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기담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
오정희 지음, 이보름 그림 / 책읽는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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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늦은 여름밤, 유난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종종 있다. 옆에 자던 할머니를 깨우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듣다가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야기의 끝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고 허황되지만 신비로운 도사나 신선, 변신한 구렁이나 여우,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나 귀신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책 이름은 저자의 이름을 붙여 '오정희의 기담'이라 지었다.
교훈을 준다거나 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그렇다더라 하듯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흘리듯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잔혹동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시기심에 목숨을 빼앗는 이야기를 읽을때면 그렇다. 우리가 세계명작동화라고 읽는 이야기도 초반엔 투박하고 잔혹한 옛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듯 이 책의 이야기들은 가공되지 않은, 잔혹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나 어두운 본능을 살짝살짝 내보이며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한다.

이야기는 독자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떠한 소감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읽는 사람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야기 들이다. 누군가가 안타까웠지만 그를 어리석다 말하기는 좀 그렇다. 처음엔 불쌍했지만 나중에 잘 되기도 한다. 반면 처음엔 좋았는데 갈수록 나빠지기도 한다. 그에 따라 각자 느끼는 교훈은 다를 것 같다. 예를 들면 앵두 이야기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내가 느끼기에 앵두라기 보다는 그 아비였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고씨네에서는 연락두절 된 채 돌아오지 않는 서방을 기다리며 온갖 고생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잠시 재혼했었다는 이유로 금의환향한 서방에게 버려진 사연이 가슴아팠다. 그시대 배경이라면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과거시험 보기 전 홀로 집 안팍을 살핀 여자의 노고도 헤아려야 하는게 인간적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 같이 살진 못해도 적어도 죽게 내버려둬선 안되었던게 아닌가 안타깝기도 했다.

무심한듯 곁들여진 수채화 일러스트도 마음에 쏙 든다. 거품이 쏙 빠진 담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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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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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판에 박힌 통설을 뒤집는다. 작가는 흔히 고독한 직업이라고 한다. 헤밍웨이는 좋은 글을 쓰려면 잠적하라는 말을 했다는데 이 책에는 워크숍이나 작가군들과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말한다.

내 생각에도 막연히 작가라 하면 며칠씩 씻지도 않고 집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으며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알콜중독자 작가라도 교류하던 작가군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교류하지 않고 혼자 창작을 하는것은 나쁜 워크숍과 교류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말한다.

 

이 책엔 내가 지금껏 읽었던 글쓰기 책에 나오지 않는, 틈새를 파고드는 작가의 삶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실 작법책을 읽으며 우리가 감정적인 부분이나 싫어도 해야하는 부분에 대해 딱히 물어볼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그런 사소하기도 하면서 어쩌면 중요한 부분을 잘 짚어낸 것 같다.

 

이 책의 앞부분을 보면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책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작가의 자질에 대해 가장 많은 공간을 할애해서 설명했다.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즐거움을 얻을 자리가 소설가의 자리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작가에게 일어나는 최악의 일이라고 한다. 재능이나 배움을 넘어서서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만족감을 준다면 소설가로서 자질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장편소설가'의 장편은 소설의 길이를 말하는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단편소설가와는 구분되는 다른 직업을 이야기 하는듯 하다.

아담한 사이즈에 들고다니기 편해서 좋았다. 같이 글을 쓰는 작가군이나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들에 대한 이야기 부분은 너무 재미있었다. 출간을 원하는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학생들 간의 합평이나 작품을 교수에게 보이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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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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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는 동양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귀중하고 소중한 자료이다. 우리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도리에 대해 말하려면 공자의 논어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고대라 할 수 있는 기원전에 이런 말을 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제자들을 가르쳐 뜻을 널리 퍼뜨린 인물로서 공자는 위대하다 할 수 있다. 법이나 도덕이 제자리를 찾지 않아 어지러운 시대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사이의 도리에 대해 말하고 평화를 추구하던 그의 모습은 진정 의인이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논어를 읽기 전에 저자인 공자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그는 기원전 551년 산동성 곡부에서 태어나 이름은 라 한다. 법치보다 인치를 중요시 했고 당대 통치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실천해 나간 사람으로 유명하다.

공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오해할 만한 이야기(공자와 젓갈 이야기 등)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공자가 궁금하다면 논어를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논어는 공자가 혼자 집필한 책이 아니고 공자의 제자들이 그의 말씀을 적어 모아놓은 책이다. 그 당시 상황과 공자의 가르침이 적혀 있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 구절씩 들어볼 수 있는 책이다. 한문으로 원문이 제시되어 있고 한글 해석과 해설이 따라 붙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단순히 공자와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다는 단순한 구절부터 어려운 한자가 포함된데다 해설조차 어렵게 느껴지는 구절들도 있었다. 차분히 앉아 한구절한구절 의미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우리가 흔한 상식으로 알고 있는 도덕적 가치가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로 명명되어야 할 정도로 당연한 이치임을 느낄 수 있다. 요즘처럼 상식이나 예의를 잊은 시대에 진정 필요한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자의 삶에 대한 해설과 공자 연보를 실어 책의 완성도를 높혔다. ‘논어는 집안 서가에 하나 꼭 꽂혀 있어야 할 동양고전의 정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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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가로질러 - 밤, 잠, 꿈, 욕망, 어둠에 대하여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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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둠이나 밤에 대해 이렇게 광범위하게 아우를 수 있는 책이 있었던가?

나는 이 책에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부분이나 촛불, 마녀에 대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왔다. 그리고 고대의 사람들이 밤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만들어진 불행이라고 말하며 인간을 통제하는데 쓰였다는 부분이 흥미로왔다.

고대의 인간들은 어둠이 두려웠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밤을 통해 상념에 빠지고 밤에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다르게 그들에게 밤은 죽음이나 불안, 고통 뿐 이었을 거다.

인간이 바다를 아름답다고 여기고 여행지로 여기고 어떠한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이라고 여기기 이전에 적이 쳐들어오거나 사람을 삼키는 검은 바다는 그저 두려움의 대상에 그쳤을 때처럼 말이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지구과학적인 어둠에 대해 말한다. 우주의 암흑물질같이 허공인 우주가 검은색을 띠는 이유는 빛을 반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공이라고 생각되던 검은 공간이 점점 팽창하며 우주를 넓히고 있다는데 그 검은 공간 또한 인간이 알아내지 못한 어떠한 물질일 수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생물학적인 어둠에 대해 말한다. 밤에 일어나는 생산적인 일, 예컨대 생식활동에 대해서 말이다. 흥미로운 챕터다. 물속에 살아가는 생물들은 태양보다는 달의 영향에 익숙하다고 한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미생물의 이야기를 보면 태양이 생물 생존의 최대 조건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챕터를 읽으며 흥미로왔던 부분은 불의 기원에 대해 말하며 고대 사람들이 어둠을 악마로 형용하여 두려워했다는 부분이었다. 특히 새로웠던 부분은 야경꾼에 대한 부분이었다. 밤의 힘에 기대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엄격하게 벌했고 그로인하여 야경꾼들은 자신이 획득한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었다는 부분 말이다. 문득 통금시간이 있었던 어느 시대가 떠올랐다.

 

네 번째에서는 뇌와 수면의 관계, 인간과 동물들이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설명해 두었다.

다섯 번째는 꿈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몸이 잠든 동안에도 뇌는 움직인다. 우리의 심리와 꿈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상대적으로 ''이라고 할 만한 모든 현상을 아우른다. 낮과 밤의 밤, 깨어 있음과 잠듦의 잠, 선과 악의 악, 태양과 달의 달 등등...

흥미로운 삽화와 함께 통찰력 있는 글을 마주할 수 있다.

쉬운 책은 아니다. 많은 지식과 범위를 아우르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6장 같을 경우엔 과학적 지식의 부재로 읽는 게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이 글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고 옛날 사람들이 밤이나 어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준다.

이 책은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을 다른 측면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밤의 유혹 만큼이나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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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타노 다케시 지음, 이영미 옮김 / 레드스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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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사토루는 건축 디자이너이다. 일찍 홀로된 그의 어머니는 그를 홀몸으로 키워냈다. 나이 서른이 넘은 사토루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고 모든게 디지털화 된 시대에서 아날로그 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건축모형을 3D로 작업하지 않고 도화지나 스티로폼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식이었다. 그의 그런 삶의 방식은 연애에도 적용 되었다. 어느 목요일 밤 우연히 피아노라는 카페에서 미유키라는 미인을 만난 그는 그녀에게 푹 빠진다. 남들과는 다르게 품위 있으면서도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그녀에게 쉽게 폰번호를 물어보지 못한 채 매주 목요일마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갖기로 한다. 세번 이상 마주치지 못하면 이별인 것으로 생각하자던 그녀의 말에 사토루를 몸을 혹사시키며 업무를 강행하고 목요일 저녁마다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시작되는 연애이야기이다.

 

사토루라는 주인공 남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답게 그의 주변엔 의리 있으면서도 투박한 친구 두 사람이 곁을 지킨다. 막말을 하며 사토루의 연애를 돕는 건지 방해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지만 결국 사토루가 힘들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땐 늘 곁을 지킨다. 마지막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가는 데에도 이 친구들의 활약이 빛을 발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사람을 만나 문자로 고백하고 이별하는 시대다보니 이런 80년대 감성의 소설을 읽는다는 게 다소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오래전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답장을 기다리던 시절의 설렘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기타노 다케시'이기 때문이다. 그가 쓴 연애소설이라기에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기에 그가 쓴 연애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아궁이같이 은근하면서 격정적으로 불타오르는 것이 역시 그의 소설답다고 해야 할까.

 

표지에 써 져 있는 것 같이 무색소 저염식이라는 말처럼 MSG따윈 찾아보기 힘든 순애소설이다. 스낵컬쳐에 지나치게 빠져있어 뭐든 쉽고 빠른 세상 속에 순수함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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