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두려워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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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단순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뱀파이어 이야기, 마지막으로 XP(색소성 건피증)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추측해볼 수 있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철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광명을 찾았다고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에 대한 어두운 면을 얘기하는 이 작품은 밝은 세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제목에서 들었던 생각은 몇 장을 읽자마자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끌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자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강직한 아버지의 의지에 끌려 다녔고 말년에 우버 기사를 하고 있는 조금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빛을 두려워할 만한 위치도 아니었고 빛날 만큼의 위치도 아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여성의 삶을 옹호하며 출산의 결정권을 가지겠다는 진영과 철저한 가톨릭의 신앙을 바탕으로 낙태는 살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의 이야기였다. 페미니즘이나 근본주의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본다면 한쪽으로 치우진 페미니즘 도서가 될 수 도 있다. 낙태를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너무나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여성의 선택권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낙태를 몹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런 페미니즘과 근본주의적인 얘기를 거둬두고 본다면 이 책의 제목과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들 빛을 찾아서 방황한다. 그 빛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빛을 하나의 행복이나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아무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서 헤매야 하는 입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는 사람들은 그들의 확고한 고집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광신도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빛을 찾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확고한 신념은 그들을 넘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고 그것이 때로는 폭력으로 행사되더라도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신념이 모든 사람들에게 맞지 않을 터인데도 지나친 믿음은 강요를 낳고 사회와 충돌하게 된다. 


  빛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세상을 비춘다고 생각되는 빛이라는 존재에 무작정 딸려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빛은 대체로 좋은 의미로 쓰였지만 여기서는 빛은 너무 강한 빛이었다. 우리는 매일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지만 태양과 아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빛은 종교적 믿음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에서의 돈이 될 수 도 있다. 독재사회에서는 독재자일 수도 있다. 빛이 너무 강하면 양지와 음지의 색깔은 더욱더 극명해진다. 그것은 빛을 두려워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보면 갈등이 있는 재밌는 소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페미니즘 소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비판 없는 확고한 믿음이 가져오는 사회적 어둠에 대한 소설이었다. 어떻게 읽고도 괜찮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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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야망을 가진 당신에게 - 여성은 리더가 되길 주저하는가
이은형.유재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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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윌리엄 클라크가 홋카이도대학교의 전신 삿포로 농업대학을 떠나면서 한 고별사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고 그 말이 남성만을 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는 소년을 '희망을 위해서 전진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했다.


  조금은 도발적이라고 느껴졌다면 성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야망>과 여성은 오랜 시절 굳어진 사회적인 모습과는 꽤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MZ세대를 기점으로 알파걸이 등장하였다. 높은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도 사회에 진출한 여성의 지위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에서 기업 내 다양성을 늘리기 위해서 여성의 진출을 도모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젠더 갈등이 줄어들지 않기는커녕 증폭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서는 매년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8년 연속 OECD 꼴등이었다.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한 '성 격차 보고서'에서는 144개국 중에서도 108회를 기록했다. '유리천장'이 아니라 '방탄유리천장'인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인적 자본 축적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대학교와 각종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들은 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반 회사에서 여성의 지위는 쉽사리 높아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철학적이고 감정적이었던 페미니즘 도서와는 다르게 현실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성들이 왜 야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현실은 여성들에게 안주하도록 압박을 하고 있지만 양성 평등을 위해서는 야망을 포기하지 않고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은 이미 기득권(이라고 하면 반감이 들까) 세력이기 때문에 그들이 누려 온 삶을 내려놓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가 쟁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들이 유리창을 깨고 나가야 하고 그들이 여성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임원을 하고 있는 여성은 대체로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을 하고 나서 이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나라 기업에는 여성이 커갈 수 있는 환경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적응할 수 없는 문화 속에서 여성 할당제는 젠더 갈등만 심화시킨다. 그냥 하자고 되기에는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굳어진 생각을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여성의 사회 진출 그중에서 힘겨움을 넘어서라고 응원한다. 사회 주요 요직들에는 남성들이 가득해서 남성 몇 명이 능력 없고 잘못해도 흠이 되지 않지만 여성들은 한 명만 잘못되어도 여성 모두에게 굴레가 써진다. 이 어려운 시대를 이끌어 온 여성 리더들이 자신의 롤 모델이 되진 못하더라도 그들의 분투를 응원해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도 된다. 남성이 만들어 온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아니라 여장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야망을 가져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야망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야망을 포기하는 사회만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두 저자의 생각과 자료와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된 글들이 단순히 감정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왜 세계 유수 기업들이 여성들을 채용하고 나설까? 왜 유독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한국 여성들을 많이 채용할까? 그 답은 책 안에 있다. 좋은 기업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한국에서 여성 중에는 적은 임금이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능력 있지만 쓰이지 않은 인재들을 쓸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한국은 불행히도 국민의 절반으로 사회가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능력 있는 절반의 국민은 사회에 기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주는 것.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은 젠더 갈등을 넘어서 최근에 이슈가 되는 기회의 공정이 아닐까.


여성을 위한 책이었지만 야망은 모두의 것이었고, 회사에서 야망을 이루는 법은 남자인 나에게도 좋은 팁이었다. (물론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나는 몸소 체감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 여성이 읽으면 여성의 현실과 응원을 받을 수 있고 남성이 읽으면 여성에 대한 이해와 사회생활은 자그마한 팁 정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야망이 있는 사람은 모두 꿈을 꿀 수 있고, 슈퍼 파워가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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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 - 그 바다는 무엇을 삼켰나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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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태어났다면 가히 제갈공명과 자웅을 겨룰만했다는 정조의 말도 영국의 넬슨 제독과 유일하게 비교할만한 인물은 이순신 밖에 없다는 서양 국가들의 얘기에서도 이순신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도고 헤이아치마저도 러일 전쟁을 승리한 후 자신을 영국의 넬슨과 비교하는 것은 괜찮으나 이순신과 비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찬사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왕이라면 세종을 장군이라면 이순신을 모두 알고 있고 자랑스러워한다.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관심이 있느냐를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여전히 회자되는 명량이나 돌아가신 노량 그리고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 정도이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야스쿠니 신사는 연일 엄청난 인파로 넘쳐 난다. 우리의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의 역사지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문할까? 나부터 반성하게 된다.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황현필 선생의 첫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강의를 봐 왔지만 최근에 기획된 이순신 시리즈는 과히 대단했다. 어린 시절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심취했었다. 더 나아가 아이들과도 같이 봤다. 황현필 선생이 영상 도중에 비문을 조금 쓰고 주관적인 생각을 많이 내비치지만 그래도 괜찮을 만큼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유튜브 강의 전 편을 다 본 나에게는 기억을 더듬는 일이었다. 그날의 감동과 벅참 그리고 조정과 원균에 대한 빡침이 되살아 났다. 책으로 봐도 좋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봐도 좋다. 대부분의 내용은 강의 동영상에 모두 담겨 있다.


  이순신은 작게는 23전 23승, 많게는 60전 60승. 자잘한 전투까지 모두 헤아리면 100승이 넘는다. 신기에 가까운 전승이다. 그 뒤에는 이순신의 리더십이 있었다. 노비에게도 이름을 만들어 주고, 전장에서의 그들의 활약을 세세히 기록하고 장계로 남겨 두었다. 목적을 위해 강하게 이끌지만 모두를 살피는 이순신 리더십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이순신의 역사는 여러모로 많이 접해서 많은 부분을 알고 있어 내용을 크게 간추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대단했지만 회자되지 못했던 전쟁의 역사를 알아가고자 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순신에 집중하고 문헌과 시각 자료를 넣어서 이해가 편했고 무엇보다 딱딱하지 않았다. 


  황현필 선생 강의를 들으며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근대 역사는 교과서에 다루지 않을 만큼 스스로 알아가야 하는 면도 많다. 왜곡된 역사를 집필한 책들도 많다. 원균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 중 하나 일 것이다. 하물며 근대 역사는 어떨까. 역사 바로잡기 연구소의 다음 책은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군에 대한 내용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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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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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선란 작가의 글이라 응당 SF이겠거니 했지만 한참을 읽다 보니 이것은 스릴러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식물과 교감을 할 수 있는 것은 마법사의 설정을 빌려도 되지만 그 역할을 외계 생명체가 하게 되었다. 이렇게 판타지가 SF가 되는 것인가.


  외계 생명체로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책을 덮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스토리가 신선하지 않았지만 천선란 작가의 엄청난 필력은 나를 사로잡아 읽기를 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장면이 바뀌는 챕터마저도 자연스러웠고 긴장과 감동이 끊어지지 않아 좋았다.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독특했다. 주인공 <나인>을 제외하면 <현재>와 <미래>다. 다분히 의도된 이름이다. 나머지 인물들의 이름은 평이했다. 세 사람이 전해주는 메시지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얘기다. 셋은 그야말로 절친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사이다. 이 신뢰는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도현과 원우 사이에 일어난 슬픈 일도 둘 사이의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도현과 도현 부모님의 삐뚤어진 관계도 부모와 자식 사이 만들어지지 못한 신뢰 때문이었다. 믿음은 스토리를 끌어갈 사건을 만들었고 스토리를 정리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다른 또 하나의 메시지는 환경 파괴였고 윤리에 관한 문제였다. 식물과 에너지를 나누는 사이인 누브족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 그들은 지구의 식물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과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없는 인간은 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누브족은 더 예민하고 느낄 수 있었다. 누브족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 그 행성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었고 엄청난 기후 재앙이 있던 곳이었다. 지구도 곧 그렇게 될 거라는 은연 중의 표현을 하고 있다.


  누브족이 행성을 떠날 때 아름답게 떠난 것이 아니라 우주선 정원을 맞추기 위해서 서로 죽이는 싸움을 벌였고 두 대의 우주선이 지구를 향하는 도중에 한 대가 고장 났을 때에도 두 대의 우주선은 죽음을 불렀다. 인간은 지구가 재앙으로 뒤덮인다면 어떻게 할까? 살기 위해 전쟁을 하게 될까? 김초엽의 작품 <지구 끝의 온실>에서도 인간은 인원 제한이 있는 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서로 총을 겨누었다.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지경에 내몰릴 것인지 지금 노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주요 스토리에 걸쳐 두었다.


  외계인이지만 대단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 다르다면 달랐다. 단지 식물과 소통할 수 있었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한 명의 사라짐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멸종>라고 얘기하며 그 또한 엄청난 일임을 얘기하는 <나인>의 시각이 좋았다.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메시지였다.


  책을 읽고 나서 보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글의 몰입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너무 재밌게 읽어낼 수도 있는 글이었다. 소재가 평범해도 필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천 개의 파랑>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천선란 작가만의 영역을 넓혀 준 작품임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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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뜨리, 생에 한 번쯤은 요가
마이뜨리(서희원) 지음, 요기윤 그림 / 디이니셔티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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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는 어린 시절 오락실의 '스트리트 파이트'의 달심이나 하는 인도의 정신 수련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가깝게는 아내와 아머니께서 요가를 하고 있다. 어머니가 칭찬하던 예전 요가 선생님이 그 당시에는 정말 흔치 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어디만 다녀오면 도구라던지 책이라던지를 잘 챙겨주던 그 선생님을 나도 기억하고 있다.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수련의 길에서 남긴 글을 담은 이 책은 디 이니셔티브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요가 책이 몇 권 있다. 허리나 목이 아프면 어머니께서 동작 몇 가지를 가르쳐 주셨고 덤으로 책도 몇 권 주시기도 했다. 그 속에는 어머니의 선생님이 깨알같이 정리한 프린트물로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오묘하기 그지없는 자세를 배고 볼록한 구루가 시험을 보이는 모습을 보자니 유연성과 몸매는 별개구나 싶었다. 여전히 요가는 여성들의 주를 이루지만 최근에는 남자들도 많이 하는 편이라 몸이 찌뿌둥할 때에는 요가를 해볼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아직은 느긋함이 없어서 결단이 서질 않는다.


  이 책을 에세이로 볼 것인지 건강 서적으로 볼 것인지 그 경계는 분명 불명확하다. 요가라는 것이 정신적 수양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깨달음을 함께 적어 인문학적 요소가 강해진다고 에세이로 치부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내가 받은 그 전문 요가 서적처럼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도 아니다. 요가를 하며 쉼의 언저리에서 편하게 읽어보라고 출판하신 느낌이다.


  요가를 하지 않은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잘 쓰인 에세이 한편이었다. 그 내용은 여러 에세이를 읽은 나에게는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문장에 부드러움이 있어서 그냥 술술 읽혔다. 모든 수련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요가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할 때 비로소 근육이 이완되고 원하는 자세를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스포츠가 힘이 뺄 줄 알아야 더 강해진다는 것을 강조하듯 요가도 그런 점에서 이해가 되었다.


  요가라는 것이 정신 수양이기 때문에 글의 내용은 자신을 바라보는 법, 관계를 유지하는 법과도 이어져 있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이 요가 수련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보면 요가는 꽤 솔직한 수련인 것 같았다. 요가를 조금 더 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효과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어떤 통찰력을 얘기하지 않는다. 제목처럼 생에 한 번쯤은 요가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나요? 정도의 가벼운 권유의 말들이었다. 자신이 희귀병이 있는지도 모른 채 군대도 다녀오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요가 수련을 통해서 지속적인 이완과 수축으로 지금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요가와 저자는 꽤 운명적인 것 같다. 


  마음이 소란스러워질 때가 오면 정말 한 번쯤은 해볼까 싶다. 하지만 부끄러~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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