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 의식의 출현까지
박문호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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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하나로 묶이기 시작하면서 제국의 역사를 넘어선 인류의 역사나 우주의 역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피엔스나 총균쇠가 그런 장르 중에 하나이다. 이를 통틀어서 빅 히스토리라고 한다. 앞의 언급한 두 권의 책이 인류사라고 하면 이 책은 또 다른 인류사이다. 한 챕터가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큼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을 담으면서 300페이지가량으로 함축할 수 있다는 것은 대가의 솜씨가 아닐까 싶다.

  138억 년 전 빅뱅이 생기고 사피엔스가 등장하기까지. 인간의 사고를 가지는 내용까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두꺼운 양장 커버에 클래식한 커버. 눈에 익은 폰트와 그림 그리고 목차까지. 처음 만나자 말자 강의 교재 같은 느낌이 강했다. 마치 교과서를 만난 기분이었다. 사실 전공 서적만큼 제대로 설명하는 책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꽤나 함축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전문 용어가 출몰하며 알 수 없는 연결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작은 챕터 하나하나가 전공서적 한 권을 품고 있을 정도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읽어보자. 이순신 장군이 여울목에서 거의 한 척의 배로 백 척이 넘는 배를 막아선 말로 안 되는 사실을 감탄하며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경이로운 우주의 이치를 모두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저 읽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모든 것은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동일한 원소로 이뤄져 있다. 우주는 엄청 복잡하고 경이로우면서도 의외로 단순하기도 하다. 운동 방정식,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 등은 어려운 이론이지만 우주를 수식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우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자연 현상은 전자, 양성자, 광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다. 우주로 나아가더라도 중력을 제외하면 다르지 않다. 빅뱅이 일어난 찰나 우주는 양성자, 전자, 광자가 전부였다. 원자들은 양성자의 숫자로 특징이 결정된다. 원자의 본질은 양성자의 개수인 것이다. 양성자의 개수에 변화하는 원자는 규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완벽함이 아닐까 싶다.

  우주에는 네 가지의 힘만 존재한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중력이라면 물질을 지배하는 것은 전자기력이다. 이것은 금속 결합, 이온 결합, 공유결합의 세 가지 결합을 만들어 낸다. 원자들은 결합해서 별이 되고 지구가 되고 생명이 되곤 한다. 자연현상이란 다른 의미로 원자와 분자들의 배열의 변환의 과정이다.

  지구의 진화는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볼 수 있다. 생물의 광물화는 생물 조직 속으로 광물이 들어와서 생체 조직의 일부를 담당하는 현상이다. 척추동물의 뼈는 인산칼슘이다. 반대로 식물에 의해서 광물이 분해되면서 토양은 형성된다. 우주적 존재들은 서로 영향을 받는다. 세포 속 탄화수소 분자들과 광물에서 빠져나온 금속 양이온들이 결합하여 생화학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생물의 진화는 본질적으로 광물학적 현상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터무니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의미 상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틀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는 박테리아가 숙주 세포와 공생하는 과정에서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 호흡에 성공한 박테리아며 엽록체가 된 시아노박테리아는 물을 분해하여 산소를 내놓는 광합성의 핵심 과정을 진행하게 된다. 이 두 박테리아 덕분에 광합성과 산소 호흡이라는 유기적인 체인이 형성될 수 있었다. 특히 시아노박테리아는 물속에 있는 산소를 대기 중으로 다량 내보내면서 진구 진화의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기 중으로 나온 산소는 지구 표면을 모두 산화시키며 3000여 종류의 산화 광물을 만들어 냈다. 이를 1차 산소 혁명이라고 한다. 대기 중에 사노가 축적되면서 산소 호흡이 진화되며 진핵세포가 출현하게 되었다.

  생물이 물에서 육지로 올라서게 된 것은 인간에 달에 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족적이다. 생물이 육지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폐호흡과 더불어 수분 유지가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양막이었다. 양막은 산소는 통과시키면서 수분의 증발을 막는 역할을 했다. 파충류 조류의 알이나 포유류의 태반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양서류나 어류의 알은 그렇지 못하다.

  중생대에는 현무암 홍수 사건으로 불리는 것 때문에 생태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정확하게 기입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규모의 마그마가 분출되는 현상인 듯했다. 현무암 홍수 사선이 발생하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데 중생대에는 해수면이 무려 200미터나 상승했다고 한다. 이렇게 발생한 탄소는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주며 식물은 엄청나게 자라났지만 영양분은 결핍된 상태가 되었다. 공룡은 더 많이 먹기 위해서 몸의 거대화로 진화했다. 하지만 포유류는 저산소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서 뇌를 진화시켰다.

  이 책은 얇았지만 빅 히스토리 책답게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핵심 되는 내용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기존에 벽돌에서 놓치기 쉬웠던 지식들도 정리된 문장으로 만날 수 있었다. 전문 용어가 많고 대단히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 문장들이 많아서 전문용어가 많아서 페이지 수에 비해서 읽어내는 속도는 더뎠다. 하지만 이런 책 한 권 있다면 큰 그림을 머리에 그려낼 수 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더 세세한 전문서와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뇌과학 전문가로 알고 있는 저자의 폭넓고 깊은 지식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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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큐레이션 -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
이민경 지음 / 진풍경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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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정적이고 담백해 보이는 일본에 대한 감상을 잘 나타내듯 책의 디자인은 잔잔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도쿄라고 하면 서울과 마찬가지고 부산스럽고 활기가 넘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시부야나 롯폰기 만 생각해도 미어터질 것 같은 인파 속에 서 있는 느낌이라 아찔하다. 하지만 도시는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의 것이고 그 색깔은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6년간 일본에서 에디터 생활을 한 저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도쿄 곳곳의 풍경에 대한 얘기는 진풍경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도쿄 기행 정도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곧바로 만나게 되는 글은 단순히 여행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여행객의 선호가 묻어나는 시점이 아니라 일본인들 속에서 살아가며 알아간 저자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겪고 기억하며 쌓아둔 이야기를 짧은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게 하나하나의 작품을 설명하듯 이어나갔다.

  도쿄라는 작품은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 속에는 현재도 과거도 함께 녹아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많은 문화와 함께 타국에서 받아 일본스럽게 만든 것들 그리고 현재가 존재했다. 저자는 도시와 자연, 물건과 가게, 일사, 맛집 그리고 도쿄를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터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급박하게 움직이며 사진을 찍고 먹고 하며 지나가는 곳들이 아니라 조금은 느긋하게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도쿄의 공기를 음미하는 방법'이라는 시적은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들에는 일본인들의 특징과 부러움과 더불어 불편함도 있었다. 혼내(속마음)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모테나시와 같은 진심을 넘어선 신념에 가까운 대접은 또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다. 오모테나시가 단순한 과잉 대접이 아니라는 어느 크리에이터의 말이 좋았다. 몸이 안 좋은 단골에게 메뉴에 없는 죽 한 상을 내어놓는 요리사의 행동에서 보듯 일본의 오모테나시는 그저 친절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집중하는, 어떻게 보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그 속에 이어지기란 무척 기나긴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무언가에 쉬이 빠지고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은 일본의 '오타쿠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의미가 지금의 시대에는 안 좋은 쪽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그것은 장인 정신이라는 것과도 닿아 있다. 그 행동이 무엇에 집중하고 있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과학이 그렇게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집착하더라도 지지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글이 잠시 옆으로 새어버렸다. 이런 과학 덕후란..) 장인에게서부터 나오는 모노츠쿠리는 일본의 자랑이다. '좋은 물건, 좋은 정신'은 도요타의 기업 정신이기도 하다. 자신의 신념으로 자신의 것을 자신의 속도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근본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름답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섬에 살았기 때문에 문화를 내어놓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했고 그 문화를 배척하기보다는 현지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는 원래 것도 많지만 일본화된 것도 많다. 외국의 말을 굳이 가타카나로 만들어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지만 좋은 것을 받아 집요할 정도로 완성한다는 그들의 행동은 본받을 만하기도 하다.

  같은 동아시아에서 인접한 두 나라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서양인들 눈에도 똑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역동적인 느낌이 일본은 차분한 느낌이 강하다. 분명 이것은 취향의 차이기도 하다. 역사의 문제 때문에 오늘도 날 선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90년대에는 우리가 그들의 문화에 열광했고 2020년대에는 그들이 우리에 열광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어떻게 보면 애증의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승리 아니면 할복을 선택했던 사무라이의 정신이 그들의 정계에 뿌리내려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은 분노를 삭일 수 없게 만든다. 약탈해간 수많은 문화유산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왜일까? 그들은 여전히 한 걸음 물러서면 할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도쿄를 그들이 서울을 조금 더 잘 알게 된다면 나아질까?

  용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다. 77주년 광복일이 한 달 남았다. 77년을 쌓아온 고집이 쉬이 꺾이지 않겠지만 ( 이번에도 자민당이 압승에서 물 건너갔지만) 정상적인 사과와 행동으로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 피드에 댓글을 달아주는 일본인도 내가 가서 댓글을 다는 일본인의 피드에도 서로 응원할 뿐이다. 역사의 아픈 고리만 잘 정리된다면 정말 잘 지낼 이웃인데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 중)

  몇 해 전 한일 합작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본 친구들의 '쿠야시이'를 한국말로 '분하다'라고 직역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석하지 않을 텐데 제작자의 의도적 자막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도 그들도 미묘한 자신들의 문화가 있다. 우리의 눈으로 직역하면 오해할 부분이 많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도 짚어가며 도쿄를 안내하고 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큐레이션이었다.

  아직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일본이라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심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면 이 책으로 여행을 달래고 조금은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딱 한번 등장하는 천왕이라는 단어에 분노 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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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다자이 - 다자이 오사무 자전적 산문들
다자이 오사무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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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격>으로 처음 다자이의 작품을 만났을 때에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그에게 환호하는가? 그의 작품을 계속하게 찾아보게 된 계기는 문장 자체가 가지는 솔직함이랄까. 의문이 들뿐 작품 자체에 실망은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글을 써도 잘 썼겠다는 그런 작은 느낌은 다른 작품으로 이어졌다. 첫 만남이 강렬한 자기 비하였던지라. 그다음부터는 부정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그의 고뇌가 무엇인지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았다.

  다자이가 결혼을 할 즈음의 작품들을 정성스레 모아두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희망적이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삶에 대한 욕심을 내는 듯했다. 다자이의 인간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잘 묶은 이 에세이는 시와서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태어나 살아가며 어느 누가 행복하지 않고 싶을까?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다자이의 삶을 염세주의자의 삶으로 표현하지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세상을 너무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는 시선을 가졌지 않았냐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는 생각보다 완벽하고 싶었고 태어나면서 받은 행복 또한 자신의 완벽에 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는 무(無)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이고 싶었던 것 같다. 완벽한 세상에 어울리는 완벽한 인간이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자기 자신을 갉아서 작품을 쓴다고 얘기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작품에서조차 주인공은 다자이를 닮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며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을 작가가 설명하는 것은 이미 패배했다는 그의 문장은 그런 느낌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미천한 실력이라며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지만 최고의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자신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작품은 역시 고전으로 불리는 명저들이기 때문이다. 

  이기고 싶다. 추하게 초조해하며 온 힘을 다하고 이렇게 지쳐버렸지만,그래도 나는 선수다.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단순한 선수다.누군가, 이 가망 없는 작은 선수를 위해 성원을 보내줄 고매한 사람은 없을까.

  아무것도 없는 자신에게 딸을 내어준 장모에게 효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 고쿠민 신문 콩쿠르에 당선되었을 때 장모에게 미덥지 못한 사위가 해낸 일을 알려주고 싶었던 마음은 삶의 끈에 집착하고 행복에 겨워하는 다자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었다. 다자이는 말로 글을 적곤 했었는데 이때 이 말을 다 받아 옮겨 적어 준 것은 아내였다.

알겠지? 쓸쓸함에 지면 안 돼.난 그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자기 비하의 마음을 안고 살면서도 다자이는 부단히 열심히 살려고 했다. 어떻게 되지 않는 마음을 다잡으려 술에 기대고 글로 쏟아낸 것 같다. 일기 같은 글을 남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을 테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의 글을 재독, 삼독 하며 자신을 이해해주려는 친구들에게는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다자이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둘은 죽고 하나만 남았다. 그의 딸은 전쟁 중에 심각한 각막염에 걸렸었는데 다른 것은 신경 쓰지도 못하고 딸아이의 눈에만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비관적인 자기의 상태를 잘 인정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인 것도 알았다. 비굴은 수치가 아니고 피해망상이 정신병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는 그런 상태에서도 살아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또한 필사적으로 살려고 했다. 수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물에 빠져서는 죽을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의 자살은 그저 죽음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죽고 싶었던 것 같다. 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 될지 어떨지, 그건 스스로 실제로 해보면서 넘어지고 상처받고,그러고 나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야.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나는 안 된다고 단정해버리는 것. 그건 나태야.

  경험한 것보다 더 치밀하고 완벽한 서사는 없다는 얘기가 있다. 자신의 삶을 갉아서 글로 쏟아낸 다자이의 작품에는 비관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매력이 있다. 그의 글은 삼킬 때 목에 걸림 없이 넘어가는 음식과 같다. 맛이 쓰고 떫을 순 있겠지만 쉬이 넘어간다. 그의 작품은 읽을수록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다. 상황을 고려할 때 늘 최악을 상정하며 머리를 굴리는 나의 머리와 닮은 점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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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포노베이션하라 - 플랫폼의 핵심을 꿰뚫는 6개의 질문
박희준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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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급속도로 빠르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많은 회사들은 인터넷 생태계에서 산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덕분에 우리의 연결은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24시간 붙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핸드폰과 함께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초기엔 포털들이 광고를 독식하며 득세를 했다. 뒤이어 이베이와 같은 쇼핑몰들이 나타났다. 현재는 SNS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고, 메타버스라는 빅 트렌드를 만들어가며 로블룩스나 제페토 같은 생태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빅 트렌드 속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플랫폼 제공자가 되고 있다. 이 책은 플랫폼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하고 있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카카오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방송에서 한 전문가는 다르게 말했다. 이 작은 회사는 큰 회사들도 하지 못한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금 적자에 허덕이고 있지만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 말대로 카카오는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채팅 프로그램이면서 그 사용자를 기반으로 엄청난 수의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생태계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만들어지게 되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제공자와 사용자들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는 지금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많다. 아마존, 구글, 애플, 우버, 알리바바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회사들이 줄지어 있다. 테슬라 또한 전기차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많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지만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판을 까는 사람이 될 건지 깔아 둔 판 위에서 노는 사람이 될 건지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궁금한 점이 가득한 상태에서 책을 폈지만 생각보다 원하던 내용은 적었다. 플랫폼의 정의를 제외하고는 큰 수확은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플랫폼에 특화된 여러 이야기를 알고 싶었지만 일반적인 비즈니스와 업무에 임하는 자세. 기업의 자세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특성 등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이것 또한 플랫폼이라는 특수한 내용은 아니었고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MZ세대를 아주 특수한 세대로 구분하는 어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마다 특성이 다를 뿐이다. 단지 그들의 공통된 특성은 알아둘 만 하지만 MZ세대는 모두 창의적이다라는 식의 일반화는 동의할 수 없다. 곧 주력 소비자가 될 그들의 소비 성향과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영역에서의 도움은 충분히 필요한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은 모든 경영에서 필수적인 것이고 T형 인재는 벌써 십수 년 전부터 강조하던 것이었다. 1장의 플랫폼에 대한 얘기만이 조금 흥미로웠다. 플랫폼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원한다면 다소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경영 전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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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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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지 제목 같은 이 책을 칼 세이건이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분명 유사과학이나 반과학에 대해서 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브로카의 뇌>에서도 과학적이지 않은 것들이 믿음과 진실로 취급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더욱 대중에서 가까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과학만이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몇 챕터를 할애해서 설명하던 반과학과 미스터리 등에 대한 반박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대중에서 멀어지는 과학이 국가 발전과 더불어 인류에서 얼마나 치명적 일지 경고하는 이 책은 사이언스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류는 과학의 비약적인 발달 덕분에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과학을 어려워하고 흥미를 쉬이 가지지 못한다. 자신이 누리는 혜택은 어느샌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다음으로 도약해야 하는 과학에 대한 투자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앞으로의 기술은 더더욱 스케일이 커질 것이고 이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도 하다. 과학에 흥미가 없는 대중들은 이것을 과학 덕후들의 취미 생활이라 치부하고 때로는 쓸데없는 낭비라고 비난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손에 손꼽히는 로켓 기술을 얻고자 했던 나로호의 실패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수십조가 투자된 4대 강에 비하면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는데도 말이다.

  과학은 국가 산업의 기반이다. 예술을 필두로 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모든 기반은 과학의 위에 서 있다. 풍요롭지 못한 사회에서 사유는 사치일 뿐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강한 소프트 파워가 나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은 인류 공동의 과제이면서도 각 국가에게도 중요한 경쟁력을 선물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과학에 대한 관심과 집중력은 떨어지고 있다. 칼 세이건이 말을 빌리자면 미국의 상태는 심각하다. 몇몇 천재들만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라도 과학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진실을 아는 것은 모를 때보다 잔인하기도 하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환상이 필요하다.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지금도 교육 말고는 방법이 없다. 교육의 효과가 예전보다 적어진 것이 아니라 교육의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 옛날 노예에게 절대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처럼 무지함을 간직한 채 자신의 믿는 것에 확신을 가진채 살아간다. 그런 무비판적인 자세는 선동당하기 좋고 미신에 빠져들기 쉽다.

  이 책의 반은 유사 과학과 반과학, 심령 주의, 환상 등의 것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음을 얘기한다. 물론 반증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칼 세이건은 이런 것들은 존중하며 글을 적고 있다. 그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음모론이나 비상식적인 반론, 사회적 동조 등을 방패 삼아 사회에 침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신의 힘으로 설명해 버린다면 안된다. 모든 현상은 신이 아니라 자연 현상이라는 고대 이오니아 인들보다 못한 생각을 현대 미국인들이 품고 사는 것에 참담함이 있는 것 같았다.

  유사 과학은 재밌다. 점성술이나 심령과 같은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한다. 유체이탈이나 초능력은 인간의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한다. 과학에서는 재연 가능해야 하는데, 재연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간단한 논리에도 간파당하는 것들도 많다. UFO나 악마는 어떤가. 세계 7대 미스터리로 불리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고대 문명이 깃든 아틀란티스도 우리 대부분은 믿고 있다. 

  믿는 것과 부정하지 않는 것은 미묘함이 있는 것 같다. UFO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열렬히 UFO의 증거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얘기에서는 과학적 증거는 없었다. 유령을 보았다는 사람들 속에는 유년기에 받은 학대 등으로 복수를 해줄 악마를 마음속에 만들어 냈다. 고대에는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마녀를 만들어 냈다. 신이 존재하고 빛나려면 반드시 악마와 어둠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의 폐해가 그렇게까지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영향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과학적으로 입증과 반증 모두가 할 수 없는 신앙의 특정 부분 같은 것이다. 달라이 라마와의 경험담은 종교가 가져야 할 자세를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교리 중에 과학적으로 반증이 이뤄진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칼 세이건의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당연히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것을 반증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다시 반문했다. 종교는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 정도의 위치가 좋겠다는 생각에는 멋지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칼 세이건이 주장하는 것은 과학만능주의가 아니다. 과학적이지 않은 것들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고 과학이 오히려 핍박받는 현상까지 나타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대중의 과학적 지식의 향상과 관심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보다 즐겁게 체계적인 과학 교육이 필요하고 단시간에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의 상황을 굉장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류가 지구 상에 출현하면서부터 과학적 사고를 하였다. 과학적 사고는 인간만의 것도 아니다. 실험해보고 결과를 내고 기억한다. 그동안 수많은 생명을 잃었지만 그러면서 지식을 쌓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의 어느 식물학자보다 산속을 누비던 수렵인이 더 많은 식물을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사고는 진화의 밑바탕이기도 하고 인간의 것만도 아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고등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과학적 사고를 져버리고 권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고에 함몰되어 스스로를 매몰시키는 일을 해서야 될까. 대중의 심리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이지만 의심하고 이유를 찾는 행동만으로도 비과학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더욱 쉽게 대중에 다가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인문과 문학의 초심자들은 천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책을 들자 말자 칸트나 니체, 공자와 맹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멋스러운 말들은 잘 모르겠지만 알듯하기도 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과학의 초심자들은 천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15년을 꼬박 공부하면 이제 양자역학을 공부할 준비가 되었다. 이것은 과학자들의 잘못이다. 쉬운 언어로 대중과 마주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어린아이가 이해할 정도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칼 세이건의 바람처럼 과학자들이 더욱 쉬운 언어로 대중과 함께 하고 그 틈에 자라난 과학적 지식으로 더 심오한 과학을 논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훌륭한 과학자였다. 우주와 블랙홀 같은 것에 질문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호기심 넘쳤고 나이 들어버린 지금보다 더 인간 본연의 모습에 호기심이 많았다. 쓸데없는 질문은 없다지만 튀지 않게 행동하게 되었고 상식에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괴짜들이 바꿔준 세상에서 편히 즐기고 있다면 그들을 지지해 주지는 못할 망정 손가락질하지는 말자. 그 정도의 과학적 지식과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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