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8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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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다수가 행하는 소수에 대한 횡포 정도 정의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독특하다. 자신의 주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강자들은 약자를 억압하는 모습을 늘 보여왔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와 공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반면 이 작품은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 약자가 강자에 분노하는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인물을 묘사하며 여러 면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실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며 사실감보다는 세밀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마니아나와 똑 닮은 삶을 살았던 작가의 멕시코에서의 이야기.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의 아픈 민낯을 들추어내는 이 작품은 픽션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는 경계선을 넘나 든다. 이 책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폴란드의 왕족이며, 멕시코계 어머니를 둔 저자는 실제로도 귀족이며 멕시코에서 살며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사와 책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소설과 차별되는 면이 있다. 굉장히 짧은 문단들이 이어 붙여져 있다. 마치 짧은 인터뷰 같은 문장들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을 품은 소설이 아니라 장면 전환이 굉장히 많은 느낌이 있다.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차라리 에세이라고 하는 이해하는 편이 나을 정도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가족, 마리아나, 소피아, 루스는 프랑스를 떠나 멕시코로 이주하게 된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였고 아버지는 프랑스군으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멕시코계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멕시코로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가 멕시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멕시코에는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있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은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소피아는 당당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마리아나는 관찰력과 호기심이 많지만 내성적이며 순종적이다. 루스는 이성적이지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까. 그리고 빌런으로 퇴펠 신부가 등장한다.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을 읽으며 줄곳 의문이 드는 생각이었다. 반 정도의 이야기는 잔잔한 에세이 느낌이 강하며 마리아나가 화자가 되어 여러 상황을 설명해 주는 느낌이다. 할머니, 어머니, 하인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종잡을 순 없었다. 완벽해 보이는 어머니 루스, 얽매이지 않는 성격의 동생 소피아에 대한 동경. 어쩌면 고독에 대한 이야기,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 인가 싶었다.


  퇴펠이라는 신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방향을 전환한다. 이것을 투쟁의 이야기가 될 것인지 스릴러가 될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물론 책 소개를 감안한다면 인권에 대한 얘기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 느낄 뿐이지만 마치 혁명가 같이 등장한 퇴펠이라는 신부는 책을 읽어낼수록 모순적인 인물이 되어 간다. 어느새 혁명가는 사이비 교주 같이 느껴졌고 그가 말하는 여성 해방은 어느새 여성을 현혹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타락한 사제와 혁명가의 이미지를 연이어 보여주는 그를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몰라 혼돈스러웠다. 마지막에 가서야 역시 첫 느낌은 틀리지 않는군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귀족 사회라는 안전망을 벗어난 가족들은 처음으로 계급에 대해 느꼈을지 모른다. 하인은 원래부터 하인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특별한 정의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멕시코에서는 달랐다. 멕시코를 착취하는 많은 프랑스 귀족들을 '양키'라고 불렀고 멕시코스럽지않다고 공격했다. 퇴펠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으라며 주장한다. 마리아나는 그를 신처럼 추앙하기에 이른다.


  고독 속에 갇혀 있던 마리아나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어머니 루스는 그런 존재다. 문장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완벽함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퇴펠에 대한 믿음 또한 그러하다. 멕시코인으로 프랑스에서 살아온 루스 또한 어쩌면 고독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프랑스 공동체에서도 멕시코 공동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혼혈인 소피아와 마리아나 또한 그러하다. 그들에게는 혁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고 신처럼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이겨낸 건 자신을 사랑한 소피아뿐이다.


  책은 마리아나의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다 보면 루스의 성장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아나가 방황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변화를 꿈꿨지만 그 무엇도 이뤄내질 못한다. 그저 퇴펠 신부의 모순만 확인할 뿐이다. 그녀의 고독과 신념 그리고 사랑은 굉장히 복잡 미묘해서 마음에 전해지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가? 그녀를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쪽이 더 많은 이유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반면 루스의 성장은 확실했다. 멕시코인, 프랑스인의 정체성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멕시코에서 프랑스어를 배워 놓고, 파리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멕시코 음식을 먹으며 자란 그들이 프랑스인 척하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인이 화상을 입었을 때 어떤 남자의 도움 없이 당황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고 상황을 수습했다. 루스는 퇴펠에게 기대던 마음의 변화를 가졌다. 그 순간 퇴펠은 천사에서 악마가 되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겪는 고독을 다룬 작품이며, 그 속에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다. 그들을 깨운 것은 퇴펠 신부였지만 그는 '천사'이면서 '악마'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혁명을 말했지만 그의 행동은 권의 속에 갇혀 있었다. 인종 차별, 여성 차별 그리고 신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부작용. 그런 것까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사이비 교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나였기에 퇴펠의 언어는 사기꾼의 언어 같았고 그 말이 정당했지만 공감할 순 없었다. 그리고 왜 고통을 수반하여만 깨우칠 수 있는가? 에 대해 또 한 번 의문이 들었다.


  스토리가 아닌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작품이었기에 쉽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보단 르포의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함께 괴로워하고 공감하기보단 타락한 종교에 이성을 맡기는 행위 대한 거부감이 더 많이 들었던 것은 내 속의 방어기제가 작동했음이다. 아, 이 어쩔 수 없는 이과형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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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속성 -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팀 슈러 지음, 이은경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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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부의 개념을 만든 이후, 그리고 공동체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인간은 필요 이상의 부를 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업이라는 인류 최대의 발명을 하게 됨으로써 개개인의 인간은 인간 전체라는 커다란 유기체가 된 듯하다. 그리고 인류는 개미와 벌이 그렇듯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강요되는 이타심일까? 도태된 인간이 된 걸까? 살아남기 위해 밟고 올라서야만 성공에 가까워지는가? 질문을 던지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절대적인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법정스님의 말씀과 맥락을 같이하는 이 책은 윌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늘 "나에게 무슨 득이 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세상을 잘 살려면 셈이 빨라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매일매일을 자기 계발해야 하고 멈춰 서 있는 것은 마치 죄악 같이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이 바삐 움직이는 동안 멍하니 있을 순 없다. 지치고 힘들어도 그 물결에 휩쓸려 간다. 그러다 쓰러지기도 한다.


  미친 듯이 돈만 벌었더니 남은 것은 만성피로와 이혼 서류, 아이들의 원망 섞인 눈빛이라는 얘기가 있다. 몸이라도 멀쩡하다면 다행인데.. 흥청망청 쓸 만큼 성공하는 경우도 그다지 없다. 성공하신 어떤 분의 얘기 중에 성공과 워라밸은 시소게임 같다고 했다. 어느 쪽이 성공인지는 자신이 정하면 되는 것이다. 압도적 부, 자연인 같은 삶 그리고 균형 잡힌 평범한 삶 같은 것에서 정하면 된다.


  내가 어릴 적엔 클로버로 이런 장면을 자주 묘사하곤 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한다고 했다. 행복은 지천에 깔려 있는데 우리는 행운을 찾는다고 행복을 짓밟고 다닌다. 행운을 찾았을 때의 기쁨만큼이나 엉망이 된 세 잎 클로버들을 바라보는 아픔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공을 재정의 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우리는 '서포터라이트'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마인드셋이 되어 있다. 경쟁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야 한다. 대통령, 스타들 그리고 인플루언스 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이 큰 사랑만큼이나 아픈 시기와 질투, 악플과 비판이 존재한다. 성공의 끝에는 아픔이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서로 경쟁하고 치열하게 사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갈망과 열정에도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자신이 그리는 삶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연예인의 고통을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불을 끄러 다니는 소방관과 범죄자를 뒤쫓는 경찰의 노고를 다 알 수도 없다. 내가 팀장의 수고스러움을 알지 못하듯 팀장도 팀원의 노력을 다 알 수 없다.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모두 같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알까. 완전히 인정받는다는 말은 허상과 같다.


  우선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즐겨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가 알아주면 좋지만 꼭 알아줬으면 하고 일을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내가 추구하는 본래의 목적도 사라지고 조바심과 짜증 그리고 자괴감으로 자신이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인정받을 확률보다 스스로에게 인정받을 확률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거의 없다. 겨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기가 힘들다. 우리와 상관없는 어떤 것의 의해 발생한 결과에도 승복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그저 일을 완수했다는 자체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여정 자체에 만족하며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도중에 행운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부상 같은 것일 뿐이다.


  이 무슨 속 편한 얘길까 싶다가도, 부자가 왜 부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해 보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들은 이미 부를 가져서 삶의 완충제가 있어서 급하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단판 승부의 세계에 산다면 그들은 몇 번을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작사가 김이나 씨가 커리어 전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커리어는 배수의 진을 치고 전환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여유가 사라지면 시야가 좁아지고 급해져 실수가 많아지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지속하면서 시간을 넉넉히 두고 두 번째 커리어가 첫 번째 커리어에 근접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전환하라고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근데 왜 뜬금없이 이 얘길 했지.)


  성공의 가치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요소요소 또한 다를 것이다. 나처럼 내향적 인간은 서포터라이트를 받으면 곤란하고 땀이 난다. 조용히 잘 살고 싶지만 잘 살려면 또 서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게 모순적이지만, 적당히 타협하려고 한다. 


  저자는 그렇게 어려운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나의 행복을 해치고 상대의 행복을 해치는 것이라면 일단 멈추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나아가는 길이 내가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인지 상대를 위협하고 우쭐하기 위한 것인지를 항상 관찰하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돈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을 위해 성공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가이드라인 정도는 정해 두자는 말이었고 폭주하지 말잔 얘기였다.


  성공은 그러데이션처럼 펼쳐져 있으며 어느 색에 위치하고 있더라도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건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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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해력 - 나도 쓱 읽고 싹 이해하면 바랄 게 없겠네
김선영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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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요즘 애들의 문해력 논쟁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느냐와 왜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하냐의 논쟁은 늘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한자를 사용해 왔고 많은 명사들이 한자로 되어 있다. 무려 75%가 한자어다. 반대로 얘기하면 중국어 명사의 80%는 한국 한자와 다르지 않다. 중국어를 모르는 어르신이 간판만 보고 이해하는 경우라든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 사람들이 중국어를 쉽게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한자뿐만 아니다. 오랜 시간 사용된 우리말이 우리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애들의 문해력을 논하기 전에 요즘 어른들의 문해력은 어떤지 먼저 돌아보면 어떨까?


  줄어가는 독서량, 점점 짧아지는 문장. '대박'과 '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방법, 글을 쓰는 힘을 기르는 PT를 얘기하는 이 책은 블랙피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일 년에 300권 남짓 읽는 나에게도 여전히 책 속에는 모르는 단어가 많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가 따로 찾아보곤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시 사용해야 기억 속에 남을 텐데 어휘를 재활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주 만나는 단어들은 이제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에도 문장에서 떨어져 나온 단어를 보면 생경하다. 


  문해력 레벨 테스트를 펼치지 마자 '헉'하는 느낌이 들었다. 10개의 단어 중에 아는 단어가 몇 개 없었다. 물론 해당 단어가 책 한 권을 뒤져도 한 번도 못 볼만한 것들도 많아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충격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2등급으로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량과 문장 만들기 등과 같은 테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독서법과 글쓰기법에 대한 8주 완성의 연습을 제시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이유가 정보를 얻거나 깨달음을 얻는 이유이며 그런 이유라면 책을 읽는 양보다 사색을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안다. 그리고 생각을 글로 써낼 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 일련의 작업들을 소개한다.


  가볍지 않은 테스트를 통과하면 독서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책 읽기 전에 책에 대한 느낌 적기, 낭독하기, 질문하며 읽기, 요약하며 읽기, 경험과 연결 짓기 등이 있다. 읽은 내용을 다시 나의 언어로 써보는 연습과 문장을 통째로 가져와 낱말을 바꿔가며 나의 이야기를 적는 연습도 있다. (사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정확한 예시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독서도 운동과 비슷하다고 얘기들 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이 본능적인 게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보통 '근육'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지만 나는 '관성'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 책을 어떻게 많이 읽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독서 또한 관성이 있어 읽지 않다가 읽으려고 하면 정지 마찰 계수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쉽게 구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서가 일정한 속도로 유지되면 이젠 멈추기가 쉽지 않게 된다. 활자 중독도 운동 중독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문해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문해력이라는 것은 쉽게 표현하자면 '눈치'가 있는 것이고 조금 더 멋지게 얘기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말은 맥락이 중요하고 숨은 뜻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글은 말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 


  글은 쉽게 읽히게 쓰는 것이 중요한데, 읽는 것은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을 읽어야 한다는 건 모순되는 느낌이지만 쉽게 쓰려면 어려운 문장도 곧잘 이해해야 할 만큼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왜 어려운 말을 익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효율과 합리를 강조하는 지금의 시대에 충분히 가져볼 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많은 말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다는 것과 같다. 인간은 자신이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알 수 있고 '느낌적인 느낌' 같은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쏟아낼 수 있어야 마음속에 응어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어려운 학문을 많이 알아도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것을 함으로써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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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41 - 10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리카이푸.천치우판 지음, 이현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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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분명 소설로 분류되지 않은 이 책은 열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한 미래의 양면성에 얘기한다. 리카이푸라는 AI 전문가와 천치우판이라는 SF소설의 신성의 만남은 2041년으로 상정한 시대에 일어날 일을 단편의 소설과 전문적인 설명으로 구성된 이 책을 콜라보하게 된다.


  AI가 바꿀 세상.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책은 한빛비즈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딥러닝은 AI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느끼게 했으나 이내 생활 깊숙이 스며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추천 상품, 추천 동영상은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AI의 기능이다. 더 나가서는 산업 전반에 깔려 있고, SNS를 통한 빅데이터로 여론과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한다. 팬데믹에서 신약의 구조를 만든 것도 AI다. 현재는 자율 주행처럼 더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책의 제목을 2041년으로 한 것으로 AI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때를 특이점을 돌파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41'이 'AI'와 닮아 있다는 점도 선택에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상정하며 작성한 글들이기 때문에 현재 대두되고 있는 기술들이 실제로 현실에 반영되었을 때의 혜택과 문제에 대해 다루게 된다.


  미래는 부정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이미 여기에 있다. 그저 아직 골고루 퍼져나가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한 미국의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은 집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것이 선진국일 가능성이 높고, 어느 특화된 도시일 가능성은 더욱 높다. 하지만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하는 인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매일 버려지는 음식이 하루에 수만 톤에 다다른다. 매년 1120조의 음식이 낭비된다. 그럼에도 굶주리는 인류가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아직 닿지 않은 곳이 많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 닿지 않은 미래도 여전히 많이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와 딥러닝은 새로운 무기로 대두되고 있고 파인만이 양자 컴퓨팅을 얘기했을 때 모두 손사래 쳤지만 현재 71 큐비트 양자 컴퓨터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그 안정성과 기술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인간은 또 해내고 있다.


  인류에게 새로운 기술은 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지금의 AI 또한 강한 저항에 부딪치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 정보가 공유되고 편향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부터 자율주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윤리적 문제도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은 늘 범죄나 전쟁에 사용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를 억제하는 기술 또한 필요하다. 기술은 분명 상호보안을 하며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책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AI가 발전함에 따른 여러 사회 현상을 보여주며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AI 또한 인간의 흔적을 학습하기 때문에 인간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학습할 수 있다. 또한 정형화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약한 면을 보인다. 단순 반복의 작업일수록 빠르게 AI에게 넘어갈 것이다.


  AI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역시 인간이 정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감정적인 부분은 인간으로서 정의 내릴 수 없기에 학습시킬 수도 없다. 그리고 오랜 시간 지켜보고 익혀야 하는 장기 학습을 잘하지 못한다. 학습하지 못한 특수 상황에 대해서도 약한 면을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 AI는 우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AI의 발전으로 인간은 그저 하나의 보호종이 되어 동물원의 동물 같은 생활을 할지도 모르고, 스타트랙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강력한 기술력을 가진 빌런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 인간을 보조하던 AI의 고삐가 풀리는 순간을 우리는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작품은 현재 회자되는 대부분의 AI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소설을 넘어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이 적혀 있다. 즐겁게만 읽을 순 없다. AI가 특이점을 넘어 초지능에 닿는다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멀지 않은 2041년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책과 함께 고민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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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낼 수 있다
보도 섀퍼 지음, 박성원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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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흔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시 읽어도 재밌을 만큼 가독성 좋게 적혀 있다. 자기 계발서이면서 소설 같은 이야기는 '미움받을 용기'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았으나 저자가 하고 싶은 자기 신뢰의 메시지는 분명 전달되었던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소미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 볼 수 있었다.


  자기 계발과 성공에 대한 도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은 바로 자기 신뢰와 확신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할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끔씩 생기는 그런 일은 아마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훨씬 많을 테니까.


  책에서 다루는 이 주제는 너무 많이 읽어와서 더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소설 형식으로 쓰여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처음에 책을 펼치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다른 책들처럼 짤막한 스토리와 긴 설명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을 때까지 이야기로 꾸며져 있는 것이 좋았다. 이야기 속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었고 주인공 카를과 멘토 마크 그리고 연인 안나의 대화 속에 녹아 있다.


  물론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소설에는 그런 요소가 없는 건 아니고 이 책은 자기 계발서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에게 중요한 건 뭘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할 수 있게 된다. 


  나를 약간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문장. 이 세상의 가난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의 문제라는 듯한 뉘앙스의 문장에서 손을 들 뻔했지만.. 가난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서 그러려니 하며 책을 덮었다. 거둔 과실을 나눠 먹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결국,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노력할 수밖에 없고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지치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는 일에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책 속에서 좋았던 문장은 어른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승리를 눈앞에 둔 사람에게 생기는 '승자의 망설임'에 대한 내용이었다. 힘든 일도 지속적으로 해내고 레벨 업을 하려면 결국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 나의 모든 걸 던질 만큼 좋아하는 일인가에 대한 질문과 선택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리를 눈앞에 두고 '나는 승리해도 되는가?'에 대한 망설임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자기부정의 구부능선과 같았다. 승리자라는 타이틀에서 도피하기 위한 행동 기제인 듯했다.


  책을 읽으며 다시 상기시킨 내용은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라는 것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으면 이미 '톱 배우가 된 것처럼' 행동하라. 그것은 스포트라이트를 즐겨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최고의 위치에 서 있다면 나는 어떻게 나를 관리하고 어떤 마인드로 임하게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허술함을 변명, 핑계로 사용하면 그 레벨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여전히 작가 지망생이에요'라고 겸손 떠는 나의 말도 나를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작가입니다'라고 얘기하고 작가에 맞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사원은 사원의 일만 하다 보면 진급하는 게 아니라 대리의 일을 할 만큼 성장했기에 진급을 시켜주는 것이다. 나는 받는 만큼만 직급만큼만 일할래 라는 마인드는 그 자리에 안주하게 만든다. 난 CEO가 될 거야 라는 마인드가 나를 성장시켜 준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진리가 다시 생각났다. 마음은 행동을 결정하지만 행동은 또다시 마음을 다잡아 준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그 상투적인 문구들이 수많은 세월 속에서 여전히 사용된다는 것은 그 말들이 가진 힘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며 시대와 상관없는 진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르길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패는 포기할 때 완결되며, 포기하지 않는 동안은 그저 과정일 뿐이다. 성공에 닿는 시간을 알 수 없을 뿐 한 발씩 나아간다면 분명 그곳에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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