세상의 불공정함 아래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주저하는 현대인 즉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윤택하고 유리하지 않는다고해서 멈춰설 것인가, 그 거친 파도를 기꺼이 견뎌내며 자신의 바다를 건널 것인가.

나는 사실 <오디세이아>라는 고전 작품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지만 책을 번역하고 제작하는 역할에 따라 고전의 풍요로움이 전달되냐 아니냐를 크게 보았다.

그런 부분에서는 클라시카 편집부의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추천하기 전 다른 오디세이아 작품을 다 읽어보았냐한다면 답은 “Nope” 이지만 그래도 추천하는 이유는 오디세이아라는 작품을 더욱 친근하고 기대하게 만든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렵고 딱딱하다가 아니라 그렇다고 무조건 좋다라고 찬사를 보내는 가벼운 칭찬이 아닌 지금의 나와 고전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잘 연결해준다.

서두에서 독자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이타카가 있기는 한가? “ 나의 인생의 여정과 목적은 무엇인가? 그곳을 향해 가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이 질문만으로도 생각해본 것과 아닌것은 큰 차이가 있다.

오디세우스가 위대한 것은 괴물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란다. 십 년 동안 방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다. 그의 이타카는 낙원이 아니었고 작고, 척박하고 돌 많은 섬이었다. 그런 오디세우스를 시험하는 신들이 훨씬 화려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칼립소는 불멸을 주겠다고 했고, 키르케는 그를 왕처럼 환대했다.

파이아케스인들은 그를 붙잡거나 새로운 삶을 권한 것이 아니라 이타카로 돌아갈 수있는 방법을 주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보이면 어렵지 않겠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 그럴 때 올바른 선택인지 아닌지는 오롯이 선택하는 자신의 몫이다. 그것이 비록 화려하지 않고 초라할 지라도.

오디세우스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이타카대신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다른 것들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럴 때 정말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끝까지 지켰다는 것은 정말 인정받을 만하고 조명받을만 하다. 과연 나는 그런 선택에서 정말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는 작아진다.

이 책은 총 다섯파트로 나눠서 진행된다.

첫째, 고난을 수용하라

둘째, 유혹을 경계하라

셋째, 희생을 감수하라

넷째, 심연을 응시하라

다섯째, 이타카를 탈환하라

저자는 이 모든 과정에 집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당신의 인생에서 진하게 걸려들어 음미해보길 바란다. 이 책은 신들이 자주 언급되는데 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 모두 태어나고보니 주어진 것들이 많지 않은가. 그리고 살면서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들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이길 수 없는 폭풍 속에서도 자기 손으로 노를 잡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위대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는 강조되고 있다.

당신만의 이타카가 없다고 해도 괜찮다. 아직 찾지 못했을 뿐 분명이 있다. 그 섬은 조금씩 수평선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찾아보길 바란다.

원망은 잠시 차가운 심장을 데워주지만, 오래 붙들면 영혼의 닻을 태워버린다는 것.

19P

저자는 운명과 수용을 함께 결합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나 역시 그러하니깐 하지만 운명에 자유로울수는 없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하지만 수용과 결합한다면 운명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의 조합이며 바꿀 수 없는 이것들을 위해 힘쓰기 보다는 이 조건들 위애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힘을 쓰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성숙한 수용이다. 수용이란 수동적이고 약한 모습이 아니다.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있는 최대한을 찾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지켰다. 노래가 들리기 전에 결박당한 것이다. 노래가 시작된 후에는 이미 늦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나는 이 대목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가장 지혜로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유혹을 이기는 사람은 유혹 앞에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유혹이 오기 전에 이미 자기를 묶어둔 사람이다.

70P

책 안에는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이 많다. 그리고 저자는 오디세우스의 일화를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접목시키면 좋을지를 말해준다. 이 부분이 내가 클리시카 출판사의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를 추천하는 바이다.

원문의 아름다움과 고전의 미학을 느끼려면 다른 작품을 찾길 바란다. 하지만 고전 속에서 나와의 현실을 연결하며 지혜를 얻고 싶다면 이 작품이 아주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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