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오랜만에 집에 가는지, 왜 떠나있었는지 상관없이, 단지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뻐서 날뛰는 개. 작가는 변화된 세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중요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왜 똑똑한 기계가 태양에 대한 미신을 만들어 내는지만이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어째서 단편적 경험에 의존하여 비논리적 믿음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가. 그런데 우스운건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야적장에 버려진 클라라 때문에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AI가 개와 같은 정도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클라라가 로봇이기 때문에 버려도 괜찮은 존재인지 아닌지 고민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될 뿐이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클라라가 자신이 만들어낸 태양신을 믿는 이유는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고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치 인간처럼. 아니, 마치 개처럼. 그래서 개 같다.
조문영 -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
불안한 삶들이 표류하는 세계다. 불안이 다른 불안을 마주하지 못할 때, 구조적 배제로든 자동화 기술로는 멀리하고 밀어낼 때, ‘안전’은 ‘위험‘과 동의어가 된다. 자기 구원에 매몰된 인간들의 헛된 노력을 탓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판 서문에서 실바가 던진 질문을 모두의 화두로 곱씹는 편이 낫겠다. "전 지구적 불안과 정치적 격변으로 흔들리는 시대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집단적 동원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 단절이나 방어적인 고립에 맞설 제도들을 건설할 수 있을까?" - P81
김홍중 - 무해의 시대전 국민의 휴대폰을 감시한 한국 정부가 가장 안전한 사회를 보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벡에 의하면, 위험사회의 시민들은 막스 베버 Max Weber가 예견한자본주의적 철창iron cage 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mo가 비판한 ‘도구적 합리성‘을 폄하하지 않는다. 미셸 푸코Michal Fousaul가 분석한 파놉티콘‘과 규율 권력에 공포심을 갖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관리되는 세계의 완벽한 합리성"을 기대한다. 유럽의 대표적 비판 지성들이 디스토피아로 형상화해 온 (안전을 지켜주는 통제된 감시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민중이 꿈꾸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벡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위험사회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지성의 목록에 슬라보예 지젝Slavoi Zizek의 문화비평이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정치철학도 포함시킬 수 있다.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