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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 대한민국 경제정의를 말하다
유진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월
평점 :
가난한집 맏아들. 내용이 궁금했다. 난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한 권을 다 읽고 난 지금, 너무나 저자인 유진수 교수님께 감사하다. 맏아들인 내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나아가 국가에 까지 내게 따르는 책임이 무엇인지? 어떠한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가난한집 맏아들과 대기업을 비교함으로, 궁극적으로 대기업의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참신하다. 성공한 맏아들이 가족에 대해 갖는 의무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연적 의무, 자발적 의무, 그리고 도적적 의무. 그렇다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었던, 암묵적 희생을 치른 동생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국가의 혜택을 받고 성장한 대기업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 저자는 대기업들이 어떠한 혜택들을 받아 왔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 주었다. 아래 참조.
박정희 정부의 다양한 특혜적 지원
첫째, 과열경쟁에 따른 도산을 막기 휘해 투자 인허가 제도를 선택했다. 따라서 규제의 보호를 받은 기업들은 독점적인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금융기관의 자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었다. 당시 국내 금리가 2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차관의 이자는 5% 수준이었다.
셋째, 정부는 특정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이나 기술을 도입하는 데도 관여했다.
넷째,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채택한 정부는 수출기업에 대해 다양한 세제 감면, 원자재 및 자본설비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 등을 제공했다.
다섯째, 정부는 노동조합을 노골적으로 탄압해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근로조건의 향상을 사실상 억제했다.
여섯째, 시장개방을 늦춤으로써 외국기업과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했다.
물론 도덕적 의무는 어디까지나 도덕적 의무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 그리하여 최근 정부는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다시 보이고 있다. 이는 아마도 성공한 대기업의 이윤은 사회로 환원되어야 마땅하다는 국민적인 정서가 깔려 있음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저 멀리, 유럽을 지나 중동, 미국에 이르기까지 탐욕스런 모습을 보여왔던 자본주의에 대하여 저항하고자 하는 사회적 열망의 표출이라 생각한다. ‘반자본주의’가 아닌, 지금의 자본주의 형태는 사회 양극화를 더욱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됨이다.
분명 경제 파이가 먼저 커져야 함은 옳은 것 같다. 하지만, 분배를 하는 과정에서 과연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군림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 환원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사실 자발적인 부의 분배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 기업들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갈 갈이 멀어 보인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보다 적극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고 있다. 최근 삼성가의 쩐의 정쟁이 볼만하다. 또한 과거의 ‘초과이익 공유제’에 적극 반대하던 모습이 선하다. 물론 나는 경제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결코 사회 환원은 없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맏아들인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다행스럽게도 맏아들에게만 보험을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직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독려한다. 작은 도움을 주는 손길의 시작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임과 동시에 내게 주어진 의무임을 생각해 본다. 왜? 사람은 저마다 재능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재능마저도 자신에게 부여된 하나의 특권이기에 이 또한 사회에 마땅히 환원되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