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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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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벤트로 출판사에서 무료로 책을 제공받았으며, 추리소설 특성상 결말을 알고 시작하면 재미가 크게 반감되니, 되도록 두루뭉술하게 썼음을 미리 밝히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균형 잡힌 전개 속에서, 작가가 사건의 틀을 세심하게 구성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살인사건이 우연과 악의가 합쳐서 얽히고 얽혀, 결국 결말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 돼지축사, 화장터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더 위태롭게 합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단서를 교묘하게 감추거나 거짓정보를 흘리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독자들이 진실을 가늠하기 어렵도록 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짜 살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 흐려지며, 지금까지 읽은 내용이 과연 진실일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연속됩니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1, 2부와 달리, 3부에서는 숨 막힐 듯이 위기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며 사건이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죽어야 끝난다.' 그렇다면 누가 죽어야 끝나는 것일까요? ''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돼지의 피>에서는 살인의 동기가 확실하고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그 또렷한 동기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적나라하게 들어납니다. 그리고 결국 그 끝은 고통과 비극만이 남아 있음을 또 다시 깨닫게 됩니다.

 

다만, 소설은 끝까지 진짜 범인을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범인의 정체보다 동기와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이 더 중요하기에, 결정적인 단서를 토대로 독자 스스로 진범을 추측해야 합니다. 심지어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서도 애매하게 남는 결말에 찝찝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기승전결이 확실한 소설을 선호하신다면, 이 작품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예상보다 잔혹한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도 되지만, 그와 별개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소설입니다. 작가님이 마치 영화감독처럼 서술해주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으며, 진득한 복수의 쓴 맛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상으로 서평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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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역사 -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온 격동의 인류사
피터 버크 지음, 이정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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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두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 독자와 학자들 모두를 위한 책으로, 무지에 관한 주제에 흥미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입니다. 학술적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이라 제 개인적인 서평도 중요하지만, 책 내용을 전달하는 걸 좀 더 중점에 두었습니다.


1부 사회적 무지


1장) 무지란 무엇인가


저자 피터 버그는 무지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일 먼저 다룹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무지는 미신과 더불어 지식과 이성의 반대말처럼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분야에 따라 무지가 때로는 더 현명한 선택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법 분야에서는 선입견 없이 열린 마음을 갖고 본다는 의미로 ‘선한 무지’를 사용했습니다. ‘창조적 무지’는 지식이 지나치게 많으면 비즈니스나 과학 연구에서의 혁신이 오히려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이처럼 무지는 무지에 대한 인식과 의미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통적인 무지는 지식의 부재나 결핍으로 단순합니다. 전통적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여 학자들은 세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무지의 쓰임새가 학자마다 다릅니다. 그 결과 무지는 ‘능동적’부터 ‘고의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용사를 활용해 수많은 무지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됐지만, 아직 분류된 것보다 훨씬 많은 무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의식적 무지는 인식하지 못한 의미의 무지이며, 깊은 무지는 어떤 질문을 하는데 필요한 개념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깊은 무지의 또 다른 의미는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에 대환 의식의 결여입니다. 헷갈리시죠? 책으로 읽으시면 저자가 이와 관련된 다양한 예시와 그 근거를 차근차근 풀어줍니다. 교양서적보다는 전공책에 가깝습니다. 그 외 무의식적 무지, 비자발적 무지, 책임 있는 무지, 특정된 무지, 능동적 무지, 수동적 무지에 대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렇게 얽히고설킨 개념, 그리고 그 개념과 현상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주요 목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장) 무지에 관한 철학자들의 견해


무지에 관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된 장입니다. 그 당시 사용된 무지가 지금의 무지가 같은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철학자들은 역시나 무지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습니다. 전 여기서 ‘무지의 인식론’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무지를 식별하고 이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지속되는지, 지식 실천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바로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룹니다.


3장) 집단의 무지


이제 개인의 무지가 아닌 조직, 계층, 인종, 성별 등 크고 작은 인지 공동체가 공유하는 무지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장입니다. 지배 계급이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층민에게 정보를 아예 주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주는 방식으로 계급 간의 무지를 유발한 점 등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앞 장에서 언급된 무지의 인식론은 인종차별주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백인이 흑인을 동등한 인간, 심지어 아예 인간으로조차 인정하기 않기로 한 암묵적 합의가 ‘백인의 무지’입니다. 여기서는 고의적이거나 반고의적인 무시가 함께 작용합니다. 인식론이 사회적 전환에 큰 자극을 준 것은 페미니즘입니다. 여성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문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며, 여성 무지의 원인은 ‘여성이 지식의 빛을 박탈당한 채 어둠 속에서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남성이 여성을 계속 의존적으로 만들어 지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17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쉬송 등이 주장하였습니다. 남성의 무지도 존재합니다. 여성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본인이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성은 대체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은 저의가 깔려 있어 역사적으로 여성의 업적을 고의로 제외했습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공동 작업에서 그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과학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용 기억상실’ 중 하나입니다. 또한 남녀 간의 무지는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초기 경험에 의해 조장된 신념체계의 일부라고 얘기합니다.


4장) 무지의 연구


특정 지식에 무관심하고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측면에서 무지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음을 고고학과 인류학, 의학 등을 통해 알려줍니다. 특히 의학의 경우 어떻게 제도적으로 망각이 일어났는지 4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시대가 무지의 시대라고 해야 정확하다고 합니다.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집단지식이 대다수 개인의 지식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둘째, 새로운 지식이 확산되면 다른 지식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정보의 양이 급속하게 늘기는 했지만, 이는 엄연히 지식 증가와는 다르다.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무지의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는 것은 무지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저자는 조지 엘리엇 무지에 대한 집착에 얘기하는데, 제가 볼 땐 저자도 무지에 관한 집착이 상당합니다. <미들마치> 소설에 나오는 무지나 무지한이라고 등장하는 단어가 59번이나 나온다는 사실을 직접 찾아냈습니다. 무지에 대한 연구에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초기 무지 연구에 기여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되었기에 서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왕성하게 일어나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교류하여 이제는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는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분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정 문제를 연구할 때 그것을 뒤집거나 반대로 돌려 상반된 측면을 살펴보는 연구 방식의 발달로 무지 연구 또한 뒤따를밖에 없습니다. ‘아그노톨로지‘는 ‘아그노이올로지agnoiology’와 달리 무지가 생산되거나 지속되는 방식을 연구합니다.


5장) 무지의 역사


역사가들이 기록한 무지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4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무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역사학자들은 그들에 비해 뒤처져 있었습니다. 무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바로 ‘없음’을 어떻게 연구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사회과학자들은 ‘유권자 무지’등을 조사함으로써 연구할 수 있지만,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의 역사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첫 번째 해결책으로 간접적 방식인 ‘후향적 방식’ 활용합니다. 지식의 증가에서 무지의 점진적 감소 등 과거와 현재의 차이로 초점을 옮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설득력 있는 부재’를 연구하는 겁니다. 코넬 치얼라인은 서구인들이 근대 초기 레반트 지역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도서관 같은 보관소에 특정 자료가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빈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방식은 무지의 감소 대신 무지의 증가, 혹은 무지의 폭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언어의 소멸, 책의 소각, 도서관 파괴, 발견의 집단적 망각, 지식인들의 죽음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요소를 포괄하는 무지는 고유의 설명과 결과를 갖는 각각의 무지를 한데 모아 복수의 형태로 연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선교사와 야만인, 엘리트와 대중, 남성과 여성, 노동자와 관리인, 군인과 장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6장) 종교의 무지


종교에 관한 역사가 길기에 이 장에서 다루는 자료는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종교인들의 믿음을 자신과 다른 지식이 아닌 지식의 부재로 단정 짓고, 무지를 비난하는 점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성직자, 평신도, 선교 등에 관한 무지와 20세기 종교에 대한 무지, 타 종교에 관한 무지, 위장, 불가지론 등을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7장) 과학의 무지


무지의 역사에 관한 중요한 연구 중 일부가 자연과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과학사에 무지가 차지하는 비중, 새로운 연구에서의 무지, 지식의 상실, 지식에 대한 반감, 비과학자(일반인)의 무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이라고 느껴진 부분이 있어요. 자신의 무지를 이용해 연구 계획을 준비하고 해야 할 일과 다음 단계를 파악했으며, 특정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선택적 무지를 실천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예상치 못한 무지’가 연구 과정에서 일어나는 뜻하지 않은 성과라고 설명하던데... 이것도 무지라고 정의해야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너무 세세하게 분류하다 보니 오히려 무지에 대한 개념이 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8장) 지리학의 무지


역사학자와 마찬가지로 지리학자들의 사람들이 지리학에 무지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유럽인들의 무지에 관한 사례가 특히나 많은데 전 이런 것이 제국주의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씁쓸하더라고요. 아시아에 대한 무지 부분에서 우리나라 조선에 관한 언급도 짧게 나옵니다. 조선은 ‘은둔의 왕국’으로 불렸으며, 1905년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기 전까지 서양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서양인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오랫동안 무지했던 이유를 다른 대륙을 탐험하는데 장애물이 많아서 연구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전혀 공감 가지 않았습니다. 무력으로 무장한 배로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서 무작정 개항할 것을 요구하고, 여행하면서 측정한 토지를 바탕으로 수없이 자원을 수탈하고... 선교를 목적으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고... 그런 여행객들에게는 현지 사람들이 호의적일 수 없습니다.


2부 무지의 결과


9장) 전쟁의 무지


‘조직적 무시’와 ‘상대적 무지’가 존재하는 전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된 사례가 아주 자세하게 나옵니다. 전쟁에 승리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적군들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던 무지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실패한 요인도 무지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무지의 문제가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보여줍니다. 


10장) 비즈니스의 무지


비즈니스 전문가의 무지는 소비자나 대중의 무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합니다. 무지로 인해 농업, 무역, 산업에 얼마나 큰 악영향이 일어났는지가 주요 내용이며, ‘가짜 무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룹니다.


11장) 정치의 무지


통치 받는 자들의 무지 / 국왕, 총리, 대통령 등 통치하는 자들의 무지 / 정부 기구, 즉 정치 체계에 고착되어 있는 조직적 무지에 관한 내용을 논의하는 장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측할 수 없었던 재앙을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많은 사례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12장) 놀라움과 재앙


전쟁, 정치, 비즈니스 분야에서 의사결정권자들이 수 세기 동안 불확실한 상황, 특히 ‘알려진 미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동안 논의했다면, 12장에서는 ‘알 수 없는 미지’를 방해하는 미래에 대한 무지를 살펴봅니다. 자연재해, 기근, 전염병에서 드러난 무지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13장) 비밀과 거짓말


특정 지식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적, 경쟁자, 일반 대중 등에게 지식을 숨기려는 방식에 관한 장입니다. 이들은 목표 대상이 무지한 상태를 허용하고, 유지하고, 촉진하고, 이용하거나 심지어 요구하기도 합니다. 허위 보도, 루머, 스파이, 해커, 은폐, 폭로, 위조 등등 지금도 계속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14장) 불확실한 미래


불확실성은 미래에 대한 무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졌지만, 문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예상과 크게 다릅니다.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분석가들은 ‘근본적 불확실성’, 계산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래에 관한 두 가지 접근 방식도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하는 장입니다.


15장) 과거에 대한 무지


과거에 대한 무지를 세 집단의 관점으로 살펴봅니다. 첫 번째로 역사가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과거에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게 알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둘째는 일반 대중으로, 유권자들의 무지와 비슷합니다. 셋째로는 결정권자들로, 전임자들에게 배우지 못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과거를 무시함으로써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점이 <인간의 흑역사> 책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저자는 맺음말로 책은 마무리되며, 무지 용어사전도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반복되는 무지의 정의와 등장하는 무지가 많아서 헷갈리기에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래도 분야별로 다양한 사례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어, 본인에게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저자 피터 바크의 연구 성과에 대단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동안 저는 무지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본적도 없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많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습니다. 인류는 놀라온 발전으로 점점 더 풍족해졌으며, 평균수명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우주에 대해 연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무지도 줄어들지 않고 늘고 있습니다. 지식의 확장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지를 깨닫고 좀 더 나은 미래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 글은 디지털감성 e북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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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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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무료로 제공받고 두 번째 서평을 작성하게 되었다. 평소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밀리의 서재와 크레마 클럽을 구독 중이기에 읽을 책이 넘치며, 굳이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읽고 싶지 않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가연물>에 응모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띠지에 적힌 자네의 수사 방법은 독특해라는 문구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운 좋게 당첨되었고, 책을 받자마자 하루 만에 읽었다.

<가연물>은 나에게 요네자와 호노부는 정통 추리소설을 쓴다는 첫인상을 심어주었다. 이제 서평을 쓸 차례인데, 추리소설 특성상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된다.



 군마 현경의 수사1과 가쓰라 경부가 5개의 사건(‘낭떠러지 밑’, ‘졸음’, ‘목숨 빚’, ‘가연물’, ‘진짜인가’)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사건의 배경과 개요는 책 표지에 잘 나와 있다.

 

설산에서 조난 후 발견된 시체. 흉기는 어디에 있을까?

교차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증언 속 위화감의 정체는?

주택가 연쇄 방화, 도대체 그 동기는 무엇인가?

산책로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 왜 이렇게 눈에 띄는 장소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인질 사건. 진상은 무엇인가?



 

 일본 추리소설은 확실히 특유의 매력이 있다. <가연물>은 그 특유의 일본 추리소설의 장점을 다 담은 소설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수사가 남아있으며, 언제나 사건 뒤에 감춰진 비밀이 있다. 가쓰라 경부는 뛰어난 직감을 가지고 있지만 직감에만 의지하지 않고, 신중한 고민과 꼼꼼한 수사가 진행된다. 결국 그 비밀을 밝혀내고 사건을 무사히 해결한다.

 책을 읽다보면 가쓰라 경부의 성격을 나타내는 표현과 동료 경찰과의 사이를 보여주는 서술, 그리고 카페오레와 달콤한 빵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알 수 있다. 독자가 가쓰라 경부에 대해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추리소설을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나, 수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반전의 반전이 되풀이되는 긴 호흡의 추리에 질린 분들에게 추천한다. 큰 고민없이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다



이 글은 디지털감성 e북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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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 끝없는 밤
손보미 외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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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손보미의 <끝없는 밤>은 불안함이 가득 차 있다. 그 불안 안에서 문장들이 흔들리며 감정들이 요동치는게 느껴진다.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요트도 같이 흔들리면서 온통 불안에 차 있다. 마음 편히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다시 한 번 되새김질이 필요한 문장들이 있기에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최근에 직관적인 글들 자주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더 생각이 드는 걸지도.

남편, 그, 수의사. 그리고 공기까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 중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서부터 왜곡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본인 스스로를 속이고 본임의 감정을 회피하기 급급했던 그녀가 돌풍이 몰아치는 요트 위에서 자신의 샅굴부위가 아팠던 이유를 인지하고 받아드리기 시작한다. 오염된 음식을 자주 먹어서 생긴 통증이라고 믿었던 샅굴부위의 통증은 본인의 마음의 상처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자 그 통증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을 의심한다.


그녀가 미처 몰랐던 건, 상처에 약을 바르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이는 건 그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이었다. (74p)


손보미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진짜’ 상실과 ‘진실된’ 상실을 대해 얘기하면서 나의 상실은 나의 상실이며, 소설 속 그녀의 상실은 그녀의 상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소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격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현실과 소설 속 세계의 격차를 느끼는 순간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둘 다에게 하나의 소설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그것이 비록 서로를 이해했다는 착각일지라도.





손보미의 <천생연분> 역시 <끝없는 밤>과 결이 비슷한 소설이라 느껴졌다. 엄마, 짝사랑했던 남학생, 양호선생님, 변호사에 대한 자신이 속이고 있던 감정과 진심 간의 격차를 받아드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방해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본인이 모르면 누가 알죠? 어쨌든, 그녀는 몰랐다.

자신이 고통을 느껴야하는지, 아니면 처량함을 느껴야 하는 건지,

지독한 자기 연민을 느껴야 하는 건지 그녀는 몰랐다. (119p)


있다와 없다, 없다와 있다.

그녀는 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좌절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132p)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 단독화장실이 있다는 이유로 달동네에서는 제일 살았다는 말을 듣던 나와 롤렉스 시계를 잃어버려도 언제나 새로운 롤렉스를 가질 수 있기에 잃어버린 게 아닌 게 되는 피터와의 간극은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계층간 간극이 분명하게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동경했던 피터의 롤렉스 시계를 기어코 훔치게 만든 나의 옹졸한 질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잠잠한 현실과 결코 변하지 않는 세상.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실이 지닌 불균형 속에서 오락가락 괴로워하는

나에게 아빠는 말했다. 사람이 아래를 보고 살아야지. 위를 보면 끝도 없다.

우리 정도면 괜찮은 거야. (214p)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 신장이 164cm이라 사지연장술 수술을 받은 오스틴과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인 토미. 가끔 사람들은 생각한다. 보통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모습과 다른 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동질감을 품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토미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어요. 우린 그러니깐, 전우 같은 거잖아요."

나는 '전우'라는 말에 더시 말문이 막혀서,

커튼이 둘러진 병실내의 다른 침대들과 창 너머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을 바라봤다.

"아니요..... 저는 다른다고 생각해요. 전혀 달라요." (244p)




성해나 <혼모노> : 모시던 신들이 언질도 없이 혼연히 다 떠나가버려 신빨이 다해버린 박수무당. 그가 30년간 모시던 장수할멈은 앞집으로 온 신애기에게 가버린다. 진짜에서 가짜된 문수는 굿판에서 신칼에 베이고 작두로 인해 피범벅이 되었지만 그는 멈추지않고 이를 악물고 악착스럽게 신명나게 춤을 춘다.


30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283p)




윤 <담담> : 글에서 '적확하다'는 말이 나온다. 조금도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이 정확하고 확실하다는 뜻. 혜재는 동성인 수윤을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적확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자 한다. 그러다 아내와 딸을 잃은 은석을 만나게 된다.


네. 근데 혜재 씨한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가요? (296p)


한동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유가족이었어요.

(중략) 혜재씨 그러니깐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사람은 참 복잡하다, 뭐 그런 싱거운 얘기예요. (298p)


나는 더는 나를 설명하고나 증명하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의심, 혼란을 상대에게 돌리지 않을려고 한다. (314p)


어쩌면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대체 불가능하고 적확한

단 하나의 무엇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316p)


수상작품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다. 결코 담담할 수 없는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면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혜재와 은석의 모습.




예소연 <그 개와 혁명> : 민주85라고 불리며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태수씨의 장례식장. 딸인 나는 태수씨에게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이다. 태수씨는 생전에 장례식장을 찾아올 이들에게 해 줄 한마디를 준비했고 나는 딸임에도 상주가 되었다. 아빠의 바람으로 키우던 개 '유자'를 성식이형에게 부탁해서 장례식장에 데려오게 하였다. 장례식장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것이 태수씨의 마지막 지령이었기에. (350p)


잘못한거 없이, 그냥 적당히 돈 없고 적당히 뭘 모르고 살아온 태수씨의 혁명이 유자로 인해 비로소 마무리가 되었다.




안보윤 <그 날의 정모> : 수학 신동에서 정신 나간 애가 된 11살의 정모. 정신병을 가진 가족들의 고충이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읽기가 힘겨웠다.


우유를 담았던 컵은 서둘러 닦지 않으면 비린내가 눌러앉아버린다.

잠시 담아두었던 것만으로 컵은 금세 오염된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380p)





이 글은 디지털감성 e북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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