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 134센티미터 국제사회복지사 김해영의 희망 멘토링
김해영 지음 / 서울문화사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던 88만원 세대 담론들은 이제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드물게 논의되고 있다(아니면 88만원 세대 담론은 이미 구체화되어 더 이상 ‘88만원 세대’라는 용어자체가 필요 없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한 ‘멘토’의 청춘을 겨냥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이것의 형식은 전형적인 성공담 텍스트인데, 특이점은 이를 위한 본보기로 제시된 저자의 ‘스펙’은 약간은 비전형적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스펙을 소개합니다

그녀는 134cm의 작은 키에 척추장애를 지니고 있어 조건적으로는 ‘정상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들에 비해 거의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 그러나 그녀는 ‘작은 거인’이라 불린다. ‘작음’이라는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거인’이 된 것이다. 이 전환과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불운하게도 장애와 더불어 가난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유년기를 보냈다. 더군다나 가난한 집안의 5남매 중 맏딸이어서 집안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학력이 초졸인 탓에 고작 월급 3만 원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러한 최악의 조건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이 부조리하고 부정의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 검정시험에 합격했으며 이와는 별개로 편물기술을 배워 전국기능대회와 국제장애인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에 이른다. 특히 그가 입상한 1984년 19회 전국기능대회에서는 50여 직종의 금메달 수상자 중 두 번째 최고 점수인 98.82로 입상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외에도 여러 분야를 전전하다가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2010년 5월 컬럼비아 대학교 국제사회복지대학원 석사학위까지 받게 되며 가난과 장애를 뛰어넘기에 이른다.

 

그녀의 이러한 성공스토리는 장애를 딛고 선 성공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시작은 ‘장애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반 사람들보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일본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이사장 윤기 씨가 김해영 씨는 “자전거가 페달을 끊임없이 밟지 않으면 쓰러지듯이 김해영 씨도 끝없이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라고 할 정도로 그녀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능력 목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또한 요즘 젊은이 모두가 부러워할 4개국어 능통자이다(한국어, 영어, 일본어, 츠와나어). 게다가 프롤로그 앞에 있는 무려 5개의 추천사가 그녀의 인맥자본의 풍성함을 증언한다(이어령, 윤기, 명로진, 김순희, 모이라 커튼).

이쯤 되면 김해영 씨는 사실 탁월한 개인이다(되었다). 그녀가 장애마저도 극복해버린 과정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늦게 출발했지만 결승점에는 먼저 도착하는 달리기 잘하는 친구가 떠오른다.

 

즉, 주어진 조건은 철저히 무능력자감인데 결과적으로는 능력자가 된 김해영 씨.

여기까지가 저자에 대한 소개다.

 

어떤 불편함

5개 중에 가장 먼저 실린 이어령 교수의 추천사에 보면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사회와 사람들을 탓하는 대신에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모본을 보였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의 이유에 대해서는 단박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지금부터 이 글은 저 불편한 감정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지도 그리기이다(따라서 뒤죽박죽이다).

 

심리 지도 그리기

약자에게 야박한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은 ‘사회적 배제’라는 숙명을 피하기 힘들다.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되며, 마땅히 받아야할 서비스도 누릴 수가 없다. 따라서 장애인은 자연스레 빈곤선 아래에서 죽은 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불현 듯, 몹시 드물게 김해영 씨와 같은 ‘단 하나 밖에 없는 인생’이 우리 앞에 나타나 감동을 선사한다. 이때서야 나머지 사람들은 비로소 이 배제되었던 자를 바라본다. 지옥에서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도 운 좋게 살아남은 이 자를!

 

그녀는 장애인의 숙명이었던 ‘빈곤의 늪’을 자기 힘으로 뛰쳐나와 일반인들도 선망하는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이르렀지만 이는 분명 희박하게만 가능하다. 여전히 많은 ‘조건 좋지 않고’, ‘능력 안 되고’, ‘게으른’ 사람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당하게 차별 하는 것이 현실의 논리다.

 

“인간은 인간이라서 아름답다. 사람은 사람이라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앞에 놓인 무수한 장애물들(학벌, 가족 배경, 스펙 취업 등)을 뛰어넘지 못할 때마다 자기 탓으로, 부모 탓으로, 사회 탓으로 돌리지 말고 가장 나답고, 인간답고, 사람답게 뛰어넘길 바란다.”

 

그런데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말은 청년에 대한 기만이 될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김해영 씨처럼 굳건히 역경을 떨쳐버려 ‘성공’할 수는 없다. 빈자리는 극히 적고 그마저도 이미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의 자녀와 친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에 ‘김해영’ 사례처럼 개인이 알아서 불평등구조를 극복하라고 호통 치는 권력층이 있다면 그는 분명 책임 방기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녀가 만약 88만원 세대였다면 우리 중 가장 젊은이다운, 꿈과 열정, 패기를 지닌 친구였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대체 불가능하기에 값지다. 그렇기에 그녀의 책은 청춘들에게 또 다른 ‘세계시민’ 한비야의 에세이와 비슷한 감동을 주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한 편견들 때문에 그녀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이 지옥 같은 경쟁 사회가 유지되는 이상 김해영 씨는 일정의 선망은 받을 수 있겠지만 ‘경쟁구조’에서 패자한 자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대를 저버린 세상, 우리가 희망에 냉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희망이 없으면 지옥은 영원하게 될 것이다. 희망…. 난처하지만 희망에 대해 얘기하며 이 글을 정리해야할 것 같다.

 

달랑 몇 가지 희망

‘사회 탓’ 좀 하자. 먼저 서로의 장애를 차별하는 사회를 넘어, 남의 장애에 대한 배려를 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장래희망에 대기업 이름을 적지 않으면 이상한 놈 취급당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허용하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각자의 꿈을 각자에게!

 

(…)희망의 목록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김해영에게 빚진 사회

다시 책 얘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성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당신이 성공으로 믿는 것이 어쩌면 실패에 다가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문장을 마냥 신뢰할 수는 없는 게 나의 체질이다.

 

“불합리하고 부정의 한 사회와 사람들을 탓하는 대신에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나갔다. 어떤 기회든지 ‘패스’하지 않고 살펴보았으며,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그 어떤 기회든지 최선의 것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녀는 성공한 뒤에 사회에 베푸는 ‘멋진’ 인생의 행로를 걸어 나가지만 이 책은 결국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개인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이 책의 한계 지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녀에게 빚을 진 것이다.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은 더 많은 김해영이 아니라 ‘김해영과 같이 조건이 불리한 사람에게 온갖 고생 다 시키는 사회’ 없는 사회다. 이 사회가 더 건강한 것 아닐까? 즉 김해영 씨 같은 분이 고생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 그녀와 조건이 비슷한 모든 사람이 김해영 씨만큼 고생하여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됐다. 해영아! 너는 잘할 수 있어.’하고 격려하고 믿어준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자신하는 것의 근본은 자신이란 것. 살아가는 동안 정말 큰 자산이 되었다.”

 

그녀는 이처럼 아픔을 개인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마주잡은 손이 필요한 지점.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고개만 돌리니까 바뀌었다. 생각을 바꾸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달라졌고 내 마음도 달라졌다. 이것을 깨닫게 되어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위험한 면이 있다. 결국 차별의 주체인 나머지 구성원들의 의식은 그대로인 ‘정신 승리’라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분명 위기의 연속이었고, 자신이 언제 몰락할지 모르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더라도 ‘청년에게 위기를 즐기라! 그 날이 올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한 진술임과 동시에 기만적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답은 이 책에 들어있었으니.

 

“장애를 가진 사람은 혼자서는 그 장애를 넘을 수 없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넘어주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기다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자, 이제는 그녀의 인생에 감동하여 박수치던 손을 서로 마주잡고 한걸음 나아갈 때다! 서로가 고생만 하는 세상 따위는 끝장내버리고 싶다는 같은 마음을 공유하며. 비로소 나는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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