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증보판
라인홀드 니버 지음, 이한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아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은 환경과 역할에 대한 페르소나가 있다지만 가끔은 이해를 벗어나는 행동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적으로 확장이 불가능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인간이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는 라인홀드 니버의 주장은 이성으로 역사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는 지식인들의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만큼 깊이가 있는 책이면서 어려운 책이었다. 첫 번째 독서라 눈으로 탐독을 하였지만 10%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정리해가며 읽으며 사색해야 할 책임이 틀림없다.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다. 그리고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사회는 여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전혀 도덕적 승인을 얻어낼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게 될지라도 종국적으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보고서 자신을 잃기도 찾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실현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p363)


  집단에서는 불가피하게도 집단의 이익이 불가피하게 지배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개인의 가장 이타적인 모습은 집단의 행위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 즉 개인의 자기희생으로 집단의 도덕에 반대하는 것이 된다. 집단의 사회적 행위는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정치의 영역들을 정당화해준다. 오늘날의 교육가들은 합리주의자처럼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하지만 사실 역사 세계 자체는 이성적이지 않은 세력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집단들 간의 관계는 항상 윤리적이기보다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집단의 가장 대표적인 예인 국가에 대해 얘기해 보자. 개인의 정신이 국가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국가의 의지를 대변하는 정부의 의지는 일반 민중의 맹목적 정서와 경제적 지배계급의 교묘한 이기심 추구에 의해 좌우된다. 국가는 합리적인 정신과 지성보다는 폭력과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결사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태도는 윤리적 성격을 갖기 어렵다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개인의 애국심에도 윤리적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적인 이타심을 국가의 이기심으로 전환해버린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어떻게 보면 고차적인 형태의 이타주의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여타 모든 이타적 충동의 원천과 동시에 국가에 대한 개인의 비판적 태도를 완전히 말살해 버리는 열정의 형태로 드러나는 일이 자주 있다. 개인의 비 이기성은 국가의 이기성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타적 열정을 민족주의, 심하게는 국수주의로 바꾸기는 쉬워도 인류 전체를 향한 열정으로 바꾸기는 정말로 어렵다. 왜냐하면 인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은 너무 막연하기 대문이다. (p160)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기존의 사회 체제나 제도에 의해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있는 권력 있는 지배 집단의 이해관계이다. 일반 사회의 지적 능력이 사회의 비합리적인 부정과 불의를 일소할 만큼 높은 수준에까지 고양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구 상에 이런 사회나 공동체는 존재한 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없다. (p309) 사회의 관성이란 워낙 견고한 것이어서, 관념적으로나마 그것을 이겨낼 수 있으리란 확신 없이는 그 힘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p319)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최고의 가치는 아마 '중용'일 것이다. 그 둘은 다르지 않으며 갈등과 분노는 어쩌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집단적 행동을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정치적 기술이 필요하다. 정치적 귀족이나 경제적 부르주아 아래 착취당하던 사람들은 이겨낼 수 없었다. 


  특권 계급의 집단적 이기심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부정의는 이성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회집단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할 경우엔 이에 대해 다른 폭력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또한 혁명의 집단의 폭력은 바로 드러나지만 특권 계급의 폭력은 공권력이나 경제력으로 발휘되기 때문에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의 도덕과 사회-정치적 정의가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이 비폭력, 무저항 운동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체 속의 개인들의 갈등도 중요하지만 결국 공동체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동체의 갈등은 더 큰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갈등과 분노는 제거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분노는 불의에 대한 감정의 이기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분노가 전혀 없는 상태는 사회적 지성이나 도덕적 활력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요소다. 분노에서 이기심을 빼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실 굉장히 어려운 책이며 광범위한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사회를 움직이는 원천 그 속에 존재하는 도덕과 윤리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얘기하며 사회가 정의를 구현하려고 했던 방법에 대해서 얘기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이 책이 나온 1932년에 비하면 더 심한 비도덕적인 사회다.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에 그대로 투영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없는 것일까. 서로에 날을 세우고 있는 2022년에 1932년의 통찰력의 향기나마 맡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 몇 번은 더 만날 책이 아닌가 싶다. 더 잘 이해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인지옥 - 세상 밖으로 쫓겨나는 노인들의 절규
<아사히 신문> 경제부 지음, 박재현 옮김 / 율리시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2022년 한국의 예상 출산율은 0.68명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연금 문제는 매번 쟁점이 되는 것들 중에 하나다.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고, 한 명당 부양해야 하는 노인의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존 리의 '엄마 주식 사주세요'라는 책을 읽어보면 아이들의 사교육에 올인하지 말고 부모의 노후를 위한 자금을 모아라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과열된 교육 경쟁 속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도 능력 밖의 투자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의 노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암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사례다. 아사히 신문 경제부가 2014 ~ 2015년 간 인터뷰를 진행하며 일본 하류 노인 사회의 처참함을 알린 책이다. 아름다운 노년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요양 시설에 머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긴 대기와 함께 생각보다 높은 허들이 있다. 게다가 높은 비용은 많은 노인들을 제대로 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한다. 조금 저렴한 사설 요양원의 경우는 암울하다. 4-5명이 생활하는 곳에 10명이 넘는 노인들이 생활한다. 게다가 남녀 구분도 없이 마구잡이로 섞여 지낸다. 그런 모습이 안타깝지만 살기 위해서 노인도 가족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놓이게 된 것이다.


  '간병 실직'이라는 것이 있다. 부모가 나이 들어 아파 간병을 하다 보면 자식도 자연스레 실직을 할 수밖에 없다. 노인의 문제는 노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80 ~ 90 세로 이어지는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의 부양해야 하는 자식 또한 60대의 노년의 삶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궁핍함은 어느 한쪽이 부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금이 많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병에 걸리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매달 받는 연금으로는 치료비와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 돈이 있다고 해도 문제다. 애틋한 자녀가 없다면 자산을 관리해줄 사람을 선임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치매가 걸린 노인에게 통장에게 돈은 있지만 의료비를 지급할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대리인을 선임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인지장애를 가진 이들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열악한 돌봄 환경은 전문 요양사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지원자 또한 매년 줄어들게 되고 줄어든 지원자만큼 현장의 요양사의 노동의 강도는 엄청나다. 젊은이들의 유입은 늘지 않고 있고 결국 노인이 노인을 케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더불어 사회시설의 비리와 낙하산 인사는 더 많은 부작용을 가진다. 현장의 처우에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행동하면서 현장은 더욱더 참담해진다.


  이런 악순환은 계속되어 지옥으로 불릴만한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보험비나 연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생겨나고 그런 사람은 다시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일본에서 고독사로 죽는 노인의 인구는 연간 6000천 명이 이른다고 한다. 자식이 있어도 없어도 모두 처참한 삶을 사는 노인들이 많다.


  지금을 살아내기 바쁜 나는 60대 이후의 삶을 생각할 겨를이 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생겨나는 오싹함에 두려웠다. 아이들을 키운다고 저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서 대학교까지 길러낸다면 나의 노후는 어떨까? 나는 몇 세까지 경제생활이 가능할까? 나이가 들어도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건강에도 더 많이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나만 잘 살아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삶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선가 끊어내야 한다. 지금 당장 나의 당연한 행복이 나중에도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뭘 해야 하고 우린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해내지 못하듯 유년시절을 지낸 인간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남아 있지 못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네들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입장이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것으로도 하나의 완벽한 존재이다. 여타 동물처럼 태어나자마자 독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부모와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해서인지 우리는 어린이를 미완의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익혀온 생존의 전략을 그들에게 주입하려 꽤나 노력한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가끔 놀라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조금 느리고 조금 엉뚱하지만 기발하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생각하고 있기도 한다. 머리가 단순해질수록 속도가 빠를 수 있는데, 그래서 어른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어린이들의 글쓰기 교실을 하면서 어린이들과 나눈 교감에 대해 얘기한다. 여러 아이들을 통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즐거움도 가져다준다. 아이들의 귀엽고 기발한 생각. 계산이 없는 관계 설정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질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동에 위로받기도 한다.


  아이를 길러보지 못해서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들만의 사회를 가지고 있다. 아직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 식당이나 대중교통 속에서의 아이의 울음이나 장난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도한 장난은 나도 사실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축이 될 것이라 바르게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인들의 횡포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어른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똑같은 어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구의 문제도 마찬가지 않을까. 어린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면 어린이가 자연스럽게 많아지지 않을까. 자라면서 행복을 많이 느낀 세대들은 다음 어린이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각박해지는 세상 전쟁터 같아지는 세상에서 제대로 견뎌내라고 단호한 태도를 자주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의 미래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존중받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어린이 문제는 어느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개선되어 갈 것이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의 첫 번째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봄은 어떨까. 아이와 어른이 서로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기분 좋은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한 때 서점가를 휩쓸던 화제의 소설 '아몬드'를 구입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어볼 수 있었다. 영혼 없는 듯한 표지가 모든 것을 말해 주듯 주인공의 감각에는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그런 대중과 같지 않음에 있는 상태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불안하게 바라보는지도 묘사하고 있다.


  책 중간에 나오는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가상의 인물 P.J. 놀란의 얘기가 모든 것을 얘기하듯 사람들은 대부분의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을 때 어떤 기적이 생기는지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까. 주인공인 윤재의 삶도 불현듯 찾아온 곤의 삶도 끝까지 놓지 않고 보살피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 원래의 궤도로 돌아온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불릴 수 있지만 그런 전문적인 용어에는 인간의 상태를 재단해버리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책 내에서는 그저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있다라고만 표현한다. 그런 윤재를 세상에 적응시키기 위해 엄마는 상황에 따른 반응을 학습시킨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엄마와 할머니는 그 역할을 더 이상해 해줄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두 면을 상징하듯 나타는 '곤'과 '도라'. 둘은 모두 방황하고는 있지만 '곤'은 어둠을 '도라'는 밝음을 상징한다. 집안 구석구석 '희로애락'의 한자를 붙여놓던 할머니와 달리 윤재의 일상에 그것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들 사이의 교감은 감정조차도 사회적으로 편향된 지금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결핍의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 윤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편견 없이 볼 수 있고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낙인을 찍어버릴 법한 '곤'에게도 순수한 과정을 통해 관계를 열어나가게 된다. 감정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주인공 윤재일까? 사회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일까?


  여러 사람이 이루는 사회가 굴러가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주인공 윤재가 상황에 따라 취해야 하는 행동과 말을 배우는 것은 그런 것들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누구나 강요받고 있다. 사회라는 물결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집단적인 판단과 분노가 강해질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 자신을 묻어 익명성에서 안정감을 얻게 된다.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이 작품은 결핍한 사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결핍된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 윤재가 원래의 감정을 알아간다는 것으로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주요했던 메시지는 그가 성장함으로써 주위의 인물들마저도 자신의 궤도로 돌아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이 사회를 치유하고 그런 사회가 다시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부여해 줄 수 있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각박해져 가는 사회. 이제는 사이코패스가 인류 진화의 방향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생기는 지금의 시대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함을 생각해주게 하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8년 초판을 찍은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도서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알리는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편의 단편을 담고 있으며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으며 받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자는 이 작품집을 요시모토 바나나 특유의 '행복한 상처 깁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은 작품의 주인공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퍼져있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따뜻한 형태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가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문장들은 불편함이 없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가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세밀한 묘사가 읽는 재미를 유지시켜 준다.


  아내를 보내고 아들을 위해 스스로 '여자'가 되어 게이 바를 운영했던 에리카의 '키친', 그런 아버지를 여의고 현실에서 도피하듯 여행을 간 유이치. 그런 그를 위해 출장지에서 맛있는 돈가스를 먹다 생각난 그에게 달려간 미아케. 그날 밤의 '만월'. 죽은 애인의 유품(치마)을 입고 등교하는 히라기의 '달빛 그림자'.


  책 속의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혹은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이한 수준이기도 할 듯하다. 하지만 편견의 안경을 벗어두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면 슬픔 가운데에서도 소소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함이 있고, 인물들 사이 서로 건드리는 감정의 미묘함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벼운 영화를 보듯 단번에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의 묘한 심리 변화를 읽는 재미도 분명 있다. 인간의 아픔 중에 가장 큰 상처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보며 작은 희망을 얻을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