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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세트] 아이실드21 (총37권/완결)
이나가키 리이치로 (저자), 무라타 유스케 (저자) / 대원씨아이/DCW / 2025년 8월
평점 :
100자평만으로 줄이기 어려워 좀 더 길게 남겨본다.
용을 그리고 눈동자를 그리지 아니하다.
아이실드21은 스포츠만화다.
미식축구에 문외한인 주인공이 우연히 이 스포츠에 입문한다. 차례로 나타나는 강적들과 그들이 제시하는 고난에 맞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지닌 한 줄기 재능, 피나는 노력, 동료들과의 협력 등 손에 닿는 것을 모두 그러모아 결국 승리한다는
기본적인 스포츠 만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아이실드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하나는 미식축구라는 무척 낯선 스포츠가 소재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더블 주인공인 히루마의 존재다.
우리나라에서 미식 축구는 비인기 스포츠다. AFKN 중계를 제대로 본 사람 하나 찾기도 쉽지 않다.
이런 환경은 본 작이 연재된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이 만화는 이 이국적인 스포츠를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한명씩 동료와 상대방이 늘어날 때마다 각각의 역할과 그에 따른 전술을 조금씩 소개하며
미식축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방식이다. 총 37권 중 10권을 이런 빌드업에 할양했을 정도로 충분한 사건과 지면을 들여 독자와의 라포를 키웠다.
그런 느린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타이틀 주인공인 세나는 체격이 외소하고 성격도 소심하지만, 달리기가 무척 빠르다라는 장점과 성실함,
호승심같은 미덕들에 힘입어 조금씩 성장하는 오소독스한 스타일이다.
그에 비해 또 다른 주인공인 히루마는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악인의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인공 일행을 다음 단계로 이끌고 해답을 제시하는 인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복합적인 캐릭터이다.
스포츠물의 아군으로서는 굉장히 독특한 조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주인공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세나는 피동형 인물이라 히루마라는 강렬한 외부 자극 없이는 성장할 수 없었다.
일견 전지전능해 보이는 히루마도 세나가 없을 때는 스타트조차 할 수 없었다.
오소독스와 사우스 포가 어우러져 비로소 멈춤없이 나아가는 선순환관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바닥 다지기가 끝난 11권, 본격적으로 시작한 가을대회를 기점으로 만화는 쾌진격을 시작한다.
작가와 독자가 형성한 라포가 든든하니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다. 강렬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그간 쌓아둔 라이벌리를 맞부딫치면서 높은 벽의 암담함과 그 벽을 넘는 쾌감을 계속해서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새로 등장하는 면면들이 신선함을 계속 불어넣어 질리지 않는다.
감히 이게 새 시대의 스포츠만화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밌다.
오죠전까지만.
20권동안의 쾌진격 끝에 30권의 하쿠슈전부터 만화는 급속도로 궤도를 이탈한다.
강력한 라이벌 세이부를 제물로 삼아 유성처럼 등장한 하쿠슈는 인도자 히루마까지 잡아먹으며 전에 없던 위기 상황을 조성한다. 이 위기의 상황에 세나는 또 한번 성장하여 위기를 이겨댄다. 이런 구도는 일견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하쿠슈전은 별 재미가 없었다. 하쿠슈는 독자들이 기대하던 세이부와의 대결을 잡아먹고 내세운 빌런임에도 가오슈를 제외하면 특별한 개성이 없다. 데이몬의 면면들과 특별한 관계도 없고. 단적으로 말해 세이부만한 매력이 없다. 세나의 성장도 마모리의 보호에서 벗어난 시점에서 이미 완성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크게 부각될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나마 쿠리타가 힘을 써보지만, 글쎄. 불량삼돌이만한 울림은 없었다.
한번 탈선한 기차는 테이코쿠전과 미국전을 거치며 더더욱 폭주한다.
데이코쿠전은 진짜 아이실드21, 혼죠 선수라는 주요 플롯들을 투입했지만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밍숭맹숭한 전개로 진을 빼놓는다.
그 뒤를 잇는 미국 올스타전은 사족이라는 두글자만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게 아이실드21은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난 이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이 만화를 몇번이고 보았다.
대여점에서, 만화카페에서, 서고 어딘가에서 눈에 띄면 손에 들고 보게 하는 마력이 이 만화에는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만화를 추천하지 않는다. 용을 다 그려놓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 만화를 추천한다.
미식축구라는 스포츠의 매력과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가득한 이 만화는 아직 대체되지 않는다.
어쨌건 난 오늘도 이 만화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