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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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학을 서양의 학문이라 이해하여 조선 시대 서양 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함에 책을 펴보았지만 서학은 그 단어와 다르게 천주교에 대한 내용이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판토하의 <칠극> 같은 책을 보았고 중국을 드나들던 관리들은 중국에서 서양의 과학을 겪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는 조선 사대부의 서가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우수한 문물과 함께 전파된 천주교는 어느새 학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반역의 종교가 되었고 핍박받는 역사를 남겼다. 

  조선 시대 불었던 서학 열풍과 남인들의 붕괴와 역적으로 몰린 천주교의 역사 기록을 분석한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정조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즈음에 중국에서는 서양의 문물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이는 자연스레 조선으로 전달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서양의 학문을 접했고 그 사상은 그동안의 진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빠져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와 함께 천주교도 전파되기 시작되었다. 서학은 자연스레 전파되는 것 같았으나 기존의 유교와 대척점에 있는 몇 가지 이유로 이를 받아들인 남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시작되었다. 정조는 체재공을 좌상으로 등용하여 노론과의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나 남인 사이의 갈등으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초기 천주교는 당파 싸움 속에서 핍박받았지만 황사영이 서구의 배 수천 척에 바다로 몰려와 조선을 점령하고 천주교를 핍박에서 해방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인용한 <백서>를 조정에 들킨 이후로 천주교는 국가 전복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고종의 상 중에는 죄인을 잡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천주교 활동이 활발해지긴 했지만 상이 끝나지 마자 천주교인들은 잡혀 들어갔고 참수당했다. 신해박해 혹은 진산 사건으로 시작된 탄압은 신유박해, 을해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책의 또 다른 논란은 다산 정약용이 서학을 얼마나 깊이 하고 있었느냐의 문제다. 정약용에 대해서는 배교했다는 측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숨기고 있었다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 이 책은 후자의 근거를 제시한다. 여러 증거가 하나를 이룰 때에는 수긍을 하면서도 한 가지 증거로 주장할 때에는 사람들을 너무 강직하고 착하게만 본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무교이면서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크게 관심이 없던 내용이라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행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수능 문제 풀듯 핵심 문장만 찾아가듯 독서하니 벽돌 책이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정착시킨 종교인데 이렇게 변질되었나 하는 생각과 박해받던 시절의 포교활동이 현재까지 잔존하는 건가 싶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더 싫어진 느낌이다. 사실 나에게 다산 정약용이 서학을 믿었던 그렇지 않았던 그저 괜찮은 위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의외로 호감이 더 생긴 인물은 정조이고 연암 박지원이었다. 나라의 운영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고 부단히 애쓴 모습이 보인 정조였고 천주교보다는 서양의 학문에 더 관심이 있었던 박지원으로 천주교를 믿는 사람을 중립의 입장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박제가처럼 서양의 문물만 받아들이고 천주교는 빼자라는 실용적인 생각을 한 사람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종교가 그렇게 쉽게 관리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천주교는 핍박받았기 때문에 포교의 보안을 중요시했고 먼저 가까워지고 포교를 하고 무리를 챙겨 주었다. 믿으면 천당을 간다는 말에 순박한 사람들은 그대로 믿었고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배교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득세하고 있는 기독교지만 포교의 방식은 그때와 다르지 않은 듯하고 그들이 말하는 이단은 이 방법을 더욱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듯하다.

  유일신은 모두의 신을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늘 분쟁 속에 휘말려 들어간다. 조선 시대에 받은 핍박도 어떻게 보면 예견되어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유럽에서 가톨릭은 워낙 득세해서 초기 가톨릭의 모습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이 아니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행동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과 달라 보인다고 얘기한 남인들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세기를 마무리할 때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가톨릭의 과오 7가지를 얘기했다. 그곳에는 '다른 종교에 대한 박해'도 들어 있었다. 목사님의 여식이 결혼할 때 신부님이 주례사를 하고 스님이 축가를 불러 준 것처럼 어울리면 좋겠다.

  이 책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나라 천주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같이 무교인 사람들에게는 그저 예쁜 벽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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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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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만큼 자신의 서식지를 지키는데 서투른 종족이 있을까? 어떻게 보면 무관심한지도 모르겠다. 동식물학자들의 하나같은 생각이다. 인간은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멈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동안에도 생물은 하나씩 절멸되어 간다. 식물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인간들의 서식지를 넓혀가며 많은 식물들은 서식지를 잃었다. 많은 종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쳤다. 그럼에도 지난 코로나로 인간의 활동이 잠시나마 중단되었을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생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얼마나 외로운 곳에서 살고 있었을까.

  자신을 초록 노동자라로 불리는 식물학자의 삶의 기록이자 우리나라 생태계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식물들의 모습이 사라져 감을 안타까워하는 이 작품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태초의 바다에서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도 식물의 엽록체로 변화한 시아노박테리아다. 육지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도 이끼류와 같은 식물이었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런 면에서 식물들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해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물은 광합성으로 우리에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 주며 많은 병을 이겨낼 수 있는 약들의 재료가 된다. 우리는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식물의 터전을 없애며 우리의 서식지를 갉아먹고 있다.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경쟁을 부추기던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기주의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 유행했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처럼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공생하며 진화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식물에 대해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식물학자들의 책은 소중히 나눠야 한다. 

  식물은 여러 면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약효가 있다거나 희귀해서 값어치가 나간다는 얘기가 돌면 삽시간에 사라진다. 다 인간의 짓이다. 석회 토양에는 시멘트 공장을 짓고 길을 내기 위해 산을 허물기도 한다. 해안에 들어선 제련소는 수온을 상승시키고 중금속을 내어 놓으며 식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기후가 오르기 시작하며 침엽수들은 멸종 위기가 되었다. 간빙기에 자연스레 찾아올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멸종하는 생물들이 늘고 있다. 

  사실 책은 이렇게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지는 않다. 식물을 사랑하는 이의 생각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을 뿐이다. 여느 식물학자들의 책처럼 책은 잔잔하며 주위에 널린 풀떼기 하나라도 사랑스럽게 보는 감각이 있다.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이었지만 자신에게는 너무 맞는 길이었고 식물을 발견하고 기록할 때마다 느끼는 두근거림과 사랑 그리고 안타까움은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수구'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자수를 놓은 듯 아름답게 피는 둥근 꽃이라는 뜻이다. 수국을 얘기한다. 향유가 지천에 깔리면 가을이 왔다는 증거다. 계절을 알리는 흔한 풀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구절초나 국화도 그렇다. 아스팔트와 빌딩으로 뒤덮인 도시에서는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니게 되었지만.. 

  저자처럼 나도 초등학교 때 우산이끼나 솔이끼를 계곡 근처 습한 곳에서 보곤 했다. 산과 들에는 무수한 식물들이 있었고, 나물이며 산딸기며 복분자 그리고 개살구도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관찰 실험을 하려면 인터넷으로 구매해야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벌레를 보면 호랑이라도 본 듯 기겁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안되어 보인다. 시골에서 벌레들과 놀았던 나로서는 해로운 곤충과 그냥 곤충도 구분하여도 잡는 법도 알고 있다. 근데 이것도 안 하다 보니 머뭇거리게 되기도 한다. 아마 요즘 애들 중에 꿀벌과 꽃등애를 구분할 구 있는 애들은 없지 싶다. 우리는 진짜 벌에 쏘여 가며 꽃등애를 잡곤 했으니까…

  책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과 귀한 것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처한 실상 또한 얘기한다. 국력이 약한 시절 우리의 식물 분류는 일본에 의해 이뤄졌고 많은 강대국들이 우리의 식물을 가져갔다. 산천에 널린 식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하겠지만 지금은 원산지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만큼 '돈'과 '권력'으로 바뀌었다. 자생하는 식물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생물 주권이다. <식물학자의 노트>를 읽어보면 독도 자생종의 학명에 '다케시마'가 붙어 있는 슬픔도 확인할 수 있다.

  글은 식물처럼 잔잔하다. 그럼에도 저자의 호소는 그렇게 잔잔하지는 않은 듯하다. 어쩌면 사라져 버릴 식물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식물은 인간에 가장 빠르게 경고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에 대해 더 다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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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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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탄생하고 45억 년. 지구의 시간에서 생명의 역사는 그저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기체와 먼지 그리고 얼음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티끌이 모여 태양이 만들어지고 또 지구가 만들어졌다. 파편들은 서로 부딪쳐 합해지기도 깨져 나가기도 하면서 지구와 달도 만들어졌다. 부글부글 끓고 있던 지구는 층이 나눠지며 바다가 만들어지고 땅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유구한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명은 한 걸음을 떼었다.

  지구가 생겨난 지 1억 년이 지나자마자 생명은 생겨났다. 운석이 떨어지고 화산이 폭발하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생명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긴 역사이지만 각각의 개체들로 본다면 너무 짧은 지구 생명의 이야기는 까치글방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지구에 대기가 없던 시절은 충분히 따뜻하기도 했지만 태양으로부터 내려 쬐는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없어 견디기가 어려웠다. 해수면 깊은 곳에 자리 잡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이용한 최초의 생물은 지금은 엽록체가 된 시아노박테리아다. 자외선을 흡수하는 색소를 진화시켜 에너지로 사용하였다. 우리가 말하는 '광합성'이다. 광합성의 부산물로 발생한 산소는 가장 위험한 물질이었다. 산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생물들을 태워 죽였다. 이것은 지구 역사상 최초의 멸종이다. 이 '대산화 사건'은 지구 표면을 산화시켜 엄청난 양의 산화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해서 '산소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암석들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고 지구는 최초이자 최대의 빙하기에 돌입한다. 불 같은 지구가 갑자기 눈덩이 지구가 되어 버렸다.

  산화 사건으로 발생한 진핵 생물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내보낼 특별한 공간인 입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혁명인 항문이 생겨났다. 바닷속에서 살던 초기 생물들의 노폐물은 수중에 그대로 부유했는데, 단단한 배설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배설물은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부패세균도 해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해수면은 보다 깨끗해지고 산소도 풍부해졌다. 항문으로 인해 머리와 꼬리가 생긴 생물은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로 지구에서 육지는 오랜 시간 존재하지 않았고 둘째로 부력이 없는 육지에서 생물은 자신의 체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내려쬐는 햇볕에 말라죽을 수도 있다. 수분막이 없어진 아가미는 숨을 쉴 수 없다. 최초의 육지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기 때문이다. 조류가 육지의 웅덩이에서 살게 된 게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이끼류는 육지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끊임없이 만들었고 균류는 땅 속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지에는 최초의 식물이 하늘을 향해 치솟게 되었다. 지금도 토양 균류와 식물은 공생 관계다. 균류는 식물이 영양분이 되는 무기질을 흡수하여 공급하고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을 제공받고 있다.

  동물이 육지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알' 덕분이었다. 물이 없는 상태에서도 완벽하게 수분과 영양분을 보존할 수 있었다. 알은 굉장히 효율적인 생식 방법이다. 딱히 돌볼 필요도 없고 어미의 행동에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생존에 더없이 유리했다. 임신하여 입덧과 불편한 몸으로 다니는 임산부들에게 '알'은 더없이 좋은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포유류도 처음에는 알을 놓았다고 하니 박혁거세의 신화도 일리가 있을까?

  대륙의 생성 그리고 이동은 늘 생명체에게는 위협이었다. 그럴 때마다 화산이 분출하고 마그마는 쏟아져 나왔다. 지구가 내뿜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분진들은 지구를 뜨겁게도 차갑게도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말처럼 생명들은 절멸과 탄생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탄생의 이유는 같지만 죽음의 이유는 모두 다르다는 말처럼 때로는 너무 뜨거워서 때로는 너무 추워서 멸종했다. 공룡은 느닷없이 떨어진 직경 50km 정도 되는 운석에 의해서 절멸되었다. 

  그러는 사이 육상에 안착한 식물들은 꽃과 열매를 만들었다. 곤충과 동물을 유혹하여 번식의 매개자를 구했다. 지구 상에 가장 거대한 개체인 식물과 가장 많은 개체인 곤충의 공생 관계가 시작되었다. 

  포유류의 폭발적인 성장은 가혹한 환경에서 기인했다. 해변은 폭풍으로 파괴되고 바다와 떨어진 육지 대부분은 사막이었다. 동물들은 굴을 파고 들어가 낮의 열기를 피했다. 밤이나 새벽에 사냥하기 위해서 필요한 청각, 촉각, 후각은 포유류가 가지고 있었다. 지상의 낮이 포유류의 것이었다면 밤은 포유류의 것이었다. 변화하는 지구에서 적응하기 위해 공룡은 덩치를 키웠다면 포유류는 뇌를 키웠다. 작은 덩치에 비해 큰 뇌는 작은 개체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래서 포유류는 알의 수를 줄이고 새끼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게 되었다. '젖'의 탄생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직립 보행을 하던 호미닌은 왜 두 발로 걸었는지 모른다. 모든 동물은 두 발로 걸을 수 있어도 이내 네발로 걷는다. 공룡도 이족 보행을 했지만 그들에게는 꼬리가 있었다. 임신한 암컷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들은 변화하는 몸에 적용해야 했고 태아가 지면에서부터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늘 불안정하다. 그리고 발을 들어 놓을 때에는 높은 수준의 제어력이 필요하다. 이런 비효율적인 이족 보행을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공룡보다 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춤을 추고, 활보하고, 회전하고, 발끝으로 돌 수도 있게 되었다. 그들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유인원의 진화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폐경은 인간만이 이루어낸 또 다른 진화적 혁신이다. 일반적인 동물은 나이가 들어 번식이 불가능해지면 노화되어 죽는다. 하지만 인간은 폐경을 만들어냄으로써 번식의 주체가 아니라 도움의 주체가 된다. 인간의 뇌가 성장하면서 무력한 아이가 태어났고 동시에 할머니가 등장했다. 번식의 경쟁자에서 협동의 대상자가 되어 자손을 번창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생명이 연장되었다. 진화가 압력은 여성과 남성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하지만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여성의 진화는 남성에게도 영향을 주어 더 오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 

  수명의 연장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역사를 가져왔고 이야기의 저장소는 연장자들의 머리 속이었고 그들은 늘 대접을 받았다. 학습하는 종은 많지만 가르치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지금 한 참 이슈 중인 기후 환경과 생태계의 문제도 지구의 입장에서는 길게 보면 10만 년보다 짧게 보면 2만 5천 년마다 겪던 일이었다. 그리고 지구가 나이가 들어 자기력이 약해지고 대륙의 이동이 멈추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보게 될 현상이다. 인간이 지구가 보존하고 있던 자원들을 사용해서 그 속도를 높였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온난화된 기후는 빙하를 녹일 것이고 그렇게 바닷속으로 들어간 빙하들은 바다의 온도를 낮추고 염도를 낮춰서 지구를 빙하기의 초입으로 옮겨 갈 것이다. 지구는 늘 빙하기와 간빙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속에 살아남더라도 우리는 점점 잃어가는 다양성으로 언젠가는 절멸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억 년이면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지구는 여전히 잘 견디고 있고 생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멸종은 알아채지 못한 채 진행되었지만 인간은 스스로 알아채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물론 등장인물은 러시아 소설을 보는 듯 한 알 수 없는 공룡이름들과 생명체 이름들이 쏟아져서 외울 수 없었지만 잠깐 등장하고 사라질 인물까지 우리는 외면서 글을 읽지는 않으니까. 스토리 진행에는 큰 영향은 없다. 

  과학서 같지 않은 과학 서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었고, 지식을 정돈하고 때로는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350페이지에 100페이지가 레퍼런스라는 점은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싶었는지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생명의 이야기에 빠져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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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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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범죄자 혹은 형사가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발단부터 종결까지가 보통의 전개다. 이 작품은 그 뒷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고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받고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얘기하고 있다. 사건의 전개보다 주인공과 피해자 가족의 심리적 묘사가 좋았고 인간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등장인물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범죄자라는 낙인.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지키고 싶었던 선한 범죄자를 품는 이야기를 담는 이 작품은 소미 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작가에게는 스릴러 작품이 많았고 커버에도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여름에는 어김없이 출판되는 그런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장을 넘기며 주인공이 저지른 사건에서 '어, 이건 빼박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첫 장에서 끝나버린 사건이 의아했다. 교통사고, 당연히 CCTV는 있을 테고 차에 묻은 혈흔으로 잡아내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적인 상황도 현대였다. 스토리 역시 주인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잡히고 재판을 받고 구치소에 들어갔다.

  구치소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 장을 넘기자마자 출소하는 장면이 이어져서, '어?'라는 당혹감이 살짝 들었지만 그제야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5년 가까이 늦어버린 인생에 범죄자라는 낙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 그런 상황 속에서 만나는 많은 심리를 그렸다. 그리고 주인공의 형량이 결정되었을 때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하는 기간을 얘기하는 피해자 남편의 독백은 자연스레 복선으로 남겨 주었다.

  사실 책에는 두 명의 죄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모두 죄책감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둘의 특징은 돌발적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혹은 자기 합리화해버리는 사람들을 짐승에 비유했고 자신의 죄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자신에게 내려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 평생의 짐이 될 것이지만 인간 됨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용서를 전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점은 작가의 메시지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죄와 용서와 별개로 사회는 평생 죄를 묻는 것 또한 그들이 짊어질 짐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범죄에 대해서 죄를 지우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형량만 채우면 용서받는다고 인식은 우리가 만든 인식이 아닐까?

  스웨덴 같은 곳에서는 수용소 시설을 잘 만들려고 애쓴다고 한다. 수용소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얘길 한다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극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인간 대우를 받지 않으면 그들의 증오는 증폭되고 다시 사회로 향한다는 것이다. 범죄자의 인식을 더 강화시킨 채로 사회에 다시 풀어주는 꼴이다.   치안의 강화와 인식 수준의 변화는 범죄자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구치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의 수는 유지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수용소의 빈방만큼 잡아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다. 감옥에는 생활고 때문에 구속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로 복귀하면 그저 빨간 줄로 동일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끄집어내어서 질문한다. 죄는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 무거움이 있다는 것도 얘기한다. 단지 범죄자가 되었을 때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지 어떤 사죄가 진정한 사죄가 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더불어 그들이 진정으로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면 용서를 해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작가의 메시지는 훌륭하고 또 생각해 볼 만하다. 하지만 인간의 속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말미에 죽음을 맞이하며 평온함을 얻은 피해자 남편의 모습은 자신의 평생의 고뇌를 벗어낸 모습인지 죄인을 용서해서 자신의 증오를 걷어냈음인지는 모를 일이다. 작가는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맡기는 듯 한 중의적인 결말을 얘기하고 매년 기일마다 꽃을 들고 오는 죄인의 모습을 남겨 놓음으로써 용서는 평생에 걸쳐 받는 것이라고 얘기하며 마무리한다. 마음의 응어리는 깨지는 것이 아니라 녹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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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
브라이언 크레그.애덤 댄트 지음, 이종필 옮김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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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발전하면서 알아낸 514가지 법칙과 현상을 한 권에 책을 담았다. 일상생활에서 병원이나 과학관등 특정한 곳에서 지구나 우주와 같은 곳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한 장의 그림과 함께 그 상황에 숨어 있는 과학적 법칙과 현상을 찾아 설명한다. 어릴 때 보았던 윌리를 찾아라 같은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과학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다르게는 방대한 법칙과 현상을 한 권에 잘 담은 COOKBOOK과도 같았다.

  과학의 법칙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펼쳐 놓은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한 장의 그림에는 수십 가지의 과학이 숨어 있다. 더불어 위대한 과학자들도 함께 숨어 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면서도 과학적 지식을 알 수 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군더더기 없는 설명에 '아~!'라며 감탄을 할 수 있고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할 수도 있다. 나의 입장은 전자에 조금 가까운데 그림 한 장으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어린이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책이어서 그런지 KAIST 과학영재교육원장 추천이 붙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과학 법칙이라니!라는 놀라움은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관련 법칙에 대해 검색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설계한 듯했다. 이 책을 어떻게 쓸까라고 고민하던 나도 하루에 하나씩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14개니까 일 년 반 정도면 다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에 쉬어야 하니까 2년 정도 하면 되겠네.)

  과학에 흥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광활한 과학의 폭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찾기 하듯 아이들과 함께 보면 호기심이 폭발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조금의 관심이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재미나게 설명하는 건 부모의 몫) 아이들과 함께 아인슈타인이나 페러데이 찾기 놀이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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