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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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부쩍 많아지고 있는 올해 결국 막스 베버까지 도달하였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 베버는 자신의 강의를 통해서 어떻게 정치에 개입해야 하는지 답을 찾고자 했다. 그 두 번의 강연은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유시민 작가의 '자신은 책임질 수 없기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도 바로 이 책이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독일은 꽤 괜찮은 정치 구조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를 알고 싶어 집어 들었지만 막상 머릿속을 헤매었던 쉽지 않았던 책. 한 번 읽고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첫 번째 후기를 남겨 본다.


  국가란 역사적으로 그에 선행하는 정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강제력이라는 수단에 근거를 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관계다.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는 피지배자들이 그때그때의 지배자들이 요구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의 내적인 정당성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 정당성에는 원칙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관습이다. '영원한 어제의 것'의 권위. 이것은 구식의 가부장과 세습 군주가 행한 '전통적인' 지배다. 두 번째는 천부적 자질(카리스마)의 권위다. 어떤 개인의 계시, 영웅적인 정신 그 밖의 지도자적 특성에 대한 완전히 인격적인 헌신 및 신뢰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투표에 의한 지배자, 위대한 민중 선동가나 정당 지도자가 행사하는 '카리스마적' 지배다. 마지막으로는 '합법성'에 의한 지배다. 법률상의 규정의 타당성과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에 통해 근거가 부여된 사실상의 '권한'에 의한 지배인데, 이것은 근대의 '공복'과 그와 유사한 모든 권력 소유자가 행사하는 지배다. 하지만 이런 유형은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정치를 '위해' 살거나, 정치에 '의해' 살거나 다. 둘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정치를 자신의 삶으로' 삼는다.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의 소유 그 자체를 즐기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대한 봉사를 통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식에서 정신적인 자부심을 느낀다. 정치에 '의해' 사는 사람은 정치를 지속적인 수입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치를 '위해' 살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정치가 가져다줄 수 있는 수입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아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노동력과 사고를 완전히 혹은 거의 수입 획득에 바치지 않고서도 충분한 수입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기업가도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에게는 세 개의 자질이 필요하다. 정열, 책임감, 목측 능력이다. 정열이란 '대의'에 대한 정열적인 헌신을 말한다. 만일 '대의'에 헌신하는 것으로서의 정열이 또한 바로 이 대의에 대한 책임도 행위의 결정적인 인도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열은 사람을 정치가로 만들지 못한다. 목측 능력은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사물과 인간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이다. '거리 상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정치가에게는 큰 죄 중 하나다. 그것은 정치의 원동력은 오직 정열로부터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정치가는 매일 매 순간 세속적인 허영심과 싸워나가야 한다. 권력 추구가 전적으로 '대의'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잃고서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의 대상이 되는 곳에서는 그의 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죄악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 어려운 책에서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구분이었다. 사제는 <악에는 힘으로 대항하지 말라>라고 얘기하지만 정치가는 <악에는 힘으로 대항할지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악의 증대에 책임이 있느니라> 얘기한다. 올바르게 행동하고 그 책임은 신에게 돌리는 종교적일 수 있는 '신념윤리'와 달리 정치가는 (예측 가능한)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가 '책임윤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영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이 일을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 하지 않는다. 정치는 폭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


  막스 베버보다 더 어려운 역자의 설명을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50년도 더 된 강연 속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강연이 오늘에도 회자되는 것은 이 모델은 여전히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임을 오늘에도 느낄 수 있다. 그 권력의 칼날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향할지 약한 소시민을 향할지는 정치가의 '윤리'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칼날에 잘려나갈 많은 것들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 의식을 지며 나아갈 수 있는 '신념'이 있는 정치가와 아무렇지도 않은 '무심하고', '냉정한' 정치가만 있을 뿐이다.


  살아가고 있는 지금. '대의'를 가지고 있는 정치가는 있는가? 자신의 '대의'가 정치가의 자질 중 하나인 '목측 능력'에 기반한 것일까? 눈여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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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로케 생각해 - 걱정도, 슬픔도 빵에 발라 먹어버리자 edit(에디트)
브라보 브레드 클럽 지음 / 다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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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시기가 온다. 30 살에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낀 저자는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파는 빵집의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낸다. 모집 요강에서 벗어났지만 과감하게 던진 문자에 빵집 사장님은 글쓴이를 채용했다. 그렇게 글쓴이의 빵집 아르바이트는 시작되었다.


  빵을 너무 좋아해서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1일 1 빵식 하는 주인공은 빵을 SNS에서 그리기 시작했고 이 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표지의 빵 먹는 고양이는 그림을 배워 본 적 없는 저자가 만든 '브라보'라는 캐릭터다. 빵에 대해 진심인 작가의 모습이 잘 표현된 책에는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빵에 대한 얘기도 들어 볼 수 있었다.


  글에는 행복함이 가득 묻어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할 때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 되었다고 스스로 느끼는 저자의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빵을 좋아만 하던 저자는 빵집에 일하면서 빵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된다. 브라보와 함께 가볍지만 행복한 빵 이야기를 즐겨 보자.


  '브륄레'라는 신조어는 처음 들어 봤다. '버릴래'처럼 들리는 이 단어는 프랑스어로 '타다(burn)'이라는 뜻이다. 버릴래나 타나다 비슷한 어감이긴 한데, '회사 브륄레', '다 부숴 브륄레'는 참 재밌는 표현인 것 같다. 소주에 어울리는 빵을 찾을 정도로 빵에 진심인 부분에서는 행복감이 전해 오는 듯했다.


  하나의 빵과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고 미소 짓게 해 주었다. 세상에 빵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너무 많다. 그런 책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빵에 대한 기분 좋은 이야기는 수 만 가지가 있어도 모두 다르다. 작가의 유머러스함에 더해져 기분 좋음 전해지는 책이었다.


  특별한 빵이 아니라 동네 빵집에 있을 법한 빵들로 이뤄져 있다. 빵을 고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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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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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해방되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빠른 안정에 위해서 검찰에 쥐여줬던 막강한 권력. 세계 어디에도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검찰과 심한 마찰음이 나고 있는 최근이다. 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에서 어느샌가 정치에 붙어 카르텔을 만들어진 검찰의 권한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고인물과 집중된 권력은 썩게 되어 있으니까. 지난 대선에서 유시민 작가가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며 언급한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는 검사들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능력주의, 성과주의는 검사 속에서도 존재한다. 검사의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범죄를 발견해 입건하는 인지와 검찰에서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피해자를 구속하는 직구 속을 많이 해야 한다. 자연스레 검찰은 특수부를 중심으로 구심점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냉정하고 감정이 없는 듯한 드라마 속 검사들과 닮아 있다. 하지만 책 속에는 기소보다 불기소를 더 많이 하는 검사. 법정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검사. 민원인들의 사정에 검사 본연의 입장과 사람의 마음에서 고뇌하는 검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책을 집필한 정명원 검사는 워킹맘이자 검찰청에서는 외곽 주의자다. 처음에는 중앙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검사가 적성에 맞는지에 대해서 고민도 많았지만, 모두가 구심력에 쏠려 가운데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외곽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모든 외곽 주의자들은 낙오자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 등장하는 연수생 시절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검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파주의 한 요양원으로 봉사를 나간 연수생들은 어르신들이 모두 잠든 후 풀을 뽑기로 했는데 그 풀 중에는 나물도 있어서 잘 구분해서 뽑아야 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저자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곧잘 해나가지만 우수하다는 사법 연수원 동기들은 도무지 뽑질 못하고 있었다. 확증이 없이는 유죄를 만들 수 없는 법조인의 습관이 몸에 배어버려서 그랬으리라. 그중에 우수한 녀석이 저자에게 어떻게 구분하냐고 묻는다. 수많은 면을 보고 골라내는 것이지만 말로 다 담지 못해 저자는 '줄기 쪽의 털의 유무를 설명한다.' 연수원생들은 갑지가 털이 있는 녀석들을 모조리 뽑아내어 버린다.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일 가진 법조인들에게 주어진 확고한 기준은 어떤 비극이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일이다. 세상의 많은 면이 있는데 어떤 면을 들여다 봄에 따라 그 죄는 크기가 달라진다.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보며 저자는 자신도 모른 채 뽑혀 나갔을 나물들을 보며 법조인의 책임의 무게를 느끼는 듯했다.


  검사에 대한 자질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라고 얘기한다. 자신이 겪어보지 못하는 삶에 관해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근에 일어나는 잔인한 일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이 법조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어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도 부유하게만 살아서 약자의 삶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약자들이 더 많이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상상력의 경우에는 예전과 조금 달라진 면은 있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나열된 증거를 통해서 범죄를 재구성하고 범인을 유추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업무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셜록이나 뤼팽 그리고 코난 같은 것들이 모두 그렇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한 최근에는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데이터들이 넘쳐난다. 오히려 사실을 앞에 두고 저것은 진짜 사실일까라고 되물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사실일까? 똑똑한 범죄자들은 진실을 가장한 가짜를 뿌려서 현혹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범죄의 평범성을 부여했다.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능수능란한 언변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시도할 수 있다. 엄청난 장비가 필요했던 몰카는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소형 디지털카메라도 가능해졌다. 파파라치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은 범죄를 찾아내는데 유용하지만 범죄에 평범함을 부여해버려서 누구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 알기 때문에 더 무섭다.


  인간을 마음을 가진 채 검사의 일을 행하다 보면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마음들에 대해 규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철저한 규명 끝에서도 확정적인 안심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경계에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지에 대한 경계는 늘 어렵다. 검사는 언제라도 조금씩 주춤거리는 인간이다.


  지금은 국민의 적이 되어버린 검찰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소위 기득권 세력은 늘 수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기득권과 외곽 주의자는 분명히 분리되는 것 같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가 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돈 잘 벌어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 하루에 한 시간도 제대로 자질 못하고 늘 응급실과 수술실을 오가는 의사들도 많다.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은 나의 판단으로 타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검찰에 대한 엄청난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망각한 정치 검사들이 검찰을 대표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권력의 무서움을 알고 노력하고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반대에 있는 피고인의 마음도 살펴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참에 검찰도 권력을 조금 내려두고 매일 하나씩 배당되는 사건 그리고 기소하지 않으면 성과를 받지 못하는 시스템 등을 고쳐내서 정말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는 멋진 검찰이 더 많아지기고 대접받길 바라본다. 쉽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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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 이재명 자서전
이재명.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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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남에서 태어났고 그중에서도 보수 색이 강한 서부경남에 살았다. 처음 가져 본 투표권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정말 대단한 토론을 했었다. 얼핏 본 토론에서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의 논리정연한 정책 설명에 대단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눈 뜨고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수준의 토론이었음을 생각하면 정치는 퇴보하는 것일까 시민들의 삶이 퍽퍽해서 민주주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일까 잠깐의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의지와 달리 뽑힌 노무현 대통령은 겪을수록 좋은 점이 많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당당함이 좋았다. 나라의 변화는 스펙트럼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좋아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망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국정 운영에 얼마나 진심인지만 보았다. 국민들에게는 몸을 한 없이 낮췄지만 법조 카르텔과도 맞서고 언론과도 맞섰다. 미국에게는 작전통제권을 내놓으라 하고 반대하는 장성들에게는 호통을 쳤다. 일왕과 만날 때에도 머리를 숙이는 일이 없었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아주 당당하게 얘기했다. 나의 눈에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주의자였다.


  이재명이라는 사람은 내 머릿속에는 그다지 임팩트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 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어 있었다. 많은 기득권들에게 공격당하는 그를 보며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여러 단체와 진행했던 대담이라던지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으로 진행했던 일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대선 후보로 외롭게 고공 분투하는 그를 보며 거칠지만 인간 냄새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노무현재단에서 진행하는 <알릴레오 북>에 출현한 이재명 후보와의 얘기를 들으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누구보다 처절하게 지금의 위치까지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하였다. 사실 궁금한 정치인들의 책은 한 권씩 사보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책이 가장 많고,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책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책도 오세훈 서울 시장의 책도 있다. 


  자서전이라는 것이 미화를 기본적으로 하기 때문에 모두를 믿지는 않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워딩과 평소의 행동을 비교해보면 감을 잡을 수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알릴레오 북에서 들었던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이재명은 지극한 실용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이다. 저 멀리 보이는 대의보다 공장을 다니는 여동생의 아픔이 더 가까웠던 사람이다. 기득권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주위에다가 자신의 소명을 끊임없이 얘기하고 다녔다. 따신 밥을 먹고 따뜻한 방에 들어가면 다시 차가운 거리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사회 운동 같은 것은 부잣집 애들이 하고 가난한 애들은 공부해야 한다고 얘기했던 그는 운동한 친구들에게 늘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고 20대에 바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것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리라.


  이재명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권력이 필요했다. 파크뷰 특혜사건을 폭로하다가 검사 사칭 공범으로 유죄를 받았고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을 추진하다가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유죄를 받았다. 2주 넘도록 20만 넘게 서명에 참석했지만 시의회는 47초 만에 폐기해 버렸다.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이 국민들의 의견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지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었다. 그는 결국 성남 시장이 되어 성남시립병원을 짓는 데 성공한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것이다. 지금부터 얻는 것은 덤이니 잃어도 좋다.', '우리가 양심을 팔려면 얼마나 받아야 할까?'라는 대목에서 그가 왜 거칠고 직진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변호사 시절에는 끊임없이 공부했고 이길 수 없는 소송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공약 이행률이 98%에 달하는 것은 아마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것은 약속하지 않는 그의 성격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대선이 끝나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비난만 가득한 그런 책들은 보고 싶지 않았다. 좋을 것 같은 사람이 왜 좋은지가 궁금한 것이지, 싫은 사람이 더 싫어질 이유를 찾는데 에너지를 쏟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약자였고 자라서는 약자의 편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못 먹었던 것이 기억나서 무상급식을 시작했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부러워서 무상 교복을 만들었다. 다친 팔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던 기억이 성남시립병원으로 이어졌다. 


  가진 자가 가진 자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이치일 수 있다. 유한계급들은 그들의 계급을 지킬 필요가 있다. 힘도 있는데 뭉치기도 엄청 잘 뭉친다. 힘이 없는 자들은 힘이 없는 자들 것을 뺏는다. 힘이 있는 자들의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단 생각이 든 것일까? 요즘 게시판을 보면 투우장의 소처럼 국민들끼리 싸운다. 기득권들은 스낵을 들고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이 주인이라고 맨날 외쳐본 들 무슨 소용일까? 우리의 칼 끝은 기득권을 향하지 않고 서로를 겨냥하고 있는데..


  대선 이후로 부쩍 정치, 사회 서적에 눈이 간다. 언론들은 저널리즘을 잃었다. 같은 정책이라도 누가 말하냐에 따라서 완전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좇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잘 정리된 한 편의 논문 같은 기사를 읽고 싶다. 신변잡기식 기사는 연예 섹션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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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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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은 작가의 집필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전 작품의 성과가 좋지 않았고 삶은 궁핍해져 갔다. 조금이라도 오래 버티기 위해서 모든 것이 저렴한 인도로 떠났다. 자신의 구상한 작품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 폰디체리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누적 판매 1200만 부를 돌파하며 맨 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가 된다.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를 이을 만한 작품이라고 찬사를 받는 이 작품은 작가정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은 어린 시절 '피신'이라는 이름이 오줌을 싼다는 '피싱'과 비슷한 발음으로 들려 놀림을 받는다. 그래서 중등학교에 진학하여 등교 첫날부터 자신은 '파이 파텔'이며 파이는 3.14라고 강조하며 다닌다. 그는 자신이 붙인 새로운 이름을 통해서 자신이 새롭게 태어남을 느낀다. 세상의 본질보다는 이해되는 것이 중요한 것을 어릴 때부터 느낀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파이'는 입을 통해서 전달되면서 '애플파이' 같은 의미가 되기도 한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파이는 특별한 면을 보여준다. 기독교와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까지 모두 믿는다. 하나 같이 깊은 가르침이 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느낀다. 신을 믿음으로서 얻는 안정감을 그는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부와 힌두 사제, 이슬람 지도자와 한 자리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은 모두 신은 하나이며 서로 공존할 수 없다며 주장한다. 그리고 파이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파이는 이 질문에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는 종교보다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들일뿐이다.


  두 번째 챕터는 태평양 한가운데 소년, 호랑이, 구명보트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얘기한다. 인도는 언제나 불안한 정세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사람은 이민을 떠난다. 파이의 가족들도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배에 오른다. 태평양 어디쯤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한 선박에서 파이는 홀로 살아남는다. 가까스로 오르게 된 구명보트에는 호랑이와 오랑우탄 그리고 하이에나가 있었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네 가족이 데리고 가는 동물들 중 일부였다. 야생의 모습으로 돌아간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순리대로 뱅골 호랑이만 남게 된다.


  뱅골 호랑이와 200일이 넘는 날을 생존하는 파이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죽음은 곧 삶의 원동력이었고 적은 곧 생사를 함께 하는 동료였다. 시련 앞에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갑자기 나타나는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뱅골 호랑이와의 관계는 적수가 된다. 이런 관계 설정은 살아야 된다는 끊임없는 되새김으로 이어진다. 절망은 생명력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것은 관대함이 없고 잔인하다. 그래서 호랑의 존재는 중요하다. 절망을 껴안은 채 홀로 남겨진다면 살 의지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파이는 호랑이를 길들이기로 한다. 


  배에서의 삶은 채식주의자였던 파이에게 육식을 강요했고 살생을 하게 만들었다. 손이 떨이고 구역질이 났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자신이 동물처럼 먹어댄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고상했던 한 인간은 시끄럽고 정신없이 먹어대는 동물과 다르지 않았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내려고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굶어 죽거나 아파 죽거나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거나 상어에게 잡혀 먹힐 수 있는 온갖 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절망이라는 것보다는 무섭지 않은 것임을 얘기한다. 살아내는 것이 신이 내린 가혹한 고난을 이겨내는 고귀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는 동물과 다르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마지막 챕터는 육지에서 치료를 받으며 생존자 인터뷰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선박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러 온 일본인들은 파이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에 대해 그는 단순한 것도 못 믿는다면, 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으며 사랑도 믿기 힘드냐고 되묻는다. 그리고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더 잔인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 뒤 어느 얘기가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닌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설명하는 것이고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차피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작품은 보트 위의 사람 하나, 동물 하나로 올려 둠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연대 혹은 대조를 보여준다. 가장 고귀한 순간부터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 치밀해지는 묘사로 인해 비위가 약하면 읽기 힘든 순간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 한 인간을 몰아넣음으로써 인간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됨을 만나게 되고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문장에 멈출 수 없는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었고 덤덤하게 갈무리함으로 생각이 많아지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신념은 인생의 어느 정도의 고난이 올 때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런 강한 신념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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