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행복론 -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안세민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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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들의 경기 부양책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가운데 코인과 주식 그리고 부동산은 급등했다.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벼락 거지'라는 호칭이 붙어졌다. 시중에는 돈을 버는 방법을 늘리는 N잡이라는 것과 재테크에 대한 도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또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행복이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돈이 많아지길 원했다.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소득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의 주인공인 리처드 이스털린이 들려주는 '행복 경제학'에 관한 얘기는 윌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지금의 경제학이 19세기 의학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고민한 어느 경제학자의 말에 대해 생각해보면 수치에만 집중하는 경제학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 심지어 고전 경제학을 빼면 분배의 경제학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많이 버는 것 만이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렸다. 자본 독재 시대에 기업은 있어도 인간은 사라졌다. 벌지 못하는 자는 미천하다는 사회진화론적인 생각이 만연하고 있다. 많이 벌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답은 '행복 경제학'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경제학이라니 꽤나 호감이 가고 멋진 학문 같다. 행복이라는 정량적이지 않을 것 같은 개념을 측정하고 결론을 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GDP와 같은 거시적인 숫자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의 변화를 측정하는 꽤나 미시적인 경제학이 틀림없다. 경제학이라고 하기엔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부분도 있다. 어쩌면 '통섭'이 필요한 학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비교' 다. 아래를 보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옛말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의 행복은 상대적인 부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소득이 아무리 많이 늘어도 주위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적으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지면 행복할 수 없다. 소득이 늘어도 재테크를 하는 돈이 늘어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100만 원을 벌고 주위 사람들이 200만 원을 버는 상황보다 내가 50만 원을 벌고 주위 사람들이 25만 원을 버는 상황을 사람들은 더 선호한다.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건강'이다. 건강은 남들과 비교하지는 않는다. 그저 과거의 나와 비교할 뿐이다.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기준에 대한 행복과 불행이 있을 뿐이지 남들과 크게 비교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남들의 사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나만의 행복 기준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경제학자들은 인간에 행복에 대해 배우지는 않았다. 경제학에 개인의 행복을 얘기하면 이단아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GDP가 국민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은 중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북유럽의 울트라 복지 국가들의 행복도가 높은 것은 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지는 삶에 대한 안정감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잘 살아야만 복지가 가능한 건 아니다. 코스타리카와 같은 나라에서도 복지 국가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


  행복이라는 온도가 느껴지는 단어를 경제학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시 한번 변해야 하는 시기임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성장을 노리는 경제학에는 기업에만 집중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을.. 지난 코로나 시대에 제공되었던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은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었다. 집이나 직장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면 세금이 50%가 넘어도 다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월세나 대출이자 그리고 구직자로 살아가며 낭비하는 돈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이다. 기득권들이 반대를 심하게 할 것 같지만...


  이쯤에서 사회주의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동유럽 국가들 중에는 자본주의 때보다 사회주의일 때 더 많이 행복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은 국민의 삶을 체제가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복은 지극히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 체제는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독재나 공산주의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실직하고 쓸모 없어진다는 느낌은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다는 덜 할 것이다.


  북유럽의 울트라 복지 국가들을 혹자는 민주사회주의 체제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다른 이는 복지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게을러지고 생산성이 낮아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의 분배를 독재의 횡포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회 환원을 하는 억만장자들은 자신의 부가 사회로부터 왔음을 안다. 부가 남들보다 자신에게 많이 왔다고 믿는다. 그들은 안다. 사회가 지탱되지 않으면 자신의 부도 쓸모 없어진다는 것을..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배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사회 공산체제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체제는 철저하게 거부해야 하고, 행여 그들의 체제를 인정하면 배신자의 낙인이 찍혔던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해 동안 GDP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너나없이 경제가 엉망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양극화가 가져온 사회적 비교에 의한 '행복 상실' 때문은 아니었을까. 


  패러다임의 변화는 변하고 싶지 않은 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친다. 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강력한 부를 쥐고 있는 기득권층과 세상이 조금만 변해도 굶어 죽을 것 같은 사회 약자들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야간의 주간화, 평일의 주말화, 가정의 초토화'를 업무 지침으로 내린 김기춘의 행동에서 기득권 악랄함을 다시금 느낀다. 


  노동에 의한 소득은 소중한 것이지만, 부가 상위 1%에 흡수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강제적 분배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세혈관에 피가 돌지 않으면 결국 핏줄은 터져 버린다. 약자가 되고 싶지 않음 마음은 알겠지만 분배를 거부한다고 내가 약자가 아닌 게 아니다. 사회의 부가 고르게 퍼지면 자본은 더 빠르게 돌고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되지 않을까. 복지와 분배는 죽어가는 자본주의를 살릴 심폐 소생술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기업에 집중하지 않고 사람에 집중하는 경제학자와 정책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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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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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기술 발전 속에서 철학과 윤리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색보다는 당장 잘 살기 위해서 익히는 기술들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IT와 경제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인간관계와 리더십의 문제는 늘 중요한 관심사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등장한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신선한 질문이었고 꽤 오랜 시간 회자되는 책이 되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에 매칭 시키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게 된 정의가 현실에서 좌절되는 모습에 실망만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질문으로 그럼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서 조금은 더 포용성 있고 조금은 더 유연한 사고를 바라고 있는 이 책은 세계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옳은 일'에 대한 정의로부터 파고들며 의문을 제시한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은 절대적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자신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은 옳은 판단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평범했던 모습에 대해서 미개하다니 잔인하다니 평가를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비윤리적인 사람들이었을까?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을 보여 주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나이 든 흡연자들은 그때가 좋았었지라고 반응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실내에서 담배를 필 수 있느냐고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여전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옳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옳다는 것은 어떻게 익히게 될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처럼 우리보다 한 두 대 앞선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옳음을 익힌다.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는 중에 혁명적인 집단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이 다수의 의견이 됨으로써 옳음의 기준은 옮겨 간다. 이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지금 옳다고 하는 나의 행동이 시간이 지난 뒤에 악인의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달은 이런 윤리적 변화와 함께 맞물려 간다. 특히 바이오산업은 더 밀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을 연구하는 일은 항상 윤리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개량된 인간을 만드는 일은 그렇게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지금도 논쟁 중인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 이식은 어디까지 생명이라는 문제 앞에 놓여 있다. 낙태를 여성 인권을 위해서 옹호할 수 있던 것이 인공 자궁에서 잉태하는 태아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식탁 위의 가짜 고기들은 진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게 할 수도 있다. SNS에서 증발되지 않는 기록을 남기는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비난 앞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사회적 구조나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노예 제도는 비인간적인 제도였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정신병으로 치부되었던 성소수자들 또한 이제는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구조는 지금의 형태가 옳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최고이고 사회주의는 공산당이나 하던 거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을 만들어내고 있고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부를 가지는 형태를 만들었다. CEO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일반 사원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받을 만큼의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 많이 버는 사람에 대해 더 강한 세금 정책이 있어야 함에도 사회 구조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부의 양극화는 또 다른 곳으로 번진다. 최대의 이윤을 쫓아가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늘어나는 임금 대비 충분한 이윤이 나질 않는 부분에서는 급격한 비용 상승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과 보건이다. 지금의 교육은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투입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한 이래 더 나은 뇌를 가진 적이 없다. 그저 기록/검색하는 방법이 개선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방법이 발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학업 성취도가 월등히 늘어난 것도 아니다. 장난감 가격이 반 값이 되는 동안 학비는 2배를 훨씬 넘어 버렸다. 의료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약은 만들지 않는다.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창궐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치료비가 상승하는 만큼 병원장과 의사들의 급료는 올랐지만 의료 환경은 그렇게 많이 개선되지 않았다.


  이 책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어떤 답을 주려고 쓰인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에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의견에도 개개인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이다. 자기 의심과 고민을 하고 상대의 의견을 단칼에 잘라내지 말고 들어 볼 수 있는 아량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졌다. 그 속에서 경제 선진국, 복지 후진국 미국의 민낯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생산성은 늘지 않고 비용만 증가하는 보건과 교육에 대해서는 국가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기술과 함께 윤리는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어제는 옳음이 오늘은 그름이 될지도 모른다. 빠르지 못한 변화는 어쩌면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 세대에게 어리석음에 대한 혹평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윤리에 대해서까지 예측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단지 타인의 옳음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해 봄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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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 레이디 셜록 시리즈 1
셰리 토머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리드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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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을 읽어봤을 책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그 존재는 알고 있는 세계적인 탐정이 바로 '셜록 홈스' 다. '셜록 홈스가 여성이었다면?'이라는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많은 부분 '셜록 홈스'의 내용을 따라간다. 단편인 줄 알았는데 시리즈 물이며 셜록 홈스의 에피소드를 모두 이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여성의 대우와 활동이 억제되어 있던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인 셜록 홈스가 사건을 맡고 해결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리드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는 셜록 홈스의 '주홍색 연구'를 그대로 가져왔다. 셜록과 왓슨이 만나 처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첫 번째 작품답게 사건보다는 배경과 인물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당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더 군다니 빅토리아 시대이고, 주인공이 여성이었고 그 당시에는 좀처럼 할 수 없었던 사회 활동을 하게 된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셜록 홈스는 가상의 인물이며, 그에게 지혜를 빌려주는 사람은 '샬롯 홈스'이다. 어려서부터 특별했던 아이는 결혼보다는 사회생활을 원했고, 그것을 위해 아버지와 약속을 했지만 아버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샬롯은 어떤 이와 성관계를 맺어 혼사를 입에 올리지 못할 사람이 되려 했고, 결국엔 집을 떠나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이 머물 곳은 많지 않았고 돈을 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망으로 떨어지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샬롯에게 왓슨이 나타난다.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꽤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샬롯에게 투자를 하기로 한 왓슨은 여흥으로 시작했지만 샬롯과 함께 당시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최근에 등장하는 많은 추리소설들은 심리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부분이 많아서 굉장히 전문적이며 디테일하다. 그런 면에서 오랜 시절이 흐른 이 소설에서 그런 긴박감을 느끼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사건은 정지된 상태였고 비밀을 풀어가는 단서를 모우는 단계에서도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위험이 출몰하지 않았다. 단조로운 단서 하나하나에 감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원래의 셜록 홈스에서도 오류가 여럿 있다고 했고 첫 권은 습작의 느낌도 많았으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최근의 과학수사 추리물에 익숙해서 전개가 조금 느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단순 추리물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그 시대의 여성 차별과 그것에 대항하는 샬롯의 모습에서 공감을 받고자 하는 흔적이 많았다. 좋은 가문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었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려면 전문 교육 기관을 졸업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당당히 반기를 들은 샬롯에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닥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은 아직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결국 사건 해결로 돈을 벌게 되지만 그 모든 것들에 어느 남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여성상 또한 독립적으로 달성할 수 없었음 얘기한다.


  익숙한 존재들이 여성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신선함이 있었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추리에 본격적이지 않다. 샬롯이 셜록이 되려면 꽤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고, 느닷없이 여탐정 셜록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말을 귀 기울지 않는 시절에 지성의 최고봉에 있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며 독자와 신뢰를 얻는 작업을 하는 듯했다. 그 이야기는 고전에 닮아 있었기 때문에 첫 페이지부터 사건이 터지길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긴 독자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한 상황 설명을 마친 첫 번째 이야기였기 때문에 두 번째 이야기부터는 보다 본격적이게 전개가 될 것 같다. 사건도 해결해야 하며 여성인 것도 숨겨야 한다. 어쩌면 원래의 셜록보다 더 어려움이 많고 더 흥미진진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남장을 한 셜록을 기대했지만 당당하게 여성의 옷을 입고 추리를 하고 있는 모습에 예상이 빗나가는 신선함은 있었다.


샬롯이 앞으로 어떻게 지성체로 인정받을지가 더 궁금한 추리소설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작품이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툭툭 던지는 말속에 존재하는 뼈를 찾아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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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그리면서 배운 101가지 101가지 시리즈
이종범 지음 / 동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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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은 글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쓴다면 웹툰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법에 대한 책을 많이 쓴다. 조금 더 나아가면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매디방, 클립 스튜디오 같은 전용 앱의 사용법에 대한 책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웹툰을 그리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글을 쓰는 마음가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페이지에 한 문장씩 영단어 노트처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글과 그림을 통해 생각을 만들어내는 이 책은 동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에게 익숙지 않은 작가의 이름은 야구 선수를 떠올렸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첫 문장으로 만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없는 만화를 그려보는 것이다'


  재밌는 글을 적어보려 여가 시간마다 꾸준히 읽고 쓰고 있지만 나의 작품에 대한 첫 문장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질책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글쓰기 책은 글을 써 본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재미없고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끝을 맺어 보았을 때 비로소 레벨업을 하는 것이다. 경험치 게이지가 아무리 채워져도 100%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능력도 증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한 문장 한 문장씩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해 준다. 사실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툭툭 던지는 대사처럼 받아들이는 쪽의 생각을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개중에는 작품을 만들면서 필요한 스킬도 있었고 힘든 일에 대한 푸념도 있다. 그럼에도 만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더라도 만화에 대한 그런 감정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만화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창작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한 번씩 무심코 열어 아무 페이지나 읽어보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지금 바로 시작해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도 없다. 부단히 고민하고 그리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지 않을까.


  나도 하나를 마무리하면 일정을 다시 조절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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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속지 않고 숫자 읽는 법 - 뉴스의 오류를 간파하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
톰 치버스.데이비드 치버스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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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은 우주의 진리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도구로 어렵지만 그만큼의 신뢰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수포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도 숫자에서 오는 믿음은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정량적'인 것을 좋아한다. 숫자는 객관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모두 옳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 시대. 많은 미디어는 엄청난 양의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 진리인 마냥 얘기한다. 하나 같이 연구를 인용하기도 하고 당당하게 숫자를 제시한다. 그들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누군가 던져 준 미끼를 덥석 물어 베끼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것은 '출판 편향'은 가지고 있다.


  출판 편향은 한 가지의 주제에 대해 여러 자료가 있지만 자극적이거나 흥미로운 주제만을 다루는 경향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구 자료 또한 편향성을 가진다. 식당에 애국가가 나오면 한식을 먹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보다 흥미롭고 두 연구가 동시에 연구자료를 내놓더라도 한쪽만 출판될 가능성은 얼마든 지 있다. 이것이 사람의 생명에 관련된 것이라면 웃어 넘기기 힘든 문제가 된다.


  숫자는 연구를 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표본의 크기를 지운 상태의 데이터로 사람들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적 지표만 가지고 엄청나게 크게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더 심하게는 표본을 모우는 시간과 방법을 바꿔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심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연구는 해당 결과가 나오는 순간 표본 수집을 그만 둠으로써 주관적인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많은 교란 변수들이 있는 변수를 가지고 상관성을 비교한다. 마치 초콜릿 소비가 많은 나라가 학력이 우수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다. 잘 사는 나라는 학력 수준도 높고 부의 수준도 높아서 초콜릿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뿐인데 말이다. 바다에서 썰물 때만 표본을 수집하여 지구의 수면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미 만들어진 결과로 예측 모델을 만들어서 진리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모여진 표본에서 몰려있는 부분만을 골라내 마치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 일이 생긴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만들어진 표본은 수 천 가지의 이유가 모여서 생긴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팩트풀니스'가 생각이 났다.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데, 진실인 것처럼 통하는 것이 많다. 1차적인 책임은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 연구자와 교묘하게 숫자를 처리하고 때로는 편향 출판을 하는 언론사에게 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결국 최종 소비자인 우리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해관계가 바뀌거나 정권이 바뀌면 논조가 확 바뀌는 이유는 같은 일을 해석하는 자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 결국 자신의 책임으로 남겨지게 되는 게 조금은 씁쓸하다. 숫자가 왜곡되거나 왜곡되게 보이게 하는 22가지의 오류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며 익히면 세상을 조금 더 사실적으로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세상에 믿을 게 없는 건지, 선택적 믿음이 필요한 건지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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