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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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품 수레바퀴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가 실려있는 작품이다. 책은 너무 영롱하고 예쁘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헤르만 헤세를 잘 모른다.수레바퀴아래에서를 학창시절에 읽으려 시도했다가 공감도 할수 없고 어렵기만 한 소설가로 각인된 후로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번 실패했던 좋지 않았던 기억을 새롭게 재정비 하고자 도전하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유명한 작품들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남들에게 유명한 작품으로만 각인되어 있는 것을 느껴보고 젖어들고 싶었다.

헤르만헤세는 1877년 남독일에서 태어나고 아버지 요하네스와 어머니 마리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신교 목사여서 그랬을까 1890년 헤세도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자연아의 태생으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탈주, 자살을 시도하는등 순탄치 않았다. 그 이후 세계 1차 대전, 아버지의 죽음,아내의 정신병, 자신의 신병등 가정의 위기를 정신분석 연구로 극복하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현실과 타협하기 보다는 꿋꿋이 자기 실현의 길을 걸었다.

헤세가 말하는 청춘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라고 말한다. 이미 오래전에 작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에도 헤세의 작품이 공감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살펴보면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더 ‘정상적으로’ 살라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채 그럴듯한 삶을 살아낸다고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헤세 역시 모범적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으로 한계를 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고 그걸 소설속에서 담아냈기 때문에 다시 읽어도 공감을 얻는다. 작품들 중에서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 <싯다르타>가 청춘의 성장과 고통을 대표하고 그 작품들을 <스스로 깨어라>라는 제목으로 묶었고
여기서 깨어라는 잠을 깨듯 자각의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고 성장을 추구하라는 의미도 있다.

이 세 작품을 연달아 봐야하는 이유는 <수레바퀴 아래서>는 깨어나지 못한 채 짓눌려버린 삶의 위험, 안타까움
<데미안>은 껍질이 깨지는 통증과 그 속에서 느끼는 자유 <싯다르타>는 자유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무게, 책임, 관계, 후회를 끌어안는 법을 가르쳐주기에 꼭 글이 실린 순서대로 보길 추천한다.

스스로 깨어라는 명령문이 아니다. 요청이자 저자가 보내는 응원이고 부탁이다. 삶이 고되고 피곤하고 어려운 일 투성이다. 하지만 이것도 보는 관점에 따라 고되고 피곤한 것도 사실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바빠 힘들고 피곤한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 길을 가야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을 때가 더 막막하고 힘들지 않을까. 그게 설령 누구나 다 선망하고 열망하는 엘리트의 삶이라도 내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수 없다면말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수레바퀴 아래에서 이야기 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삶이 멈추지 못하는 수레바퀴 같은 부분이 있다면 멈추는 것을 상상하며 미쳐 깨닫지 못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데미안>은 깨어난 후에 느낄 수 있는 균열을 느껴볼 수 있다. 데미안에서는 독자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도 데미안은 진도가 가장 천천히 나갔다.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불편함을 이기고 생각해보고 질문해보고 고민해본다면 분명 그 안에서 느껴지는 쾌감과 개운함이 느껴질 것이다. 나를 더 잘 알게 된 기쁨, 한 차원 더 깊은 질문을 해도 되는 수준에 가까이 가는 뿌듯함이랄까.

<싯다르타>에서는 깨달음의 깊이를 더더욱 잔잔하지만 치열하게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다. 나는 싯다르타를 읽으며 다른작품 <구운몽>과 비슷함을 느꼈다. 구운몽은 약간 허망함이 컸던 작품이라면 <싯타르타>는 그 모든 과정 끝에 이해를 넘어선 수용에 도달한다. 그리고 감히 이렇게 바라도 될지 모르지만 싯다르타에 나오는 강물처럼 모든 소리를 한번에 품을만큼 안정적이고 여유있는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유퀴즈온더블럭>에 나온 메릴 스트립 배우를 보았다. 40대가 접어들면서 자신에게 제안들어온 역할들이 마녀만 있음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배우로 당당하게 연기를 힐 수 있었던 것은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수용’의 단계를 삶에서 실천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툴툴 털건 털어버리고 다시 담고,품고 그리고 털고..
나이든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는데 너무 아름다운 주름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모습이 참 닮고 싶었다. 눈가에 주름이 너무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주름이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늙고 싶어졌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노트에 적어보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열심히’ 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부분은 어디인가.
나는 어떤 ‘착함’으로 내 욕망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눈을 빌려 나를 판단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깨어남‘은 무엇인가.

프롤로그중에서
다시읽어보니 수레바퀴 아래서를 끝낼수 없었던 이유는 한스가 느끼는 무력함이 내게도 너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대는 한스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느꼈던 무력함, 분노보다는 연민,안타까움이 느껴졌고 내 아이들이 느끼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저번에 읽었던 <마음이 강한 부모가 아이를 지킨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특히 남이 하는게 정답이고 대세인게 강한 대한민국에서는 방향이나 속도는 점검하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도 필요하다. 내가 그걸 삶에서 보여주면 아이들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매번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약한 모습, 못난 모습, 어리석은, 어설픈, 유치한 등등등 그래서 민망하고 얼굴이 달아오른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하며 저자가 주는 메세지, “스스로 깨어라“에 동참해 본다.
<본 서평은 미자모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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